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호

이것이 ‘진짜’ 인도다

  • 이경남 전문 번역가

    입력2008-12-08 18: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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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진짜’ 인도다

    <b>아마티아 센, 살아 있는 인도</b><br>아마티아 센 지음 이경남 옮김 청림출판<br>원제 : The Argumentative Indian

    굳이 ‘나비효과’를 들먹이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면 지구 반대편 사정부터 묻는 세상이 됐다. 시차에 적응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지구촌은 더 이상 추상적 무대가 아니라 당장 오늘 부대끼고 헤쳐가야 할 현실이 됐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고 자문해보면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는다. 세계는 고사하고 아시아에 대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무지하다. 무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빗장을 흔드는 외부 성화는 갈수록 거세지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직된 사고를 고집한다.

    ‘살아 있는 인도’는 조국 인도의 앞길을 가로막는 경직된 정치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자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향한 경고적 자기 분석이다. 그는 인도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한 독법(讀法) 가운데 ‘다원주의’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인도의 빈곤, 계급 차별, 종교 대립을 해소하고 나아가 인도·아대륙의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제도는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는 민주주의뿐이라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이쪽과 저쪽의 이분법에만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센 교수가 제시하는 인도라는 다면체는 ‘열린 사회’를 향한 관문이기도 하다.

    ▼ Abstract

    종교 다원주의의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도 정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힌두교 원리주의자들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민족주의는 인도 고유의 충만함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인도에는 1억4000명 이상의 무슬림이 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 국민을 몽땅 합친 것보다 많은 숫자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이슬람 문명’이라고 정의한 문명권에 있는 나라 중 인도만큼 많은 무슬림이 존재하는 나라는 없다.



    인도를 고정된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은 내부의 세력만이 아니다. 인도 전통은 유별나게 종교적이라거나, 비과학적이라거나, 계급이 배타적으로 분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도 인도의 과거와 현재를 단순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서구와 대조되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고정된 동양의 모습으로는 인도의 실체를 잡을 수 없다. 문화적, 지적 교류를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무엇이 서구적이고 무엇이 동양적(혹은 인도적)인지 구분 자체가 어려워진다. 사상의 기원은 순수성이 쉽게 보존되는 그런 영역이 아니다.

    우리는 사상과 관습이 무서운 속도로 나라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른바 문화적 개성이 화두로 떠오르는 시대다. 어떤 획일화된 서구적 양식이나 내용이 없는 ‘근대성’으로 문화를 평준화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하지만 세계화에 대한 인식도 시급히 재정리해야 할 현실적 문제다.

    세계화에 대한 저항은 말 그대로 세계적이고, 여러 측면에서 세계의 불평등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화는 새로운 개념도 아니고 무용지물도 아니다. 어떤 지역이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개발과 진보를 통해 혜택을 입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상과 사람과 상품과 기술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이동이 서구의 제국주의적인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된다면 단호히 저항해야 마땅하다.

    ▼ About the author

    1933년 인도 벵골에서 출생한 아마티아 센은 1953년 인도 캘커타대를 졸업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빈곤과 불평등에 시달리는 인도의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가진 센은 기아의 원인에 관한 연구에 주력해 식량 부족의 실질적 해결책을 개발하는 데 앞장섰다.

    후생경제학, 소득분배론 분야에서 권위 있는 이론을 제시한 그는 빈곤의 정도를 측정하는 센 지수를 개발해 빈곤층의 경제력 향상에 결정적인 수리 모형을 마련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조리 있고 통찰력 있는 지원군’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 같은 찬사를 받는다. 경제학에서의 윤리와 철학을 복원한 공로로 198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것이 ‘진짜’ 인도다

    인도 뭄바이의 불가촉 천민 집단 거주지역. 이 지역 주민들은 세탁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경제학자로서 센은 국제무역에만 매달리는 인도의 경제정책을 비판한다. 그는 광범위한 교육, 문맹 퇴치, 의료제도 개혁, 토지 개혁, 남녀평등권 조성(특히 여성교육과 고용)과 같은 정책으로 국민적 참여를 유도하지 않고서는 인도의 경제성장을 보장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런 정책의 전제로서 민주주의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작금의 인도 정치 상황을 깊이 우려한다. 인도의 자다브푸르대와 델리대, 영국의 런던대와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를 거쳐 2004년부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Impact of the book

    센 교수가 겨누는 칼 끝에는 조국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힌두교 원리주의와 동서를 이분법으로 갈라놓고 제멋대로 인도를 찬미하거나 경멸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제 발 저리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은 우리도 그의 예봉을 피할 수 없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서로 업고 갈 수밖에 없는 한몸인 처지에 서로를 ‘꼴통’과 ‘철부지’라며 흔들어대는 보수와 진보, 좌도 우도 아닌 가운데 어디쯤에서 우왕좌왕하며 서로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이데올로기 신봉자들, 천국을 외치며 지상의 이웃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 종교 지도자들, 모두 이 책이 겨냥하는 고질적인 이분법자로서 경고 대상이다.

