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터뷰] ‘영원한 재야인사’ 장기표 “文, 1984년 민통련 참여 거절”

“文정권 노조·북한·운동권 콤플렉스”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인터뷰] ‘영원한 재야인사’ 장기표 “文, 1984년 민통련 참여 거절”

  • ●親日·반독재 프레이밍 전략
    ●文정권 민주화운동 ‘전매특허’ 냈나
    ●위선의 극치는 文 주변 ‘강남좌파’들
    ●국민 갈등·대립 조장해선 안 돼
    ●한국당 아닌 새 견제세력 나타나야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장기표’라는 이름 앞에는 ‘영원한 재야(在野) 인사’가 수식어처럼 따라붙는다. 50여 년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다섯 차례 투옥돼 9년간 옥살이를 했고, 12년을 수배자로 도망 다녔다. ‘민주화 투사’ 경력으로 치면 고관대작을 하고도 남지만, 그는 기성 정치권과는 거리를 뒀다. 물론 자신의 ‘고집’ 때문에 고난의 길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그런 그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가 되면 서울 광화문 원표공원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고 있다. 과거처럼 독재 타도를 외치는 게 아니다. 운동권 대선배이면서도 운동권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문재인 정권을 비판한다. 1977년 청계피복노조(전태일 분신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당시 노동운동의 중심) 사건으로 구속되면서도 그가 지키려고 했던 노동조합을 저격한다. 6월 10일 오전 서울 충정로 ‘신동아’ 인터뷰룸에서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와 마주 앉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대안적 정치결사체 ‘국민의 소리’를 만들었는데. 

“내 나이가 올해 75세(그는 1945년생이다)다. 젊을 때도 내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나이 들어서 뭘 하겠나.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잘되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4월에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과 ‘국민의소리’를 출범시켰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웃음).”


문명 전환기와 민주시장주의

-대한민국을 잘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날 세계적 대변화는 문명이 전환하는 거다. 새로운 정보문명시대가 도래했고, 지금까지 통용되던 사상, 이념,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대량 실업과 소득양극화, 환경파괴, 인간성 상실 등으로 사회는 붕괴하고 인생은 파탄 난다. 이에 대한 처방으로서 나는 민주시장주의, 녹색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고, 사회민주주의에 생태주의를 더한 새로운 진보 이념을 정립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신문명정책)연구원을 세우고 그 이름으로 강연과 집필도 하고 있다. ‘국민의소리’를 만들어 광화문에서 국민과 대화하면서 유튜브 방송도 하고 있다.” 

-1989년 민중당을 창당했고, 개혁신당과 민주국민당 등에도 참여했는데. 

“새로운 진보 이념의 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제도 정치권에 들어가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에 나가고 현실 정치를 하려고 했지만 신생 정당으로는 어려웠다.” 

-김영삼(YS) 김대중(DJ),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영입 제안도 있었는데. 기존 정당에 들어갔으면….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많았다. 특히 DJ 선생은 나와 함께 (정치를) 하려고 내게 공을 많이 들였다. 그런데 나의 뜻을 100% 펼치지 못한다면 우선 큰 의미가 없었고, 기존 정당정치는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은 많다’고 생각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기존 정당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봤다. 보람과 기쁨을 누리면서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정당 건설을 위해 노력했지만, 나의 능력 부족으로 이뤄내지 못했다.” 

-매주 토요일 마이크를 잡고 ‘국민과의 대화’를 하는 이유는 뭔가. 

“국가 운영이 근본적으로 잘못됐고, 나라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심은 물론 생활 현장, 심지어 통계청 자료에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이 정부는 ‘뭘 잘못했느냐’는 식이다. 그게 진짜 큰 문제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지 않나. 잘못된 걸 알았으면 잘하기 위해 방법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된 게 확인됐는데도 인정을 안 하고 계속 고집을 피운다. 박근혜 정권 때에는 소통을 안 한다고 비난하더니, 정작 자신들은 소통을 더 안 한다. 언론과 국민의 비판을, 지적을,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니 나라도 나설 수밖에.”


민주화운동에 ‘거품’ 무는 사람

-무엇이 잘못됐다고 보나. 

