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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손기정과 존 켈리가 우정 나누던 ‘성지(聖地)’ “심장이 터져도, 힘줄이 끊어져도 Fun Run!”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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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세 고승철 기자, 보스턴 마라톤 뛰다!

나이·직업·기량 등이 다양한 마라톤 애호가들이 ‘꿈의 코스’인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공항에는 기자가 여럿 나와 한국선수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존 켈리가 한국선수단에는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동메달리스트 남승룡이 있다고 신문사에 알렸기 때문이다. 손기정과 존 켈리는 11년 만에 재회했다. 두 사람은 반가워 얼싸안았다. 존 켈리는 남승룡에게도 반가움을 나타냈다. 베를린올림픽 때 자신을 추월해 날쌘 경주마처럼 달려나가던 남승룡의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1911년생인 남승룡은 손기정 감독보다 한 살이 많았다. 36세 노장 선수로 참가한 것. 존 켈리도 여전히 현역 선수로 참가했다. 그의 눈에는 1923년생인 24세 청년 서윤복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체구는 왜소하지만 몸매가 탄탄해 보였다. 한국선수들은 호텔에서 며칠 묵다가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보스턴 교민 백남용씨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된장찌개를 먹고 나니 힘이 솟았다. 자동차를 타고 코스를 둘러보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난코스였다. 첫 5㎞까지는 거의 내리막이었다. 이때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면 오버 페이스하기 십상이었다. 손기정 감독은 선수들에게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지시했다. 32㎞ 지점에 나타나는 오르막을 승부처로 삼는 작전을 짰다.

족패천하(足覇天下)

드디어 대회일인 4월19일 정오, 남승룡과 서윤복은 나란히 출발했다. 8개국 선수 184명이 출전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우승 후보로 1946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핀란드의 피타넨, 1946년 보스턴 대회 우승자인 그리스의 키리아키데스 등을 꼽았다. 한국 선수들은 작전대로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고 달렸다. 선두그룹 대신 중위 그룹에 끼었다. 서윤복은 15㎞ 지점에서는 20위권에, 20㎞ 지점 이후에는 5~6명이 달리는 선두 그룹에 몸을 담았다. 우승 후보 피타넨이 맨 앞에서 달렸다. 25㎞ 지점을 넘어서자 피타넨과 서윤복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형국이 전개됐다. 28㎞ 지점에 이르렀을 때 서윤복은 응원 나온 손기정을 발견했다. 손기정은 “우승해서 돌아가자”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서윤복은 응원 덕분에 스피드를 올려도 힘이 달리지 않았다.

승부의 관건은 막판 오르막 지점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인왕산, 안산을 오르내린 서윤복은 언덕 오르기에 유달리 강했다. 여기서 속도를 올리니 피타넨이 뒤처졌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을 달릴 때였다. 큼직한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서윤복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그는 개를 걷어차다 넘어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잠시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사이에 피타넨이 앞질러 갔다. 이를 악물고 일어난 서윤복은 다리를 절뚝거리며 달려나갔다. 그러나 이번엔 오른쪽 신발끈이 풀려 헐렁거렸다. 신발끈을 다시 맬 시간 여유가 없었다. 불편하지만 그대로 질주해 다시 피타넨을 추월했다. 마침내 결승 테이프를 끊으며 우승했다. 기록은 2시간25분39초. 귀국한 서윤복에게 김구 선생은 ‘족패천하(足覇天下)’라는 휘호를 써주며 축하했다.

1950년 4월에도 손기정은 한국선수단을 이끌고 보스턴을 찾았다. 이 대회에서 함기용 선수가 2시간32분39초로 우승했다. 2위는 송길윤, 3위는 최윤칠이 차지해 한국인이 1, 2, 3위를 석권하는 전대미문의 쾌거를 이뤘다. 1930년생인 함기용은 마라톤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전학을 온 꿈나무 청년이었다. 손기정의 조련을 받아 기량이 일취월장, 약관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마침내 보스턴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이다.



함기용이 귀국하자마자 6·25전쟁이 발발했다. 그는 부산으로 피란을 떠나면서 보스턴 우승 메달과 보스턴에서 입었던 훈련복 등을 동대문야구장 오른쪽 외야 한구석에 파묻었다. 그해 9·28 서울 수복 이후 그곳을 찾은 함기용은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땅을 파서 훔쳐간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함기용 옹의 이런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보스턴 마라톤조직위원회는 2007년 5월에 함옹을 위해 다시 메달을 제작해줬다.

2001년 4월16일 보스턴 대회에선 이봉주 선수가 2시간9분43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1994년 보스턴 대회에 참가한 바 있어 코스에는 익숙했다. 이봉주의 우승은 1990년대 이후 계속된 아프리카 선수들의 보스턴 석권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어서 현지 언론으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봉주는 이듬해인 2002년 보스턴 대회에도 참가했으나 2시간10분30초의 기록으로 5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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