    그는 ‘힌두교 전통이 갖고 있던 너그럽고 관용적인 부분을 없애는 데 열중’하는 작금의 힌두교 정치행동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정치 상황을 우려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지겹게 반복되는 구호만 외쳐대는 호전적 신앙이 사려 깊은 토론을 방해한다’고 일침을 놓는 센 교수의 분석은 조국 인도를 향한 외침인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치닫는 세계에 대한 중층적 경고다.

    ▼ Impression of the book

    출판사 편집 담당자는 처음 원서를 필자에게 건네면서 “그냥 한번 읽어보시라”고만 했다. 그러고는 “여러 번역자에게 퇴짜 맞은 작품”이라고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였다. ‘인도’ 하면 라즈니시, 크리슈나무르티 등의 명상록이나 류시화나 홍신자의 구도적 순례 장소로만 알고 있는 한국 독자에게 논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도의 역사와 문화와 정치 이야기는 먹혀들기 힘들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그런 쪽의 이야기라면 흥미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냥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원제는 ‘논쟁을 좋아하는 인도인(The Argumentative Indian)’이다. 제목의 의도는 금방 분명해졌다. 인도 안팎에서 행해지는 인도에 대한 편협하고 고착화된 독법을 경계하고, 역동적인 문화의 복합체인 인도를 열린 시선으로 재발견하라는 촉구였다.

    동서를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인문적 지식의 방대함은 놀라운 수준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코스모폴리탄적 사고의 유연성과 동서를 한몸에 끌어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냉정한 균형 감각이 돋보였다. 앞부분을 조금 읽었을 뿐이지만 바로 출판사에 번역을 하겠다고 연락했다. 세계적으로는 다양성을 무시한 국가주의, 새로운 종교 이데올로기가 유령처럼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나마 한국 사회에선 한물간 냉전논리가 다시 득세하는 상황에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한 경제학자의 애국적 호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작고한 컬럼비아 대학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무지의 충돌’이라고 일축한 적이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말씀에 ‘원수는 없다’고 점잖게 응수한 선문답 같은 일침이었다. 세계를 ‘서구 문명’ ‘이슬람 문명’ ‘불교 문명’ ‘힌두 문명’ 등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대립의 현장으로 설명한 헌팅턴의 단세포적 사고도 문제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그 ‘문명’이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트남을 모르고 지루한 샅바 싸움으로 힘만 빼다 혼쭐이 난 미국이지만, 30년의 세월이 지나 상대가 바뀌었어도 그 무지는 변하지 않았다.

    종교 이데올로기는 정치나 경제 이데올로기만큼이나 신봉하는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괴물이다. 종교와 종교는 서로의 교리로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해석과 인간 사회의 소통 수단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그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의 다문화적 특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신론을 포함해 힌두교, 자이나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시크교, 불교에 공통의 고향을 제공한 인도는 스탈린주의, 진보주의, 마오쩌둥주의, 사회민주주의, 간디주의 등 동서양의 사상이 복잡하게 얽혀 융합된 ‘이즘’의 실험장이다. 센 교수는 이런 복합성을 인도의 특수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문화의 보편성으로 취급한다. 다양성은 사회가 구성되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붙는 보편적 특성이라는 분석이다.

    ‘살아 있는 인도’는 아리아인의 인도도 아니고 힌두교의 인도도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인도다. 우리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듯, 인도 역시 거지와 성자의 나라가 아니다. 11억 인구를 바탕으로 정보기술(IT)과 영화 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인도는 우리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미래의 무대다.

    Tips for further study

    이것이 ‘진짜’ 인도다
    ‘살아 있는 인도’가 나온 직후, 센 교수의 책이 잇따라 두 권 더 나왔다. ‘센코노믹스’(원용찬 옮김, 갈라파고스)와 ‘불평등의 재검토’(이상호 옮김, 한울·사진)가 그것이다. 인도의 역사와 철학, 문화를 아우르며 빈곤과 불평등을 다루는 점은 한결같지만, ‘살아 있는 인도’가 경제의 선결 조건으로서 문화 조건을 다룬 총론이라면, 두 책은 본격 경제 문제를 다룬 각론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 이옥순 교수의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푸른역사)도 인도에 대한 통념을 반성하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인도가 과연 시간이 정지된, 환상적인 인도, 고단한 일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순례의 장소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은 영국인이 쉽게 인도를 통치하기 위해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보다도 이미 서구화된 사고의 틀로 인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복제 오리엔탈리즘’이 더 큰 경계 대상이라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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