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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⑥

‘미신적 음악 감상’과 ‘지적 감상’ 사이

음악이 다가오지 않을 때 오디오 놀음에 빠져보라

  • 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미신적 음악 감상’과 ‘지적 감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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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리 좋은 음악을 들어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수십년 끈을 놓지 않았던 음악과 담을 쌓을 수도 없다. 이전의 삶 자체를 부정할 순 없으니까. 하쿠나마타타폴레폴레! ‘걱정 마 다 잘될 거야’라는 뜻의 주문을 외운다. 따지고 보면 일생 벗해온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가의 이름이 바로 그런 뜻의 주문이었다.
‘미신적 음악 감상’과 ‘지적 감상’ 사이

줄라이홀 내부



‘내이름은 건이야. 마를 건(乾), 건씨라고 나를 불러줘….’연애의 계절풍이 다시 불어온다면 상대에게 요즘 이런 글발을 날리고 있을 것 같다. ‘가(감흥)이 사망하도다.’ 감흥 없는 이 마음을 연애는 이렇게 표현하게 만들 것이다. 연민은 ‘련민’이 되고 해돋이는 ‘해도디’로, 평상시는 ‘평상소’로, 가소롭다는 ‘가로솝다’로 배배 꼬인다. 맞춤법에 승복할 수 없는 팍팍한 기분. 그 어감의 심리학을 판독해주고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이젠 없다. 연애 상대가 없는 건 생물학적인 현상이고, 인류학적으로 대범하게 그러려니 한다. 문제는 도대체 ‘가이 없는 것이다. 음악 말이다. 세상에나! 음악이 나를 울리지도 죽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토요일 오전부터 일요일 밤 깊은 이 시간까지 판을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고 있으나 내 이름은 ‘건’이에요. 가이는 대체 오데로 갔나?

책상 위에 방금까지 듣던 LP 박스세트를 올려놓아본다. 콰르테토 이탈리아노가 연주한 9장짜리 모차르트 현악 4중주 전집이다. 메이드 인 홀랜드란 글자가 선연하게 박혀 있는 필립스 오리지널이다. 4명의 멤버 가운데 제2 바이올린 엘리사 페그레피가 할머니로 쭈글쭈글해지기 전 중년 초입의 넉넉한 표정으로 재킷을 장식한다. 값비싼 최고수급 연주집이다. 전반적으로 속도가 느릿느릿한 제 18번 A장조, 쾨헬(KV) 464번을 오르토폰 주빌리 카트리지로 샅샅이 들었고 그 직전에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고에츠 실버그라도로 제17번을 완청했다. 음악칼럼을 줄창 쓰던 시절이라면 무언가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모차르트 생애 어느 시기의 작품이고 연주자들은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했고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나 건씨 아저씨는 지금 모차르트조차 ‘가로소울’ 판이다. 웬일이니?

삶은 비(非)가역

읽기 싫은데 책을 읽고, 듣기 싫은데 음악을 계속 듣는다.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건만 계속 살아가는 것과 동일한 이유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두는 것이 불가능한 비가역적 영역이 인생에 있다. 가령 이 순간부터 내가 책읽기와 음악듣기를 완전히 중단한다면 이전까지의 생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럼 그 다음엔 무얼 하지? 땅을 파나, 산을 타나, 주식 부동산 같은 재테크 쪽으로 눈을 돌려보나. 좋으나 싫으나, 미우나 고우나 가던 길을 계속 가고 하던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 영역이 있다. 그것이 비가역이고 불가역이며, 다른 말로 팔자고 숙명이다.



이번엔 컴퓨터 옆에 바닥부터 쌓아올린 책들에 눈을 준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필경 이 책을 금서(禁書)로 지정한 국방부 덕일 것이다. 주위사람 상당수가 이 책을 읽었거나 구입했다. ‘참 나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평서다. 사마리아인들보다는 체감 숫자가 적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도 상당한 독자가 있다.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 이상이라고 하지만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부른다는, 진화생물학에 입각한 강렬한 종교 비판서다. 간혹 주경철의 ‘대항해시대’의 독자도 목격된다. 고교 시절의 수업으로 더 이상의 학습을 끝내고 마는 것이 세계사 분야인데 근대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새로운 시야를 제시한 멋진 책이다. 아주 드물게 독자를 만날 수 있는데, 너무도 알려지지 않아 신비로운 느낌마저 드는 저자 김상태의 ‘도올 김용옥 비판’도 있다. 3쇄째 책이다. 꽤 여러 권 나온 김용옥 비판서의 결정판으로 봐도 될 것 같다.

전우용의 ‘서울은 깊다’는 이른바 인문적 소양이 넘쳐나면 이런 정도의 글맛과 함량을 보일 수 있다는 사례가 될 만한 책이다. 나이 좀 들고 생의 무게와 근력이 부풋한 사람이라면 마음먹고 읽을 만하다. 여기에 홍성욱의 ‘과학에세이’, 서병훈의 ‘포퓰리즘’, 도정일의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등도 추가된다. 출간 재출간을 거듭한 김열규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도 있고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가 또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나의 소소한 일상’은? 에릭 홉스봄의 ‘폭력의 시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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