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서울형 혁신학교 ‘님비(NIMBY)’ 논란

“학부모 반발 심한 강남보다 예산 목마른 강북 최고 13배”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9-06-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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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신초 ‘공부 안 시킨다’는 인식 팽배

    • “집값 떨어진다”며 재건축조합에서 혁신초 반대 여론 조장

    • 강북 일부 지역, 혁신초 비율 강남 8학군에 비해 최고 13배

    • 연평균 지원금 5700만 원, 재정 부족한 학교일수록 혁신학교 원해

    • “좋다”고 강요만 할 게 아니라 수긍할 만한 성과 보여줘야

    지난해 12월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비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예비혁신학교 지정 반대와 조희연 교육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송파구 헬리오시티 입주 예비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예비혁신학교 지정 반대와 조희연 교육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일반 학교에 가고 싶다. 혁신학교 싫다.” 

    최근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 ‘서울형 혁신학교’로 전환하려는 학교와 이를 반대하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마찰이 일면서 혁신학교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학부모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에서 토론 및 체험 위주의 혁신학교는 ‘학력 저하’를 유발한다고 반대한다. 반면 교육당국은 “실체가 없는 우려일 뿐, 혁신학교는 교육 환경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맞서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5월 29일부터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를 시작했다. 서울 강남구에서는 대곡초(대치동), 개일초(개포동)가, 광진구에서는 양진초(광장동)가 혁신학교 지정에 응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해당 학교 학부모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대곡초는 혁신학교 신청에 대한 학부모 설명회를 개최하려 하자 학부모 100여 명이 교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모임을 결성해 학부모 및 인근 주민 1000여 명에게 반대 서명을 받았다.
     
    개일초는 5월 17일 진행 예정이었던 혁신학교 설명회를 취소했다. 당초 설명회 후 3일간에 걸쳐 학부모를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대곡초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이 알려지면서 입장을 바꿔 5월 16일 혁신학교 신청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대곡초도 다음 날인 5월 17일 결국 혁신학교 지원을 철회했다. 학부모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혁신학교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인 양진초도 5월 21일 혁신학교 전환 철회 의사를 밝혔다.

    “현행 입시제도로는 혁신학교 취지 못 살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중학교를 방문해 ‘소통과 협력을 통한 혁신학교운영 내실화’를 주제로 교직원, 학부모, 학생, 박경미 국회의원 등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초중학교를 방문해 ‘소통과 협력을 통한 혁신학교운영 내실화’를 주제로 교직원, 학부모, 학생, 박경미 국회의원 등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혁신학교는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경쟁보다는 창의력과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키운다는 데 취지가 있다. 김상곤 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009년 경기도교육감 시절 처음 도입했으며 초·중·고등학교 모두 해당한다. 학급당 인원이 25~30명 수준으로 적어 다양한 체험과 토론 중심의 수업이 가능하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2011년 곽노현 교육감 시절 도입돼 조희연 교육감 취임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울 시내 1300여 개 학교 중 혁신학교는 총 312개(24%)로 초등학교 158개, 중학교 40개, 고등학교 15개로 구성돼 있다. 혁신학교 중 초등학교 비율은 74%로 월등히 높다.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습 부진에 대한 우려다.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대곡초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는 기초학력을 쌓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토론과 체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부가 밑받침이 되지 않고서는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학습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아이를 혁신초에 보낸 엄마들 얘기를 들어봐도 ‘중학교에 올라가면 일반초를 다닌 아이들에 비해 학업이 뒤처지는 게 보인다’고 한다. 내 아이에게 그런 모험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입시제도 개혁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혁신학교의 본 취지를 살리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학업 경쟁을 해보지 못한 아이는 입시에서 낙오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개일초 한 학부모는 “만약 학교가 끝까지 혁신초 전환을 고수했다면, 이사를 갔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처럼 학풍과 학업성취도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선택할 때 가장 우선으로 삼은 제1의 조건이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양진초 학부모 A씨가 혁신학교 철회를 반기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다. A씨는 “양진초는 2012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서울공립학교 중 도곡동 대치초와 함께 공동 7위에 올랐다”고 자부하며 “강북 1위 학교가 혁신초로 바뀐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연 혁신학교의 학업성취도가 일반 학교와 비교해 낮은 게 사실일까.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교육부가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2016년 고교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에 따르면 ‘기초학력 미달’ 평가를 받은 혁신고교 학생 비율은 11.9%로 전체 고교 평균인 4.5%보다 2배 높게 나타났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점수에 따라 보통학력 이상, 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로 나뉜다.