“인사와 경제 문제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예로, 현 정부 들어 ‘인사 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관급 후보자 9명이 낙마했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유은혜 교육부장관 임명장 수여식 후) ‘인사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인사 실패에 대한 유감 표명은 없이 국회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이다. 최근 3·1절 기념사에서는 뜬금없이 ‘빨갱이’를 얘기하더니, 5·18 기념사에서는 ‘독재자의 후예’를, 현충일 추념사에서는 6·25 전사자 유족이 있는 자리에서 (6·25전쟁 공로로 김일성의 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거론한다. 국민 통합보다는 갈등을 부추기려는 정치적 목적 아닌가.” 

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는 일제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고, 지금도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또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선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고 했고, 현충일 추념사에선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며 “광복군 대원들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변호사 문재인과의 만남

-‘정치적 목적’이라면 진영 갈등을 부추겨 자신의 지지 세력을 모은다는 뜻인가. 

“그렇다. 문 대통령과 주변 운동권 인사들은 민주화운동 경험을 내세워 자신들은 정의롭고, 대척점에 있는 자유한국당은 ‘독재자의 후예’라고 하는, 일종의 프레임을 짠다. 정치적으로 상대를 친일 세력, 독재 옹호 세력으로 규정하는 거다. 각종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 전 정권의 치부를 밝히는 것으로 정권의 정당성을 보이려는 것도 집단이기주의를 활용하려는 이기심이다. 프레임을 짜서 나라가 잘되면 좋은데, 이렇게 되면 나라는 망하고 피해는 국민이 본다. 국민 통합에 나서야 할 집권 세력이 정치적, 정략적 이유로 국민 간 갈등과 대립을 조장해선 안 된다.” 

-문 대통령도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강제징집을 당했고, 청와대와 여권 핵심 인사 상당수가 민주화운동을 한 건 사실 아닌가. 

“그 부분은 나도 인정한다. 예전에는 데모하기도 어려웠는데, 문 대통령이 (경희대) 재학 시절에 ‘데모’한 데 대해선 높이 평가해왔다. 그런데 문 대통령과 청와대 주변 운동권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할 정도로 투철하게 민주화운동을 했는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나 안 했나, 전두환 정권 때 반독재 운동을 했나 안 했나 하면서 ‘거품’을 무는 사람들치고 제대로 ‘운동’한 사람은 드물다. 나 같은 사람도 민주화운동을 많이 했나 적게 했나, 그런 말은 안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마치 민주화운동을 ‘전매특허’ 낸 것처럼 말하고, 언론은 그렇게 보도를 한다. 이는 굉장히 어리석고, 위선(僞善)적이다.”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1988년 12월 21일 장기표 대표(앞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시국사범들과 함께 공주교도소를 출소하면서 ‘5공비리 청산’을 외치고 있다. [동아DB]

1988년 12월 21일 장기표 대표(앞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시국사범들과 함께 공주교도소를 출소하면서 ‘5공비리 청산’을 외치고 있다. [동아DB]

그는 테이블에 놓인 원두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쳤다.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민주화 정신이 그렇게 투철하다면 탄압이 가장 심했던 전두환 정권 때에는 왜 변호사만 했는가 묻고 싶다. 1984년 공해문제연구소 창립 초기, 나는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을 조직하기 위해 당시 부산에 가서 ‘변호사 문재인’을 만났다. 후배들이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라고 소개해서 만났는데, ‘같이 하자’고 하니까 ‘이런 일에는 전혀 관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말도 그러했고, 표정도 그랬고, 이후 후배들에게 들어봐도 그랬다.” 

그가 말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은 1985년 3월 29일에 결성된 사회운동단체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구심점 역할을 했다. 상임의장은 문익환 목사가, 고문으로 함석헌, 김재준, 지학순 주교 등이 위촉됐다. 신민당의 직선제 개헌운동과 연대해 대중운동을 전개했고, 1987년 5월 정치권과 민주화운동 세력을 망라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후 문 대통령과 재회하지는 않았나. 

“다시 안 만났다. 현 정부나 여권의 운동권 인사 중에도 1980년대 민주화운동 탄압이 거세지자 나서지 않은 사람이 많다. 나는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민주화운동을 제대로 안 해서 탓하는 게 아니다. 나처럼 모두 데모하고 다녔으면 나라 거덜 났을 거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동대문 포목점 주인이 꼭 데모를 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니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낸 국민 모두가 민주화운동을 한 거다. 내 생각에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인사들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는 거 같다.” 

-콤플렉스라면…. 

“나는 운동권 정서를 잘 알고 있다. 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도 민주화운동을 하긴 했는데 제대로 못 했다. 그러니 민주화운동을 한 강성 운동권 인사의 주장에 영향을 받고 따라가게 된다. 오히려 ‘그래, 나는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안 했다’고 인정하면 당당해지는데, 그걸 못 한다. 위선의 극치는 ‘강남좌파’들이다.” 

