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의사는 동물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지만, 내 손으로 생명 활동을 중단시킬 때도 있다. 안락사를 시행할 때다. 수의대 입학 후 죽음을 많이 접하면서 가끔은 내가 죽음에 너무 무뎌지는 게 아닌지 돌아보곤 한다. 그러나 안락사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면, 지금도 어김없이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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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소생 불가능한 질병 진단을 받고 고통이 너무 크다면, 또 그때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한다면, 안락사를 선택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그러나 사람과 달리 동물은 본인 의사를 확인하기 어렵다. 안락사 대상이 된 반려견이 속으로 “이렇게 많이 아파도 나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어요”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안락사를 해야 할 상황이 되면 나는 매번 깊은 고민에 빠진다. 혹시 기적이 일어나 반려견이 치료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도 놓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갈등과 기대가 반려견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더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수의대 재학 시절부터 수많은 동물의 죽음을 봤다. 실험동물 실습시간에 특히 많은 동물의 죽음을 경험했다. 당시만 해도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정립돼 있지 않았다. 내 손에서 수없이 많은 실험동물이 죽음을 맞았다. ‘부득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수의대 뒤쪽 주차장 한 편에 있는 수혼비(獸魂碑·동물의 넋을 기리는 비석)를 지날 때마다 속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동물보호법이 제정돼 살아 있는 동물을 교육에 사용하는 게 아주 까다로워졌다. 요즘 수의대생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동물이 의학, 약학 분야에서 실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를 위해 희생한 동물을 위해 고마운 마음을 조금씩 가지면 좋겠다.
하얀 푸들과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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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수의사로서 처음 안락사를 시행했던 일도 선명히 떠오른다.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 인턴 수의사로 일하던 시기다. 그때는 보통 원장 선생님과 같이 병원을 지켰고, 잘 모르는 상황이 생기면 원장님께 바로바로 여쭤보며 진료를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원장님이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우셨을 때, 갑자기 모녀 보호자가 울면서 하얀 푸들을 안고 들어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 푸들은 한눈에 봐도 너무 야윈 모습이었다. 심각한 상황임을 느낄 수 있었다. 보호자들은 반려견이 얼마 전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날 이후 밥도 먹지 않고 숨도 잘 못 쉬며 통증을 호소하는 소리만 지른다는 것이다. 급히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까맣게 보여야 할 폐에 하얀색 큰 덩어리가 가득 차 있었다. 유방암이 폐로 전이돼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는 엑스레이를 본 순간 이미 알았다. 그 푸들은 살 가망이 없다는 것을. 푸들이 심하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안락사 조건에도 부합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이 반려견이 그렇게 아픈 상황에서도 보호자와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 하면 어쩌나.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은 보호자분을 진료실로 들어오시라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이 아이는 회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가장 강력한 진통제 패치를 붙이는 것뿐인데, 그것으로도 고통을 줄여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하루도 넘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보호자들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잠시 뒤 그들은 조심스레 먼저 안락사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보호자들 의사를 10번이고 되물은 뒤 조심스럽게 푸들을 안고 처치실로 들어갔다. 동물병원 수의사로서의 첫 안락사. 그날 진료실에 멍하니 앉아 “내가 잘한 게 맞겠지?”라고 계속 되뇌던 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반려견은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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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전화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람이 병원에 찾아왔다. 강아지가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손에 들고 있던 실내화주머니처럼 보이는 하얀 가방의 입구를 열어 보였다. 그 안에 4~5개월쯤 돼 보이는 하얀색 몰티즈가 들어 있었다. 잘 씻기지 않아 꼬질꼬질했지만, 귀여운 모습이었다. 이 몰티즈는 바닥에 내려놓자 즐거운 듯 뛰어다니며 우리 병원 동물 가족들에게 마구마구 몸을 들이밀었다. 내게도 달려오기에 만져주니 어린 강아지들이 으레 그러듯 내 손을 물어댔다. 그 순간 보호자가 말했다.
“이것 보세요. 집에서도 이런다니까요.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제 손을 미친 듯이 물어요. 안락사해주세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온몸을 뒤덮었다. 벌컥 화를 내려는 순간, 내 얼굴에서 심상찮은 기운을 읽은 원장님이 나를 잡아 처치실로 끌고 들어가셨다.
“채현아, 참아. 내가 얘기해볼게.”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원장님이 나가신 뒤, 나는 혼자 처치실에 앉아 씩씩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보호자는 형식적인 듯 들리는 “죄송합니다” 인사를 남긴 채 몰티즈를 데리고 병원을 나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몰티즈를 신발주머니에 넣지 않고 가슴에 안았다. 원장님이 어떻게 설명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그 보호자가 동물 또한 생명체임을 깨닫게 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조그맣고 발랄하던 강아지는 잘 살고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직접 나서 보호자의 마음을 돌린 일도 있다. 동물행동학을 전문 분야로 내걸고 호기롭게 병원을 연 초반기 얘기다. 당시엔 손님이 별로 없어 매일 병원에서 책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배 수의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보호자한테 공격성을 보이는 반려견이 있어. 보호자분이 너무 힘들다며 나한테 안락사를 요청하는데, 네가 마지막으로 한번 봐줄 수 있어?”
처음에는 앞 사례 같은 경우일 거라고 짐작했다. 반려견이 문제행동을 보이면 쉽게 안락사를 떠올리는 보호자가 많아서다. 선배한테 선선히 우리 병원에 오시도록 하라고 얘기하면서 속으로는 “그 보호자를 만나면 따끔히 한마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유기견 보호소의 비극
그런데 실제로 만난 보호자와 반려견 밍키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보호자는 정말 조심스럽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손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물렸고, 얼굴을 물려 심한 상처를 입은 것도 3번이나 된다고 했다. 사고 당시 찍어둔 사진을 보니 상처가 매우 깊었다, 해외 동물행동전문가가 봐도 안락사를 고려할 만한 수준이었다.밍키는 병원에서도 공격성을 감추지 않았다. 내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죽일 듯 물려고 들었다. 안락사를 고려한 보호자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래도 보호자에게 일단은 약물 치료를 시도해보자고 권했다. 또 공격성의 원인과 관리 방법 등에 대해 알려드렸다. 일단 이 조치를 취한 뒤 그래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그때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말하자 보호자도 동의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밍키는 잘 지내고 있다. 약물 투여가 조금 도움이 됐을 테고, 보호자의 개를 대하는 자세 변화 또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물 안락사가 가장 많이 시행되는 곳은 유기견 보호소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유기견 보호소의 경우, 10일 정도 유기견을 보호한 뒤 안락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 유기견 상당수는 문제행동 때문에 집에서 버림받은 반려견들이다. 내가 동물행동학 공부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안락사당하는 반려견 수를 줄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물 안락사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본인 의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한 생명의 끝을 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락사를 할 때는 법적인 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데서 더 나아가, 머리와 마음이 아플 정도로 고민해야 한다.
최근 한 동물보호단체의 안락사 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모았다. 그 사건 주인공 또한 안락사에 앞서 진정으로 고뇌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정말 동물을 위해 보호소를 운영하는 단체들이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보지 않으면 좋겠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