    혁신학교는 보통학력 이상 비율도 59.6%로 전국 평균인 82.8%를 크게 밑돌았다. 반면 하위권으로 분류되는 기초학력 비율은 28.5%로 전국 평균 12.7%의 2배 이상이었다. 기초학력 미달을 포함한 기초학력 이하 학생이 40.4%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비교 기준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고 항변한다. 교육청 한 관계자는 “전국 고등학교를 비교 대상으로 한 조사인데, 여기에는 학업성적이 월등히 뛰어난 특목고, 자사고 등이 포함돼 있어 제대로 된 평가라 할 수 없다”며 “혁신학교의 진정한 성과를 알아보려면 혁신학교 지정 초기와 비교해 현재 어떻게 변했는지 조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조사 결과 자료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학력으로 학교를 비교분석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아 데이터 수집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강북 일부 지역 절반이 혁신초

    유은혜 교육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1월 9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공간혁신 학교인 천일초를 방문해 학교 관계자로부터 시설에 대한 내용을 듣고 있다. [뉴시스]

    유은혜 교육부 장관(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1월 9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공간혁신 학교인 천일초를 방문해 학교 관계자로부터 시설에 대한 내용을 듣고 있다. [뉴시스]

    교육부는 2017년부터 학업성취도 평가를 전수조사 방식에서 ‘표집방식’으로 전환했다. 전수조사 평가 결과에 따라 학교마다 등수 경쟁이 심각해 학업성취도 평가 본래의 취지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표집방식은 전체 중·고등학생의 3%에 해당하는 학급만 대상으로 해 학습부진의 정도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다. 안양옥 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정확한 분석을 회피한 채 혁신학교와 학력 저하의 연관성만 부정하는 교육부의 태도가 오히려 학부모들의 불신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학부모들이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로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를 꼽는다. 강남에서 활동하는 입시업계 한 관계자는 “강남은 ‘교육 특구’라는 특수성 때문에 집값이 높게 형성돼 있는 게 사실이다. 교육 때문에 비싼 값을 치르고 강남에 진입한 이들로서는 혁신학교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는 걸 좋아할 리 없다”고 말했다. 현재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강남 모 재건축조합의 경우 집값이 떨어질 걸 우려해 혁신초 전환 반대를 부추겼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혁신학교는 교육특구로 분류되는 강남 ‘8학군’을 피해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낮은 곳에서 주로 생겨나는 추세다. 

    최근 ‘동아일보’가 서울 지역 25개 자치구의 국공립 초등학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일부 비(非)교육특구의 혁신초 비중은 이른바 교육특구로 불리는 지역보다 최고 1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초·중·고교 정보를 모아놓은 ‘학교알리미’에 따르면 교육특구로 분류되는 서초구(4.5%), 송파구(12.5%), 강남구(19.4%)에 비해 비(非)교육특구인 중랑구(59.1%), 금천구(52.9%), 동작구(45.0%)에 혁신학교 비중이 크게 높다. 

    혁신학교에 대한 ‘믿음’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특정지역의 혁신학교 비중이 절반을 넘는 현상 또한 고민해 볼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 학교 배정을 원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탓이다. 강북 지역 학부모 김모 씨는 “강남 등 학구열이 높은 지역과 비교해 강북 아이들의 경쟁력이 떨어져 고민하는 학부모가 많은데, 혁신학교까지 다니면 학습 공백은 다 사교육으로 메워야 하는 것 아니냐”며 “대치동 교육열은 날로 뜨거워지는데, 나중에 과연 우리 아이들이 강남 아이들과 경쟁이 될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같은 학교 또 다른 학부모도 “강남에서는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면 엄마들이 ‘혁신초 나온 애들이랑은 어울리지도 말라’는 얘기를 한다는데, 이런 현실도 모른 채 학교가 너무 일방적으로 혁신초 전환을 추진하는 것 같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예산만 따내면 그만?

    한편 교육청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혁신학교 전환을 추진하는 학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새로 지정되는 혁신학교에 학교당 연평균 57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재공모에서 지정된 혁신학교에도 평균 4500만 원을 지원한다. 재정이 부족한 학교 처지에서는 혁신학교가 재정 운영에 숨통을 터주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최근 전교생 학부모 투표를 통해 서울형 혁신학교 공모에 신청하기로 결정한 한 학교의 경우 교장이 나서 학부모들에게 “달라지는 거 전혀 없다. 오로지 예산을 따내는 게 목적”이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학교 학부모 남모 씨는 “혁신학교 전환 관련해 학교 설명회에 갔다가 교장선생님이 너무 노골적으로 ‘예산 때문’이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그동안 교육청으로부터 받아오던 다른 예산이 있는데 그게 올해부터 끊기게 돼 혁신학교로 바꿔 예산은 그대로 받되 수업 방식이나 학교 행사는 기존대로 할 테니 걱정 말라며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동네가 잘사는 동네도 아니고, 예산에 허덕이는 학교 측도 이해는 가지만 이런 목적이라면 과연 혁신학교를 추진하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 예산 규모는 학교마다 다르며, 토론 및 체험 위주의 학습 내지 교사들의 자발적 연구에 쓰게끔 돼 있을 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없다”고 밝혔다. 

    혁신학교에만 별도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 자체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의원 출신인 최명복 한반도평화네트워크 이사장은 “말 잘 듣는 학교는 돈을 더 주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홀대하는 꼴밖에 안 된다”며 “교육을 정쟁의 요소로 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양옥 전 교총 회장은 “의무교육은 국민의 세금으로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때 의미가 있다. 혁신학교라는 명분으로 특별예산을 ‘떡 주무르듯이’ 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학부모와 교육 당국의 인식의 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 소재 한 중학교 교사는 “한마디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현재 정부(교육부)는 혁신학교를 절대 선으로 여기고 어떻게든 밀고나가려고 하지만, 학부모들은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혁신학교의 양적 확대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그간 혁신학교가 이뤄온 성과를 학부모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데이터화해 친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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