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호

누구를 위한 다이아몬드인가

  • 김민경 동아일보 ‘The Weekend’ 팀장 ‘holden@donga.com’

    입력2008-06-09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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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한 다이아몬드인가

    윈저 공작부인을 위해 디자인된 까르띠에의 표범 브로치.

    “역시 좋은 건 많이 반짝거려야 해.” 전시 조명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까르띠에 보석들을 바라보며 난 이렇게 말했다. 그때 누가 나를 봤다면 내 눈도 그만큼 반짝거리고 있었다고 말해줬을 것이다. 또 난 부끄러웠다. 인조 다이아몬드와 스테인리스스틸로 된 나의 액세서리들이. 한마디로 유리와 쇳조각으로 된 귀고리와 목걸이를 달고 다닌 나날들이. 까르띠에의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늄에 비하면 이것들은 얼마나 조악한지 말이다.

    이 봄은 쇼퍼홀릭에게 유달리 잔인하다. 까르띠에와 티파니, 샤넬과 반클리프아펠 등 럭셔리 브랜드의 주얼리 전시가 네 개나 열리는 바람에 눈은 호사를 했지만, 홍보 담당자가 “어때요? 그림의 떡이지, 뭘”이라고 말해도 발끈할 오기가 남아 있지 않을 만큼 나의 쇼핑 리비도는 전의를 상실했다. 아, 이제 뭘 본들 눈에 찰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란 유리 조각과 서양배 모양으로 커팅된 다이아몬드의 차이가 눈에 확확 들어오는 나 같은 쇼퍼홀릭들이 비온 뒤 죽순이나 독버섯처럼 늘어나는 토양인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공예가 지닌 본래적 의미와 예술적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는 학예사의 설명을 귓등으로 일찌감치 흘려버린 나는 이 어마어마한 보석들을 몸에 붙이고 다녔던 여인네들이 누군지 무척 궁금해졌다. 왕비나 공주 아니었느냐고? No. 근본적으로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럭셔리 브랜드는 왕정 몰락 후 근대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대중(물론 부자들)’에게 궁납용급의 물건을 팔아서 오늘날까지 이름을 이어온 것이다.

    부자 아버지를 두고 부자와 결혼한 여성들이 이 거대한 보석들의 주인이었다. 그들은 몇 차례 결혼하고 이혼하면서 위자료로 재산을 불렸고, 남편들은 바꿀지라도 보석상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었다. 예를 들면 미국 철도왕의 상속녀, 미국 언론 재벌의 부인, 영국 소매점 체인 창시자의 상속녀 등이 이 보석상들의 VIP였다. 세련된 취향을 두고 경쟁을 벌이던 그들은 보석공예 발전에 혁혁히 기여했다.

    영국 황태자에게 왕위도 내던지게 한 윈저 공작부인(미국의 이혼녀 심슨 부인으로 더 잘 알려진)도 까르띠에의 주요 고객이었는데, 그를 위해 디자인된 표범 브로치를 보면 당대에 그가 처한 상황도 짐작할 수 있다. 152캐럿의 사파이어를 네 발과 꼬리로 감아 깔고 앉은 표범은 분명 윈저 공작부인일 테니, 영국 왕을 손아귀에 넣은 자신감과 동시에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 이상의 공적 권력을 갖지 못한 여성의 한이 느껴진다.



    이처럼 1930~50년대 미국의 부와 유럽의 문화가 혼맥으로 결합해 호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고 예술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던 상류사회를 일컬어 ‘카페 소사이어티’라 하는데, 그 구성원들이 오늘날 럭셔리 브랜드의 초기 고객들이었던 셈이다. 그들이 아무리 예술에 대해 높은 안목을 갖고 있다 해도, 거대한 보석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감고 있는 모습은 그가 속한 남성(아버지의 가문이든, 남편의 기업이든)의 부를 전시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보석보다는 일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여성이 많은 시대다. 표범보다 더 무서운 여성이 수없이 많다. 재벌부인이라도 인도 왕처럼 다이아몬드를 달고 나왔다가는 ‘몰취향’으로 비웃음을 살 것이다. 한때 한 여성만을 위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목걸이나 브로치가 오늘날 미술관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것도 이런 변화 때문이다. 20세기 전반에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여성들이 세상을 떠난 1980년대에 이런 보석들이 보석상과 옥션에 쏟아져 나왔다. 이 거대한 보석들이 부적절한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주얼리 브랜드들은 ‘스스로를 위한 다이아몬드’를 사라고 외치고 있다. 성공하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남성으로부터 선물받기보다 여성이 자신에게 반지를 선물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지를 오른손에 낀다는 것. 일부 셀러브리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오른손을 들자’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다. 잇따라 한국을 찾는 보석전들은 이런 마케팅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그 이유는 전시장에서 ‘진짜 반짝거리는 것들’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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