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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손기정과 존 켈리가 우정 나누던 ‘성지(聖地)’ “심장이 터져도, 힘줄이 끊어져도 Fun Run!”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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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제112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고승철 기자.

미국 국가가 불려지자 그 장중한 멜로디와 애국심을 고취하는 가사 때문인지 바로 옆에 선 20대 여성은 감격에 겨워 코를 훌쩍거린다. 언뜻 보니 눈물을 흘리는 듯하다. 그녀 옆에 선, 키가 껑충 크고 말끔하게 머리를 다듬은 30대 남자는 왼쪽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기자의 귓전에는 안익태 선생 작곡의 애국가 선율이 맴돈다. 뇌리에 한국의 순국선열들이 떠오른다. 마침 바로 길 왼쪽에 한국인 교민들이 운영하는 보스턴 장로교회 건물이 보인다. 한글 간판이 애국심을 자극한다. 마라톤 대회이니만큼 한국을 빛낸 마라톤 선수들의 모습이 살아난다. 가슴이 뭉클해지며 ‘슬픈 금메달’의 주인공 손기정(1912~2002) 선생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61년 전인 1947년 4월19일, 이곳 보스턴 대회의 스타트 라인 부근에 서 있는 손기정의 모습이 환영(幻影)처럼 나타난다….

손기정과 존 켈리의 우정

손기정과 보스턴 마라톤. 무슨 인연이 있을까. 먼저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1936년 베를린올림픽 시절로 되돌아가보자.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뛴 그는 당시로서는 ‘마(魔)의 2시간30분 벽’을 깨고 2시간29분19초의 올림픽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손기정은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운동화를 벗어 들고 맨발로 걸어 트랙을 빠져나왔다.

숨을 헐떡이며 18위로 들어온 미국 대표선수 존 켈리는 손기정의 손에 들린 운동화를 유심히 살폈다. 무척 가벼워 보였다. 존 켈리는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 손기정의 신발과 무게를 비교했더니 짐작대로 미국산 운동화가 훨씬 무거웠다. 그는 손기정에게 우승을 축하하며 “이 신발을 내게 줄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이들은 경기 전에 코스를 답사하다가 만나 서로 호감을 갖게 돼 서너 번 함께 달리며 연습한 적이 있었다. 천천히 달리며 연습할 때 존 켈리는 키 163㎝의 손기정에게 “귀하는 체구는 작지만 아주 강인하게 생겼다”고 찬사를 던졌다. 손기정이 당시 비공인 세계최고기록(2시간26분14초) 보유자라는 사실도 알았다. 존 켈리 자신도 1935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32분7초의 호기록으로 우승한 바 있어 금메달 후보였는데 손기정과 함께 달려보니 자신의 기량이 약간 모자란 듯했다. 동갑이라는 점이 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했다. 손기정은 ‘보스턴 마라톤의 영웅’ 존 켈리에게 흔쾌히 운동화를 선사했다. 존 켈리가 신어보니 맞았다. 키는 손기정보다 약간 컸지만 발 크기는 같았다. 손기정의 신발은 엄지발가락과 다른 발가락이 구분돼 있었고 가벼웠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올림픽이 끝나고 각자가 귀국한 뒤에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유한다. 손기정은 존 켈리에게 신발을 두 켤레 더 보내줬다. 존 켈리는 손기정에게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라고 4번이나 편지를 보냈다. 존 켈리는 보스턴 대회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으며 1945년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손기정과 존 켈리의 오랜 우정에 관한 비화(秘話)는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양종구 기자가 2004년 4월 보스턴 대회를 취재하러 갔다가 그를 단독 인터뷰하면서 확인됐다. 그때 존 켈리 옹은 “손기정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Me Korean, not Japanese)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하면서 “2년 전 손기정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슬펐다”고 말했다. 존 켈리 옹은 이 인터뷰 직후 별세했다.

1947년 2월 보스턴 마라톤조직위원회는 한국 선수단이 제51회 대회에 참가해달라고 초청전문을 보냈다. 존 켈리가 손기정과의 우정을 잊지 않고 조직위원회에 건의한 결과였다. 당시 한국은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난 직후여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미국 군정이 실시될 때였으므로 해외여행을 하려면 군정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미국 달러는 금쪽처럼 귀했다.

남승룡, 서윤복의 ‘된장찌개 파워’

한국선수단은 감독 손기정, 선수 남승룡·서윤복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1947년 4월3일 미국 공군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떠났다. 광복 이후 한국대표단으로서는 국제 스포츠 행사에 처음으로 출전하는 순간이었다.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일본 공군기지,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뉴욕 등을 경유해 4월8일 천신만고 끝에 보스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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