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마거릿 미첼은 주제가 생존이라고 말했습니다. 재난을 만나도 쉽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있고 강하고 용감한데도 굴복하고 마는 사람이 있지요. 모든 격변에서 그렇습니다. 살아남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의기양양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없는 특징, 그것은 바로 ‘불굴의 정신’이었습니다. 불굴의 정신을 지닌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함께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입니다.
스칼렛은 남북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폐허 속에서 끝내 살아남았지요. 그녀는 불굴의 정신으로, 오직 생존을 위해, 온갖 책략을 쓰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약혼자를 빼앗기도 합니다. 스칼렛은 굽힐 줄 모르는 열정과 용기로 마침내 살아남았지만, 소설의 끝자락에서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잃어버려야 했던 것’, 즉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내면의 순수와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사랑의 그림자와 만납니다. 나는 그녀를 의식적으로는 혐오했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만이라도 스칼렛처럼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쟁취하고, 꾸밈없이 욕망을 발설하고, ‘규칙’이 아닌 ‘열망’의 이름으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마거릿 미첼의 소설 원작을 찾아 읽어 보니 그것은 그녀의 과도한 자신감 또한 일종의 뼈저린 콤플렉스임을 알게 됐습니다.
문학작품 속에는 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얼굴’처럼 존경스럽지만 조금은 지루한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처럼 도저히 존경할 수는 없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인 인물들이 있습니다. 먼 훗날 시간이 흘러 스칼렛이 도대체 왜 그렇게 ‘매혹적인 밉상’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제 마음 깊은 곳에는 ‘스칼렛에 대한 질투’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이기적이고 철이 없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 커다란 질투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지요.
“지금은 그만 생각하자. 내일 다시 생각하자.”
그녀는 집안에서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서 공주처럼 떠받들리며 자랐지만, 남북전쟁으로 집안이 초토화되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자 가족들은 물론 첫사랑 애슐리네 가솔들까지 먹여 살릴 정도로 씩씩한 여인입니다. 강간을 당할 뻔한 순간에도, 살인을 당할 뻔한 순간에도 재치와 용기를 발휘해 멋들어지게 상황을 모면합니다. 그녀는 남들 앞에서는 더없이 용감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제대로 돌보지 못합니다.레트와 결혼한 후에도 끝없이 애슐리를 그리워하며 레트의 자존심을 짓이겨버린 스칼렛은 좌절할 때마다 이렇게 스스로를 방어합니다. “지금은 그만 생각하자. 내일 다시 생각하자.” 애슐리와의 은밀한 포옹 장면을 만천하에 들키고도 그녀는 도망칠 궁리만 합니다. “지금은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것을 견뎌낼 여유가 생긴 다음에, 나중에 생각할 거야.” 하지만 ‘그다음’은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스칼렛은 자신의 행위를 곱씹음으로써 더 나은 자신이 되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오직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다가, 자신의 소중한 사랑과 가족을 놓쳐버립니다.
사람들은 스칼렛의 이기심과 철저한 자기중심적 성격에 혀를 내두르지만, 레트는 그녀의 천방지축 같은 행동에 가려진 순수와 열정을 이해해줍니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과 비난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는 스칼렛의 굽힐 줄 모르는 용기와 저돌성을 레트는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지요. 레트는 유부남 애슐리를 사랑하는 스칼렛의 어두운 비밀까지도 있는 그대로 감싸 안아주려고 합니다. 레트는 스칼렛의 환한 빛뿐만이 아니라 스칼렛의 그림자까지 사랑했던 것이지요.
스칼렛은 자신의 진짜 속마음과 대면하지 않기 위해 다채로운 방어기제를 씁니다.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활용하는 방어기제는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데는 유용하지만, 이런 경우엔 일시적인 위안 말고는 효과가 없습니다. 방어기제의 가장 어리석은 형태는 자기기만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신 포도처럼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을 막상 가져보면 별것 없을 거야’라는 식의 자기방어는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스칼렛은 끝까지 자신을 속입니다. 나에게는 분명히 레트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멜라니가 세상을 떠나고 레트조차 떠나버린 오늘은 너무 힘드니까, 일단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고. 내일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자고.
