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터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하얀 산, 뜨거운 물

  • 사진/글·최상운 여행작가 goodluckchoi@naver.com

    입력2008-12-01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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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하얀 산, 뜨거운 물
    파묵칼레의 하얀 산은 마치 신기루처럼 다가온다.

    터키 파묵칼레로 가는 길에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창밖으로 마치 한국의 농촌 같은 낯익은 풍경이 펼쳐진다. 나지막한 산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고 작은 밭들과 한적해 보이는 농가들이 이곳이 먼 이국임을 잠시 잊게 해준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닮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터키인들이 유난히 한국인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터키 사람 가운데 일부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부르기도 한다는데, 그런 친밀감이 생긴 데에는 지형적인 공통점도 한 이유가 됐을지 모르겠다. 자연환경이 사람들의 생활관습이나 심성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터키는 우리 역사책에도 ‘돌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정도로 꽤 친숙한 나라다. 편안한 마음으로 점점 파묵칼레에 다가갈 무렵 눈부시게 하얀 파묵칼레의 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목화의 성

    차에서 내려 식당을 찾다가 한국말로 메뉴를 붙여놓은 곳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라면, 볶음밥 같은 간단한 한국 음식이 있는데 그중 볶음밥을 주문했다. 훌륭한 식사를 기대했다기보다는 순전히 한글 메뉴에 대한 반가움 때문이었다. 요기를 하고 길을 나서자 금방 흰 산이 나타난다. 신기루처럼 보이는 하얀 산인데 터키어로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Cotton Castle)’이란 뜻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오른쪽 산비탈에 있는데 산 아래에 큰 호수가 있고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어놓았다. 아래로 물이 흐르는 다리를 지나 벤치에 앉으니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산비탈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어찌 보면 눈 덮인 설산을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기할 점은 저 산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산 입구 매표소에서 조금 올라가자 뜨거운 물이 흘러내리는 흰 바위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여기서부터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주위를 보니 어떤 사람들은 미리 슬리퍼를 신고 와서 들고 가기도 한다. 파묵칼레는 온천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평균 35℃의 물이 땅에서 솟아 흘러내린다. 미네랄이 풍부한 이 온천을 즐기러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내리면서 바위를 깎아 마치 계단식 논이나 풀장처럼 보이는 독특한 산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산의 흰색은 온천수의 석회 성분이 바위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덮은 결과다. 넓은 풀장 같은 곳에 물이 가득했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 부드러운 진흙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며 다리를 덮는다. 새하얗게 깎여 나간 바위들을 바로 코앞에서 보니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대자연의 위대함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터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하얀 산, 뜨거운 물
    1 땅에서 솟은 뜨거운 물이 흘러내리면서 자연의 경이를 만들어냈다.

    2 돌로 포장된 거리를 대리석 기둥과 돌조각들이 호위하고 있다.

    3 산 정상에서 뜨거운 물이 도랑을 타고 콸콸 흘러내려오고 있다.

    이국적인 정원

    위로 더 올라가자 10월 말인데도 따뜻한 날씨와 뜨거운 물 때문인지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산 정상에서부터 도랑을 타고 물이 콸콸 쏟아져 내려온다. 다른 사람들처럼 도랑가에 앉아 물에 발을 담그니 피로가 싹 가신다. 산 아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져 명당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산꼭대기로 가자 노천탕이 나온다. 바로 근처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아폴론 신전 근처에 있는 이 욕탕은 대리석 조각들로 멋을 내고 야자나무가 울창한 것이 이국적이면서 독특하다. 잃어버린 낙원이랄까. 파묵칼레의 온천은 고대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로마 시대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니 여기서 그 정취를 한번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터키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하얀 산, 뜨거운 물
    1 35℃의 물은 노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2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은 보존 상태가 훌륭하다.

    3 원형 극장 근처의 돌에 새겨진 것은 천사의 날개인지도 모른다.

    4 히에라폴리스의 중심거리에 있는 도미시안 문이 위용을 자랑한다.

    노천탕 뒤쪽에 옛 도시 히에라폴리스가 있다. 이 도시는 조금 더 북쪽에 있는 고대 왕국 페르가몬의 왕 유메네스(Eumenes) 2세에 의해 기원전 190년경에 세워졌다. 그리고 기원후 2~3세기에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전성기를 누렸는데, 당시 로마제국의 그 유명한 목욕문화의 한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는 생각보다 넓은데 남쪽에서 출발하면 우선 큰 원형극장이 보인다. 2만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기원전 200년경에 세워졌는데도 보존상태가 훌륭했다. 고대의 극장을 살펴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무대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특히 눈길을 끈다. 원형극장을 나와 발길을 옮기다 보면 여기저기 흩어진 대리석 조각들과 황량하게 퇴색한 신전과 교회, 욕탕들이 과거의 영광을 아련히 추억하게 해준다.

    여러 유적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히에라폴리스의 중심거리다. 남문(South Gate)에서 도미시안 문(Domitian Gate)으로 이어지는 이 거리는 양쪽의 문뿐 아니라 줄지어 선 대리석 기둥과 돌조각들로 아주 멋지다. 어느덧 산 위의 오래된 도시에 황혼이 찾아왔다. 석양을 받아 포도(鋪道)와 기둥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눈앞에는 왁자지껄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스인, 페르가몬인, 로마인이 있는가 하면 아랍인, 흑인들도 눈에 띈다. 모두 온천욕을 한 다음인지 그들의 목소리는 나른한 행복함으로 차 있다. 이제 고대의 도시에서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치려 한다. 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이 길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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