-진보적 이념, 혹은 프롤레타리아적 사고를 지닌 부유층을 말하는가. 

“그렇다. 조국 민정수석이나 장하성 주중대사(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등 현 정부 인사 중에서도 수십억 부자가 많다. 이들은 아주 부자이면서 민주화운동의 후예인 양, ‘없는 사람’ 행세를 한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3월 28일 공개한 공직자 재산변동사항 신고내역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참모진 47명 등 청와대 고위공직자의 평균 재산은 14억9400만 원이었다. 문 대통령 재산은 20억1600만 원, 조국 민정수석은 54억7645만 원이었다. 장 대사의 지난해 재산은 104억여 원이었다.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 겸손해야”

-최근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을 강하게 비판한다. 노동운동 계보로 보면 ‘선배’ 아닌가. 

“민주노총은 1990년대 중반까지는 전체적으로 노동자 권익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기득권 강성 노조의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대기업 노조 조합원의 평균 연봉은 1억 원 전후다. 대체로 기득권층인데 손톱만큼도 양보를 안 한다. 자기들 때문에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이 양산되고, 하도급 기업의 저임금화가 고착되는데도 예수나 공자라도 되는 것처럼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 ‘청년실업 해소하라’고 한다. 이정도면 파렴치한 거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겸손해야 한다. 그들은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데, 진짜 노동자들은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게 1987년 6·29 선언을 통해 ‘항복선언’을 받아낸 이후 대기업 중심으로 노조를 결성해 투쟁한 거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마치 민주화와 진보의 중심 세력인 양 설쳐댄다. 나아가 민주노총 사람들은 한국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군사독재 시절에 어용(御用)노조 활동을 많이 했다고 공격한다. 비록 ‘어용’이라고 해도, 그 삼엄한 시절에 노동운동을 한 그 자체는 지금과 달리 굉장히 위험했고 사상적으로도 불온시됐다. 그걸 견뎌내면서 노동운동을 한 거다. 한국노총이 어렵게 노동운동할 때 노조 활동 안 하던 사람들이 민주화 이후 (좀 했다고) 마치 큰 투쟁을 한 것처럼 말하면 안 된다. 요즘은 경찰과 민주노총 조합원이 충돌해 부상자가 생기면 경찰이 처벌받는 시대가 됐다. 경찰이 파업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손을 못 댄다. 오히려 발목이 잡혀 국정 운영을 제대로 못 한다.”


“기가 찬 일 아닌가”

-왜 그렇다고 보나. 

“지난해 8월 (대통령 직속 노사정(勞使政)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출범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내부 강경파의 반대로 참여가 무산됐고, 올해 1월 문 대통령이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설득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주52시간제 시행으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이미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탄력근로제를 연장하기로 했는데도 문 대통령 요청으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기다렸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데 합의하고, 3월에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어 합의안을 의결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비정규직·청년·여성을 대표하는 경사노위 (본위원회) 위원 3명이 회의에 불참해 의결이 무산됐다. 그렇게 해놓고 4월 초 민주노총은 국회 앞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집회를 열고 국회 담장을 부쉈다. 기가 찬 일 아닌가.” 

장 대표가 말한 탄력근로제는 일감이 많을 때 법정 근로시간을 넘겨 일하는 대신 일감이 적을 때는 근로시간을 줄여 단위 기간(최장 3개월) 내 평균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관리하는 제도다. 4월 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단위 기간 6개월로 확대)을 심사하기로 하자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국회 담장을 허물고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북한에 대한 과도한 저자세”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민주노총은 촛불집회 주도 세력인 만큼 현 정부가 민주노총에 부채의식이 있기 때문일까. 

“촛불집회는 대통령도 잘못하면 쫓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업적이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려고 한 게 아니다. 촛불집회는 국민이 나선 것이지, 민주노총이 역할을 했더라도 과도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볼 때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민주노총을 옹호하는 것도 운동권이 가진 일종의 ‘노동자 콤플렉스’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진영 지식인들이나 재야는 노동자를 중시하는 ML(마르크스-레닌) 주의를 비판할 자신이 없다. 반면 기업이나 경영자를 공격하면 상대적으로 표가 모인다. 부자를 공격해주니까. 걱정이다.” 

