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그녀의 실물은 출연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크게 달랐다. 게다가 언뜻 포털사이트에서 본 프로필 사진에 불만이 생겼다. “이렇게 생명력 넘치는 여배우가 인터넷상에선 왜 실물의 미학을 반영하지 못했나” 싶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녀의 이미지는 시시각각 변했다. 진짜 얼굴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마치 중국의 변검술사처럼, 김혜나라는 인물은 한두 가지 콘셉트로 정리하기 힘들었다. 결국 ‘설정’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자 김혜나는 물처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80년 가을에 태어난 그녀는 21세기의 도래와 함께 영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2001년 독립영화 ‘꽃섬’에 주연으로 데뷔하며 영화계에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것. 극중 인물 역시 실제와 같은 이름의 ‘혜나’. 이후 지금까지 그녀가 출연한 상업영화는 적지 않다. 2003년 ‘거울 속으로’를 비롯하여 ‘아는 여자’‘신부수업’‘레드아이’‘역전의 명수’ 등을 두루 거쳤다.
2008년에는 엄마 봉순(김해숙 분)이 어린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경축! 우리사랑’에서 봉순의 딸을 연기했다. 지난해 개봉작 ‘요가학원’에서는 얽히고설키는 여성의 욕망을 연기했고, 올해 ‘카페 느와르’와 ‘연인’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거의 매년 한 편의 작품에 출연한 셈이다.
또한 대중이 잘 모르는 다양한 독립영화의 필모그래피까지 그 틈바구니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무려 10년간 15편에 출연한 강행군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사이사이 쉬지 않고 연극무대에도 섰다는 점이다. 게다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KBS ‘못 말리는 결혼’에 출연했고, 현재 안방극장에서 주부들을 울리고 웃기는 KBS 아침드라마 ‘다 줄 거야’에서 열연 중이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무슨 연기를 뽑아내는 기계도 아니고. 이쯤 되면 인터뷰 장소에 진한 다크 서클을 눈가에 드리우고 피로에 전 히스테리를 달고 나타날 만도 한데 지금 눈앞의 그녀는 밝게 웃으며 즐겁게 대화를 즐기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혜나는 카멜레온이다”
▼ 김혜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한 단어로 표현해주세요.
“어? 첫 질문부터 너무 센데요? 어렵다. 음, 좋아요. 카멜레온? 저는 계속 변해왔어요. 지금도 변하고 있고요.”
▼ ‘천의 얼굴’을 가진 여배우?
“그렇다고 말씀드리긴 쑥스럽고. 결국 자기자랑으로 시작했네요?(웃음) 10년 넘게 활동했고 지금도 활동 중이지만 일반 관객이 저를 쉽게 못 알아봐요. 저는 어떤 작품에서든 캐릭터에 녹아들어요. 그래서 제가 나오는 영화를 여러 편 본 분들도 등장인물이 모두 저라는 걸 연결짓지 못하시더라고요. 제가 봐도 신기할 따름이죠.”
▼ 그래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첫 작품부터 징조가 있었어요.(웃음) 데뷔작 ‘꽃섬’ 시사회 때 제 모습이 담긴 엄청나게 큰 포스터 앞에 감독님과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관객분이 와서 감독님께 사인을 받더니 이 여배우는 왜 함께 안 왔느냐고 묻는 거예요. 제가 바로 옆에 서 있었는데요. 그렇다고 여배우가 ‘이게 저예요!’라고 외칠 수도 없고.”
김혜나는 극중 캐릭터와 실제인물이 대중의 인식에서 분리되는 이런 기현상이 10년 동안 줄곧 이어져왔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