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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박사의 한의학 이야기

허준의 스승은 서경덕 제자, 선인(仙人) 박지화였다

허준의 스승은 서경덕 제자, 선인(仙人) 박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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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류 드라마 ‘허준’방영 이후 많은 사람이 구암 허준(1539~1615)의 스승을 ‘유의태’라고 알고 있다. 또 일군의 동의보감 연구가들은 허준의 전임 어의(御醫)였던 ‘양예수’가 그의 스승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동의보감의 사상적 기반과 처방의 특징, 이에서 비롯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허준의 스승이 화담 서경덕 학파의 맥을 이어받은 수암 박지화라고 주장한다.
허준의 스승은 서경덕 제자, 선인(仙人)  박지화였다

중국 상하이대 약대에 세워진 구암 허준의 동상.

2006 년 일본 한의학 연구의 메카인 도야마대학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식사 도중 일본 교수 한 분이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동의보감 드라마에 나온 허준의 스승 유의태 스토리가 참 감명 깊었습니다. 그분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한국을 넘어 일본 의사의 감성까지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은 한류 드라마의 위력에 크게 놀랐지만 필자는 곧 걱정에 사로잡혔다. 드라마의 내용이 전혀 사실(史實)과 관련 없는 내용일뿐더러, 질문을 받았으므로 어떻게든 진실을 말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유의태가 허준의 실제 스승이 아니라는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유의태와 유이태

사실 우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허준의 스승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유의태라고 답할 게 뻔하다. 유의태라는 이름이 처음 기록에 등장한 것은 1965년 9월1일 대한한의학회보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서였다. 집필자 노정우 선생은 논문에서 “허준의 할아버지가 경상도 우수사를 오래 역임하였고 허준의 할머니는 진주 출신의 류씨인 점으로 미루어 그의 어렸을 때의 생장은 역시 경상도 산청이라고 생각된다.(중략) 당시 산청 지방에 유의태라는 신의(神醫)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허준의 의학적인 재질과 지식을 키워준 스승이었다는 것이 여러 각도로 미루어 보아 부합하는 점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허준이 젊은 시절 유의태로부터 의학수업을 받았다는 설(說)은 노정우 선생의 논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소설 동의보감’의 저자 이은성씨는 바로 이 논문을 근거로 허준의 삶을 소설로 재구성했다. 드라마 종영 이후 유의태는 한의학의 큰 스승으로 받들어졌다. 심지어 허준이 극중에서 유의태를 해부한 장소인 밀양 얼음골이 관광지로 급부상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에 놀란 학자들은 ‘류의태(柳義泰)’라는 인물에 대한 검증에 나섰지만 그 어느 문헌과 기록에서도 그의 이름 석자를 찾지 못했다.

학자들은 그 대신 경남 산청 출신의 ‘유이태(劉以泰·?~1715)’라는 인물을 들춰냈다. 그는 조선 숙종 때 사람으로 어의로 천거되기도 한 인물. 문헌에는 그가 어의도 아니면서 숙종의 진료에 참가했다는 기록이 곳곳에 보인다. 그는 왕이 아프면 내의원에서 재촉을 해 모셔올 정도(숙종 39년 12월16일 사헌부가 올린 보고)로 유명했으며, 결국 숙종의 어의가 돼 왕의 종기를 치료한 후에야 고향인 경남 산청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는 홍역과 전염병에 대한 연구서인 ‘마진경험방’을 저술했으며(1931년 한역 출간) 이재수의 한국한의학사에는 신이 내린 탕으로 알려진 ‘유이태탕’이 소개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유이태의 이런 명성에도, 그가 허준의 스승일 수 없는 치명적 이유가 있다. 유이태가 산 시대가 허준(1539~1615 ·선조 말, 광해군 때 어의)이 죽은 지 한참 후인 숙종 때이기 때문이다. 결국 드라마의 기초가 된 노정우 선생의 논문은 유이태의 전설적 명성을 재구성해 만든 설화에 불과했고, 실재가 아닌 가공의 사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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