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지금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 정치 수준에 대해선 설명할 필요 없이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다. 한국에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뿐만이 아니다. 교육문제도 잘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연일 학교폭력 뉴스가 신문을 장식하고, 학부모들은 사교육과 입시에 목을 맨다. 정부와 학교는 열심히 교육을 하지만 효과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정치가 형편없고 교육이 잘못되고 있는데 다른 것이 잘될 리 없다. 그런데도 위기의식을 갖지 않는 것은 경제 때문으로 생각된다. 경제규모 세계 11위 정도면 잘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정치와 교육이 뒷받침하지 않는 경제는 장래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위기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해서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일리가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전 대통령 때는 정치가 훌륭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전 대통령 때도 그렇지 못했던 것을 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한국 정치와 한국 교육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근본 원인은 한국인의 고유 정서와 사상을 무시하고 서양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따른 데 기인한다고 본다. 일제로부터 광복을 한 우리들은 5000년간 해오던 우리의 것을 버리고 서양의 것을 받아들이기에 바빴다. 그러나 아무리 서양 것을 따른다 해도 서양처럼 되지는 않는다. 서양처럼 되지도 못하고 우리의 것마저 잊어버림으로써, 우왕좌왕하는 우리는 저 한단학보(邯鄲學步)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가 되었다.
한단학보의 교훈
중국 전국시대의 조(趙)나라 서울 한단은 유행의 첨단을 걷는 도시였다. 그러자 연(燕)나라의 한 시골 청년이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배우기 위해 한단에 갔지만,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배우지 못하고 자기의 걸음걸이를 잊어버려 결국 기어서 집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장자’에 나온다.
이제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한국인의 사상과 정서를 알아야 하고, 그에 맞는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의 발전 비결을 오히려 우리의 전통 속에서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오늘날 불고 있는 한류열풍은 이를 입증한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인지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어떤 사람이 나와서 한국인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한류 정치’를 꽃피울 수 있을까? 필자는 ‘곰의 이미지와 어머니의 이미지를 합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이를 ‘곰 어머니’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통령이 왜 ‘곰 어머니’여야 하는가? 또 ‘곰 어머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한국인은 매우 독특한 사상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 한국 사상의 원형은 유교의 표현을 빌리면 천인무간(天人無間)이고, 천도교의 표현을 빌리면 인내천(人乃天)이다. 천인무간이란 하늘과 사람이 사이가 없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고, 인내천은 사람이 바로 하늘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정서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한 가지가 이중성이다. 본래의 모습은 하늘 같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렇지 못한 것, 이것이 한국인의 이중성이다. 이럴 경우 한국인에게는 한(恨)이 맺힌다.
초라한 모습을 한 아주머니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면 대개의 아주머니들은 섭섭하게 생각한다. 초라한 아주머니는 현재의 모습일 뿐이다. 본래는 공주이고 하늘이다. 따라서 ‘사모님’이라고 불려야 비로소 그 아주머니는 만족한다. 이러한 한국인의 이중성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춘향전이다.
춘향은 본래 대감의 딸로 태어난 고귀한 존재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천한 기녀의 딸이었다. 이 중에서 춘향의 본래 모습을 알고 존중해주는 사람은 이몽룡이지만, 현실적인 천한 모습만을 보고 무시하는 사람은 변 사또였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취하는 춘향의 태도는 너무나 다르다. 이몽룡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사랑하지만, 변 사또에게는 목숨 걸고 항거한다. 그리고 변 사또와 같은 사람은 암행어사가 출두를 해서라도 제거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한다.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는 거의 대부분이 춘향전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을 보면, 한국인과 춘향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을 공주, 왕자처럼 대해야
이러한 점에서 한국에서 성공하는 대통령과 실패하는 대통령의 갈림길은 그가 이몽룡이 되는지 변 사또가 되는지에 달려 있다. 한국인들은 대통령이 아무리 권력이 막강하고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그가 변 사또로 보이면 암행어사가 출두 해서 제거하기 바랄 정도로 싫어한다. 반면 이몽룡으로 보이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헌신하고 존경한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 중에 이몽룡의 역할을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1년에 한 번씩 노인들을 초청해 단상에 모셔놓고, 자신이 단하로 내려가 술을 따라 대접하는 행사를 했다. 이는 모든 백성을 귀한 존재로 인정하는 상징적인 행사다. 이에 비해 국민을 귀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은 그가 비록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서슴지 않고 무시한다. 그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그는 변 사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어떠한 사람이 이몽룡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