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FRB 의장 벤 버냉키는 계속 금리 인하를 발표해 달러 가치의 하락을 이끌고 있다.
이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양극단을 달린다. 원칙론자는 정부가 나서서 신용위기를 구제하는 행위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고 비난한다. 그런가 하면 폴 크루그먼과 같은 시장주의자는 도리어 ‘만시지탄’이라고 말한다.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우호적. 금융시장은 기본적으로 수급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美, “신용위기 막자”…돈폭탄 돌리기
보통의 경우 자산가격은 경제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주가가 오르면 머지않아 경기가 좋아지고, 주가가 하락하면 경기가 나빠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주식의 가격이란 원래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이고, 경기가 좋아지면 기업은 장사가 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원칙이 어긋날 때가 있다. 주가가 경기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게끔 시장 흐름이 자연스러우면 자산가격은 건강한 모습을 보이지만, 시장에 인위적인 개입이 이뤄지면 주가는 왜곡된다.
기업의 가치가 오르지 않았는데도 시장에 돈이 넘쳐흐르면 주가는 일단 오른다. 이상한 현상이지만 사실이다. 자고로 세상 모든 자산의 가격은 돈이 넘치면 오르고, 마르면 떨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비싼 값에 자산을 샀다고 깨닫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품이 낀 가격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장 개입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그럼에도 버냉키는 5월에도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월스트리트 빌딩가에 달러를 뿌려댔다. 그러자 주택담보 대출 때문에 집을 내놓게 생겼던 사람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또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떼일까 전전긍긍하던 금융기관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그렇게 공중에서 뿌려지는 돈을 한 움큼씩 쥐고 축제를 시작했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연신 폭죽을 터뜨렸다. 하지만 술에서 깨어난 그들이 ‘버냉키가 뿌린 돈으로는 딱딱한 빵 한 조각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극의 서막은 오른다.
FRB가 금리를 내리면 내릴수록 중앙은행이 찍어내야 할 돈은 늘어난다. 그리고 미국 중앙은행의 조폐기가 돌아가는 속도만큼 물가는 오른다. 미국이 지급하는 원자재 가격과 상품 가격도 속등한다. 이는 다시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돈 가치의 하락을 부추긴다. 어차피 지금 중국을 비롯한 몇 나라의 물가는 고삐를 잃고 통제불능 상태가 됐다. 역설적으로 미국이 찍어낸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간 탓이다. 돈은 하늘에서 뿌려졌으되, 그 돈이 기존 돈의 가치마저 떨어뜨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
버냉키는 이제 더는 ‘헬리콥터’를 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금리를 더 인하하면 달러 가치의 하락은 불 보듯하고, 인플레이션은 그의 통제범위를 완전히 벗어나버릴 터. 하지만 헬리콥터를 타지 않으려면 더 이상의 금융위기가 없어야 한다. 만약 앞으로도 주택 가격이 추가로 떨어지고, 그로 인해 시티뱅크나 리먼브라더스가 흔들리면 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헬리콥터를 타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의 달러 반등은 이제 더는 금리인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 기댄 중환자의 마지막 불꽃이다.
이러저러한 시각에서 보면 지금은 절묘한 균형점이다. 시장은 더 이상의 금리인하는 호재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금리가 인상될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유가는 더 이상만 오르지 않으면 견딜 만하고, 선진국 물가는 아직은 통제범위 내에 있다. 이 절묘한 균형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리라고 믿는 사람도 없다. 이제 어느 쪽이든 방향을 잡을 것이고, 그 방향은 장기간에 걸쳐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돌아보면 우리나라 국부펀드가 메릴린치와 같은 투자은행에 지분을 투자할 기회를 얻었다는 게 행운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메릴린치가 끌어들인 자금의 표면이율은 10%가 넘는다. 최근 베어스턴스를 인수한 JP모건의 조달금리는 8%에 가깝다. 미국 최대의 투자은행들의 조달금리가 이런 수준이라면, 신용경색이 어느 정도일지는 불을 보듯 훤하다. 그래서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들은 “신용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다시 한번 못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