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이가 그렇듯 그 친구 역시 장기적으로는 자녀의 미국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아들을 바라보는 초보엄마의 마음에 벌써부터 작은 그늘을 드리울 만큼 한국의 교육이 절망적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그런 한편 미국이 우리에게 그렇게 ‘만만한’ 대안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학’ 하면 ‘도피유학’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입시에서 실패한 일부 부유층 자녀들의 미국행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보다는 ‘한국 교육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라며 암묵적인 낙인을 찍었다.
그런데 지금은 유학을 이처럼 바라보지 않는다. 아이들을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시키려는 적극적인 동기에서 자녀의 미국행을 선택하는 부모가 많아졌고, 유학을 결정하는 시기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유학생 출국현황에 따르면 2006년 초·중·고 조기유학생은 3만명에 육박하며, 이 가운데 초등학생이 47%를 차지했다. 최근 한 은행에서는 유학자금 대출상품을 내놓는 등 조기유학에 대한 관심층도 부유층에서 중산층으로 확대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공교육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많은 사람이 미국의 교육에서 대안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미국 대학 졸업장이 한국 대학 졸업장보다 더 큰 공신력을 가질 것이라는 이성적 판단과, 미국 교육을 통해 자녀를 입시지옥에서 구원해주고 싶다는 감성적 판단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토론하고 방과 후에는 여가를 즐기는 영화 속 미국 고등학생들의 모습은, 야간자율학습과 사교육으로 새벽이 돼서야 파김치가 되어 귀가하는 한국 고등학생들과는 너무나 다르다. 입시전쟁을 치러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미국 애들은 놀면서 대학에 간다는데 나는 왜 한국에서 태어나 이 고생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는 미국의 참모습이 아니다.
하버드가 아니면 죽음을!
우선 ‘미국에선 능력만 있으면 학벌은 별로 중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미국은 한마디로 시장논리가 철저하게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는 ‘경쟁’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성장한다.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개인의 능력은 곧 학력으로 증명되기에 명문대 진학 경쟁은 그 어느 사회보다 치열하다.
이미 십수년 전 ‘뉴욕매거진’은 ‘하버드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Harvard or give me death)’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통해 미국 중산층 자녀들의 일류대 입시 경쟁이 치열함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 후에도 입시철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전쟁 같은 수험기가 여러 언론매체에 소개되는가 하면, ‘나는 이렇게 공부했다’ ‘당신에게 맞는 대학 고르는 법’ 등 합격의 비결을 담은 각종 실용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국에는 사교육이 없을 것’이라는 것도 오해다. 무엇이든 상품화하는 미국 자본주의에서 학원사업이 번창하지 않았을 리 없다. 미국의 교육전문 컨설팅업체 에듀벤처스에 따르면 2004년 미국 초·중·고생의 학업 관련 사교육비는 연간 21억달러(약 21조원)에 달하며 매년 급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