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많이 힘들었겠어요.
“한없이 서운하고 서럽고…. 그런데 시간이란 게 묘해요. 처음엔 고통과 끝 모를 절망감뿐이었죠. 그러다 멍한 상태가 되어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그냥 흘러가게 돼요. 마치 태평양 한가운데에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에요. 작은 파도만 일어도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가 나중엔 그냥 그런가 보다 싶어져요. 그렇게 적응해 나가는 거죠. 자기도 모르게 살아가는 방법, 어려움을 헤쳐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돼요. 인간이란 게 그렇더군요. 약할 때는 벌레보다도 약하고, 강할 때는 정말 초인적이 돼요.”
▼ 가장 힘든 건 뭐였나요.
“언론이었죠. 저라는 한 인간의 최소한의 인격마저 무시했으니까요. 마치 짐승 대하는 것 같았어요. 그땐 정말 죽음의 시간이었어요. 남들은 상상도 못하는 고통이에요.”
▼ 왜 사건이 터졌을 때 곧장 불법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법적대응을 하지 않고, 미국으로 피한 겁니까.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말이 맞아요. 당시 턱관절 때문에 고생을 했어요. 언론에선 성형수술 부작용이라고 했지만. 턱관절이 안 좋아 수술을 했는데 그게 잘못되는 바람에 재수술을 받으러 미국에 가야만 했어요. 그때 한국에 있었더라면 잡을 사람 다 잡아내서 법의 심판대에 세웠을 겁니다.”
▼ 지금은 그들을 용서할 수 있나요.
“솔직히 응어리는 남아 있어요. 세상 앞에 발가벗겨지는 그런 치욕이었잖아요. 마음의 병은 고쳐지지 않아요.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단단한 돌멩이처럼 박혀 있는 게 있어요. 제가 지고 가야 할 멍에인 것 같아요.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도 그걸 또 들춰내고 싶어할 거예요. 그것으로 제가, 한 인간이 겪어야 할 고통은 생각하지 않고요.”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고통과 시련으로 배운 것

오현경은 자신을 내친 세상을 용서했지만 그래도 응어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죽음, 자살…, 저라고 왜 그런 생각 안 해봤겠어요. 그런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고, 시도도 했죠. 그런데 ‘그렇게 죽으면 남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허무하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거예요. 주위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일이고요. 행복하게 잘살 권리가 있는 엄마와 동생들이 평생 내 죽음이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하잖아요. 그걸 깨닫고 나니까 자살을 생각했다는 자체가 부끄러워졌어요.”
그는 “인생은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죽지 않고 하루를 견뎌내고 다음날을 맞이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말에서 고통의 깊이가 느껴졌다.
“처음엔 살아 있는 게 고통이고 못 견딜 시련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고통이 도리어 삶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더군요. 그렇게 되기까지는 가족의 사랑과 종교가 큰 힘이 됐어요. 지금 살아 있고,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 힘들 때 주로 뭘 하며 지냈습니까.
“성경의 잠언과 시편을 많이 읽었어요. 특히 시편은 마치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 같았어요. 시편을 읽고 있으면 ‘아, 오늘은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가슴에 와 닿더군요. 요즘은 차동엽 신부님의 ‘무지개원리’라는 책을 읽고 있어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거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내용이라 마음에 와 닿아요. 며칠 전엔 ‘삼국지 경영학’을 샀는데, 경영의 지혜뿐 아니라 인간관계, 시련이 닥쳤을 때 풀어가는 방법을 담은 책이어서 꼭 읽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