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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⑥

육영수 여사

국민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일만 골라서 한 가장 정치적인 사람

육영수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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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

경기도 양주를 방문해 새마을사업을 격려하는 육 여사.

여사는 편지를 보낸 사람을 의장 공관으로 오게 했다. 시장통이나 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에게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손수레가 있다면 무슨 장사를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 남자가 ‘포도를 팔고 싶다’고 하자 한 관에 얼마에 사와 팔 때는 얼마에 팔겠는지, 수익은 얼마를 낼 수 있는지도 물었다.

평범한 대화였지만 세심하게 이 사람이 과연 도와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탐색하는 절차를 거친 것이다.

여사는 대화를 마치고 그에게 봉투 2개를 건넸다. 하나에는 손수레 한 대 값과 포도 10관을 살 수 있는 돈을 넣었다. 다른 하나에는 자신을 만나러 오는 데 든 왕복여비, 점심 값, 약간의 여비를 넣었다. 여사는 이런 명목들을 죽 적은 종이까지 봉투에 넣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부디 열심히 해 성공하세요.”

이것이 육 여사가 민원을 처리한 첫 사례였다.



처음 가본 ‘가난’의 현장

어느 날 여사는 신문 사회면에 실린 짤막한 기사 하나를 보았다. 이촌동 판자촌에 사는 박옥순(24)이라는 여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미역국은 고사하고 쌀이 없어서 젖먹이와 함께 굶어 죽게 생겼다는 것이다. 여사는 미역과 고기, 산모가 입을 옷, 아기 배내옷, 내복, 이불 한 채, 쌀 한 가마니를 사 박 여인의 주소지를 찾아 나섰다.

판자촌은 한강변에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악취가 진동하는 동네였다. 소변을 골목에서 해결하는지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수도는 물론 하수도 시설도 없어 골목은 생활폐수를 버린 오물로 넘쳐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는가 싶어 여사는 충격을 받았다.

도무지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허가촌이라 번지도 없이 마을 전체가 뭉뚱그려 한 번지였다. 아무 집이나 들어가 아기 낳은 집이 어디인지 물었지만 허사였다. 더욱 놀란 것은 육 여사가 만난 사람들 모두가 퀭한 눈빛과 허기진 낯빛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동행한 기사를 불러 집을 찾았다. 거적때기로 만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몸이 퉁퉁 부은 산모와 탈수가 된 듯 쪼글쪼글한 어린 생명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언제 밥을 해먹었는지 솥이고 냄비고 음식찌꺼기가 바싹 말라 있었다. 물도 없고 불도 없었다. 기사를 시켜 물과 연탄을 사온 육 여사는 부엌으로 가 밥과 국을 끓였다. 산모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육 여사의 두 손을 잡으며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다.

이 일이 있은 뒤 영부인이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직접 찾아다닌다는 게 입소문으로 번지자 각종 편지가 줄을 이었다.

어느 날은 대통령 내외의 호주 뉴질랜드 순방 소식을 라디오로 전해들은 경남 밀양의 한 노인이 ‘둘째아들이 뉴질랜드에서 목축 질병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직접 만나 격려를 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여사는 실제로 청년을 수소문해 만나 어머니의 마음을 전해주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배워서 할 생각을 하셔야지요”

그렇다고 육여사가 가난한 사람을 무조건 돕는 식은 아니었다. 도움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고, 무엇보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데 주력했다.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낚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쓴 것이다.

어느 날은 삼양동 판자촌을 찾았다. 수도도 급하고 변소도 부족했고 지붕에 플라스틱도 얹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국수기계를 사드릴 테니 국수공장을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요. 정부에서도 분식을 장려하고 사람들도 한 끼 정도는 분식을 하고 있으니 수요(需要)가 있잖아요. 10가구나 20가구가 조합을 만들어보세요. 우선 국수틀 2대와 밀가루 20포를 밑천삼아 시작해보세요.”

당장 국수틀과 밀가루가 생긴다 하니 해보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육 여사는 “조합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하곤 기다렸다. 며칠 뒤 20대 청년 7명이 조합을 구성했으며 공장자리도 물색해놓았다는 답이 왔다. 여사는 꼼꼼하게 이들의 의지를 테스트하는 면접을 한 뒤 확신이 서자 비서를 시켜 공장건물까지 확인한 후 약속대로 국수틀과 밀가루를 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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