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설적으로 이는 자산운용사들이 현재의 시장을 얼마나 자신 없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증권사의 기류는 좀 다르다. 11월 초를 기준으로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의 강세장)’라는 전제를 깔고는 있지만, 대다수의 증권사는 900포인트를 허문 주가가 1200선까지 반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은 내년 초 2000포인트 돌파를 외치기도 하고, 또 어느 증권사의 투자전략 담당자는 연내 초강세장의 도래를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그동안 신중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취하면서 투자자를 보호해오던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까지 1350포인트 이하에선 주식을 사라는 강세입장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자산운용사는 자신감을 잃고 있는데 증권사는 자신감을 보이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그 이유는 바로 증권사와 운용사의 기능상 차이에 있다. 이론적으로 증권사는 고객의 자산에 대해 매매 중개와 매매 조언 그리고 매매 대행을 하는 기관이다. 이를테면 고객이 자신의 증권 계좌에 돈을 넣고 증권사 직원에게 조언을 부탁할 수도 있고, 아예 거래를 대신 해달라고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후자는 ‘매매 조언’이 아닌 ‘일임 매매’가 된다. 이는 이론적으로 불법은 아니지만, 고객과 증권사 직원 간의 이해상충의 문제를 발생시키는 통로가 된다.
증권사와 운용사의 차이
증권사 직원 처지에선 자신이 담당한 고객이 잦은 거래를 통해 매매 수수료를 많이 발생시키면 시킬수록 인센티브를 많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아무래도 고객의 자금을 자주 사고 팔아 수수료가 많이 나오도록 심정적으로 유도하게 된다. 하지만 고객의 처지에선 주식을 자주 사고팔수록 수수료 부담이 커지고 나중에는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물론 고객의 수익도 크고, 거래도 많아 증권사의 이익 또한 클 때는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객은 자신의 수익률이 나빠지는데 잦은 거래로 말미암아 수수료가 지급된다면 수익률 저하를 문제 삼게 된다. 대개 증권사의 일임 매매 분쟁이란 이런 데서 출발한다.
이런 일임 매매가 자주 문제를 일으키자 꽤 많은 증권사가 이런 유형의 영업을 자체적으로 억제하는 한편 그 대신 ‘랩 어카운트’ 제도를 도입했다. ‘랩 어카운트’는 고객이 맡긴 돈을 증권사의 리서치나 시장팀이 판단한 기준에 따라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즉 증권사 일선 직원의 판단에 따라 임의로 매매하는 구조가 아니라, 증권사라는 조직이 가진 역량이 고객 자산의 운용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자산운용사에서 거대 규모로 운용하는 펀드가 아무래도 몸집이 무거운 점을 감안하면, 경우에 따라 이 상품의 수익률이 펀드보다 좋기도 하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고객의 입장에선 익숙하지 않고, 수수료도 비싼 편이라 그리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며 일부 고액 자산가나, 증권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법인고객만 이런 형태의 거래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