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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북자 영화 ‘크로싱’ 만든 김태균 감독

“‘SF영화 찍느냐’고 비웃던 놈들아, 진실을 보여주마!”

  • 송문홍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songmh@donga.com

탈북자 영화 ‘크로싱’ 만든 김태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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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영화 ‘크로싱’ 만든 김태균 감독
탈북자들이 독일영사관에 들어가는 장면을 몽골에서 제1야당의 당사 건물을 빌려 촬영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찍을 때 중국 공안 복장을 한 엑스트라가 대거 동원되자 건물을 빌려준 쪽에서 몹시 당황했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의 반중(反中) 감정이 강한데, 백주대낮에 중국 공안이 설쳐대면 어떻게 하느냐는 항의였다. 촬영은 중단됐고, 우여곡절 끝에 왕래하는 사람이 적은 일요일 오전 시간에 다시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이 우리 민족, 특히 북한 사람들과 겉모습이 아주 비슷해요. 입고 온 옷 그대로 내놓아도 엑스트라로 당장 쓸 수 있을 정도였지. 또, 몽골에서 북한 마을과 거의 흡사한 건물단지를 찾아내 영월보다 더 큰 오픈세트를 만들어 활용했어요.”

‘우리는 北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 감독은 몽골의 야산이 자료로 확인한 북한의 민둥산과 거의 똑같아 보인다는 점도 촬영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북녘의 헐벗은 산야(山野)와 그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몽골의 황량한 초원. 하나는 인재(人災)로 비롯된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땅이다. 그 둘을 비교하는 김 감독의 얼굴에 착잡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영화 개봉이 연기되는 바람에 약간 맥 빠진 분위기가 됐지만, ‘신동아’ 인터뷰는 이번에 나가자고 합의했던 터였다. 그래도 그는 힘든 기색을 다 감추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교회에서 회개했어요. 개봉이 연기된 것을 놓고 내가 왜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가, 아무도 안 된다고 말리던 영화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만 해도 기적이 아닌가. 혹시 내 마음속에 이 일을 빨리 끝내놓고 다른 데로 도망가버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 어차피 여기까지 온 마당에 좀 더 기다릴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했어….”

김 감독에겐 다음 영화를 찍을 계획이 이미 잡혀 있다. 일본 영화기획사의 초청을 받아 흡혈귀 액션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 그건 다시 본래 영역으로 돌아간다는 얘기?

“난 ‘크로싱’으로 인해 내 이미지가 그쪽으로 딱 고정돼버리지 않을까 두려워. ‘크로싱’ 찍으러 중국에 갈 땐 ‘잡히면 감옥이라도 가지’ 하는 마음으로 갔지만, 나 원래 무척 자유분방하게 사는 스타일이거든(웃음).”

삶의 어느 순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맞닥뜨렸을 때, 인간이 보이는 반응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진실을 끝까지 외면하는 사람, 진실을 자기 편한 대로 왜곡하는 사람, 진실 앞에 무릎 꿇고 겸허해지는 사람…. 김 감독은 처음엔 그 불편한 진실에서 도망 가려고 했지만, 종국에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남북이 주변 눈치 보지 말고 민족끼리 똘똘 뭉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세력도 아니고, 저 몹쓸 북한체제가 당장 망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보수파도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유분방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영화감독일 뿐이다. 자기가 만든 영화를 관객이 봐주고 공감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무실을 나오면서 ‘우리 사회는 지금 북한이라는 실체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생각했다. 진실 앞에 겸허한 자세로 해법을 고민하는 사람들보다는 그 진실에 무관심하거나, 외면하거나, 혹은 애써 왜곡하려는 사람이 더 많은 건 아닐까?

“‘크로싱’을 만드는 과정에서 두 가지 충격을 받은던 일이 있어. 하나는 평소 존경하던 분이 공석에서 북한 인권에 관한 질문을 받고서 ‘그건 역사의 문제이고 그들 내부의 문제다’라고 답변하는 것을 봤을 때,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지. 또 하나는 영화계의 한 후배 기자가 ‘형, SF영화 찍는다면요? 탈북자 걔네들 말을 어떻게 믿고?’라며 비아냥거렸을 때,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생각했어.

‘크로싱’을 정치영화가 아니라 그냥 휴먼스토리로 봐줬으면 해요.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와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 이 영화를 통해 그걸 그냥 다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후기(後記) : 이 기사를 다 작성하고 난 뒤, 김태균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연기됐던 ‘크로싱’ 개봉일자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6월 말로 재조정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번 기적이 일어나는 것 같아, 그렇지?” 하면서 좋아했다.


신동아 200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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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홍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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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영화 ‘크로싱’ 만든 김태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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