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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등록금만 1000만원! ‘귀족학교’ 로스쿨, 예고된 혼란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한 학기 등록금만 1000만원! ‘귀족학교’ 로스쿨, 예고된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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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기 등록금만 1000만원! ‘귀족학교’ 로스쿨, 예고된 혼란

서울대 법대 앞에 있는 ‘정의의 종’. 로스쿨제가 도입되면 과연 정의를 세우기 위해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1944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은 하버드 대학을 나온 ‘엘리트 중의 엘리트’ 루스벨트와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진 트루먼을 러닝메이트로 출마시켜 승리했다. 두 사람은 1945년 1월20일 정·부통령에 취임했는데, 그로부터 82일 후인 4월12일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했다.

트루먼은 자동으로 82일이 모자라는 4년 임기의 대통령에 오르게 된 것이다. 트루먼의 행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을 승계한 때로부터 한 달이 못된 1945년 5월7일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했다. 다시 3개월 후인 8월15일엔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그는 유럽과 아·태 지역에서 일어난 거대한 전쟁에서 모두 항복을 받아낸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었다.

로스쿨 학원 나온 시골 판사 출신 행운아

여세를 몰아 트루먼은 1948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해 연임하게 되었다. 그가 재선 대통령을 하던 1950년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일어났다. 독실한 침례교 신자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그는 즉각 일본에서 군정을 하고 있던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에게 북한군을 막게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트루먼 대통령은 ‘거물’ 맥아더를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지명해 연합국의 대표 자격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었다. 미 의회도 맥아더를 죽을 때까지 별 다섯 개를 달 수 있는 ‘종신 원수’로 결의하며 후원했었다.

트루먼이 연임 선거에 나섰을 때 공화당은 맥아더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하려 했으나, ‘종신 원수’는 “나는 군복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명언을 날리며 거절한 적이 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북진할 때만 해도 맥아더의 기세는 트루먼을 덮을 듯했다. 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서울을 내주고 후방으로 철수한(1·4후퇴) 1951년 이후, 두 사람 관계는 역전되었다. ‘종신 원수’는 1·4후퇴를 당한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이 때문에 원자폭탄을 만주에 떨어뜨리자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반공주의가 넘실되던 미국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냉철한 사람들은 1948년 소련이 원폭 개발에 성공한 것에 주목했다. 이들은 만주 지역에 원폭을 투하하는 것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싸우는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트루먼은 이러한 의견을 수용해 원폭 투하를 주장하는 종신 원수를 극동군 사령관에서 해임하고, 리지웨이 육군 대장을 후임자로 임명했다.

맥아더는 1·4후퇴를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은 ‘미주리 촌놈’에게 분노했다. 그러나 절제력을 갖춘 신사였기에 미 의회에서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웨스트포인트 교가를 인용한 고별 연설을 하고 스스로 퇴역했다.

맥아더라는 영웅을 제압한 트루먼은 임기를 무사히 채우고 아이젠하워에게 다음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러고도 30년을 더 살아 88세에 타계했는데, 미 해군은 트루먼을 기려 니미츠급 핵항모 제8번함을 ‘해리 트루먼’함으로 명명했다. 고졸 출신으로 ‘학원식’ 로스쿨을 나온 트루먼은 미국이 기억해야 할 영웅으로 남았다.

하버드대, 최초 로스쿨 설치

해리 트루먼 이야기를 꺼낸 것은 로스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트루먼이 캔사스시티 로스쿨을 나오지 못했다면 그는 결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루먼의 운명은 물론이고 세계 역사까지 바꾸게 한 로스쿨이 지금 한국에서도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한국의 로스쿨은 트루먼과 같은 행운아를 배출하는 ‘관문’이 될 것인가?

미국 정치사에서 트루먼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링컨 대통령도 변호사 출신이다. 그러나 링컨은 로스쿨은커녕 학교를 다닌 경력도 없다. 그는 독학으로 일리노이주에서 치러진 변호사시험에 합격(1836년)해 변호사가 되었고, 주 의원과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16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었다. 왜 링컨은 로스쿨을 거치지 않고도 변호사가 될 수 있었는가?

로스쿨은 오랫동안 미국에만 있던 제도다. 미국에 이어 캐나다가 영국식 법학 교육을 가미한 로스쿨을 운영해왔고, 최근 일본이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로스쿨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이지 않은 교육기관이다. ‘영미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국은, 미국과 유사한 법률 시스템을 갖고 있으나 로스쿨 제도는 없다. 영국에서는 각 대학의 법학과에서 법률을 가르친다.

영국에서 독립하기 전의 미국에서는 ‘도제’ 형식으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습을 하던 젊은이가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변호사가 되었다. 이때의 변호사는 자격증을 갖고 있느냐보다 법정에서 얼마나 변론을 잘하는가로 판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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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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