-대북 저자세 논란은 어떻게 보나.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연달아 쏘아도 ‘확인 중’이라고 한다. 북한 김정은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하지 말라’(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발언)고 해도 (북한에) 우리 정부는 ‘쌀을 주겠다’고 한다. 정부는 ‘인도적 지원’이라고 하지만 북한에 대해 과도한 저자세를 보이니, 국민은 ‘북한에 나라를 갖다 바치려고 하나’ 하고 걱정한다. 괴리가 있다. 운동권 인사들은 대체로 친북한적 성향을 보인다. 북한의 실정을 잘 아는 사람들도 북한에 대해선 무비판적이고, 심지어 맹종하는 경향성을 띤다. 

왜냐면 남북 분단 과정에서 북한은 민족적 정통성을 유지한 자주적인 정부이고, 남한은 미국과 외세 의존 정부로 보기 때문이다. 북한이나 사회주의 국가는 독재나 폐쇄주의, 사회주의 경제정책 때문에 못사는 게 아니라 세계 최강국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국방비에 많은 돈을 쓰니까 못산다고 생각한다. 나는 198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경향성을 ‘북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혔다’고 규정했다.” 

-극우 인사들 중에는 현 정부의 핵심을 공산주의자, 주사파로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태극기 집회에 나가보면 이른바 보수적 지식인들이 무턱대고 현 정권 인사를 ‘빨갱이’ ‘간첩’ ‘주사파’라고 공격한다. 이건 사실도 아니고, 현 정권 인사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공산주의 사상이 투철한 것도 아니다. 그런 문 정권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주사파’라고 공격하는 대신 위선적인 내용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게 옳다.” 

-정권 견제 역할은 야당 몫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실정(失政)을 해도 한국당 지지율은 오르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야권은 단결이 핵심인데, 바른미래당이나 친박 세력과 통합이 안 된다. 올 9월경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가능성도 있고, 그에 맞춰 ‘친박당’이 생길 수도 있다. 정권 견제를 하려면 총선에서 야당 의원을 많이 당선시켜야 하는데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앞서 말했지만, 문명사적 대전환기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와 대정부 투쟁을 주도해야 한다. 현재 야당에 맡겨선 문 정권을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도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직접 국민과 소통하며 연설을 한다.” 

-최근 5·18광주민주화운동 보상과 관련해 심재철 한국당 의원과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보상금 논란이 있었다. 5·18 보상자 명단 공개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화운동을 해서 보상을 받든 안 받든 그건 당사자들의 판단이다. 난 안 받았지만 남들이 받는 걸 그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이 된 인사가 1980년대 해직교수 60여 명을 광주민주화보상법에 따라 1억3000만 원씩 보상을 했다. 그런데 이들 해직교수들은 김영삼 정부 시절 복직해 밀린 월급 1억~3억 원씩을 다 받았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으로 해직됐다고 해서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 대학 총장도 됐다. 누릴 건 다 누렸다. 이 중에 5·18 관련자는 2, 3명뿐이었다. 국민의 세금을 이렇게 나눠 먹어선 안 된다.”


“누릴 건 다 누려놓고…”

-당시에는 왜 비판이 없었나. 

“내용을 알았던 사람들도 사회 분위기상 비판을 못 했다. 그런데 이런 행위들이 민주화운동 세력을 우스운 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내가 이를 비판하는 글을 하이텔, 천리안 같은 PC 통신에 올렸더니 이것이 일간지에 보도됐다. 당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보상을 받으려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의 유족과 상해자만 보상받을 수 있었다. 광주에 가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징역 살았다고 보상받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인우보증(隣友保證·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이 보증을 서주는 것)으로 보상자가 자꾸 늘어난 것도 문제다. 이 문제는 민주 세력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다만 명단을 공개하라는 사람 중에는 5·18 민주화운동 자체를 상당히 부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옳지 않다.” 

-장 대표는 왜 보상금을 신청하지 않았나. 


“5·18 당시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심이 된 국민연합(민주주의와 민족 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조직국장이었다. 시위를 조직하고 배후 조종을 했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3년 반가량 도망을 다녔다.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특별법이 제정돼 당시 내란음모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5·18 유공자가 됐지만 나는 신청하지 않았다. 당시 대학생들은 오늘과 달리 약간은 지식인으로 불렸고, 나는 지식인으로서 민주화운동을 한 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신동아 2019년 7월호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인터뷰] ‘영원한 재야인사’ 장기표 “文, 1984년 민통련 참여 거절”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