그녀 인생의 가장 큰 암초는 남북전쟁이나 부모님의 죽음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는 그녀의 ‘부주의함’이었습니다. 스칼렛은 너무 착해서 오히려 바보 같다고 깔보았던 멜라니가 애슐리와 자신의 끈질긴 스캔들을 알면서도 눈감아주었다는 것을, 멜라니의 임종에 이르러서야 깨닫습니다. 스칼렛의 꿈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그녀의 감춰진 무의식을 드러냅니다. 꿈속에서야 스칼렛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됩니다. 스칼렛처럼 질긴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의 강인한 의식의 빗장은 꿈속에서야 조금씩 풀리기 때문입니다. 애슐리에 대한 질투에 눈이 먼 레트와 요란한 부부싸움을 벌이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아이를 유산한 스칼렛은 사경을 헤매며 레트를 애타게 찾습니다. 그녀는 끔찍한 안개 속을 헤매며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레트를 찾지만, ‘스칼렛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에 짓눌린 레트는 그녀를 포기하고 맙니다.
죄책감 어린 쾌락
우리는 각자의 가슴속에 있는 ‘스칼렛’의 모습을 잘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때 저는 스칼렛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자기중심적인 성격이라 도저히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 TV에 고전 영화로 소개될 때마다, 나는 빠짐없이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되풀이해 보고 또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일종의 죄책감 어린 쾌락,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를 느낀 것이 아닐까요? 그 은밀한 길티 플레저의 근원에는 스칼렛의 어리석음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원초적인 물음이 있었습니다. 스칼렛은 타오르고 용솟음치고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는,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는 리비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갖가지 우아한 제스처로 우리의 욕망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리비도가 우리 생을 밀어 간다는 점입니다. 리비도는 멈출 수 없는 열망을 말합니다. 리비도가 친구에게 향할 때는 우정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갈 때는 연애가 되지요. 그런데 리비도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할 때는 나르시시즘이 돼버리고 맙니다. 문제는 인간의 마음속에 흐르는 이 멈출 수 없는 리비도를 어떤 대상으로 창조적으로 승화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스칼렛이 오직 애슐리와 자기 자신을 향해 리비도를 투여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과 더 많은 사람을 향한 사랑과 자비로 리비도를 분산했다면 그녀는 더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요.
내 안의 스칼렛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거리낌 없이 추구하라’고, 이 세상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말고 모든 모험을 거부하지 말라고 충동질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과 대면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지도 일깨워줍니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레트를 사랑하면서도 너무도 오랫동안 그 사실을 몰랐던 스칼렛처럼, 우리도 과거의 관성에 얽매여 자신의 진짜 마음을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스칼렛의 마지막 대사는 다채로운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내일의 태양은 뜨겠지만 레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일깨우기도 하고, 내일의 태양이 뜨면 우리의 용감한 스칼렛이 오늘의 눈물을 닦고 기운을 내 레트를 다시 찾기 위해 길을 떠날 것이라는 암시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저는 스칼렛이 더는 사랑 때문에 자아를 잃지 않고 자기만의 창조적인 꿈을 찾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사랑에 연연하지 않고, 주변의 시선에도 연연하지 않고, 오직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스칼렛의 자유였으니까요.
오늘 지는 태양을 아쉬워하지 않고 내일 반드시 떠오를 태양을 기다리는 힘. 내일의 태양을 저마다 소중한 ‘나만의 태양’으로 만드는 창조적 힘, 그것이 우리 안의 가장 밝고 용감무쌍한 또 하나의 스칼렛이기도 하니까요.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빛깔을 지닌 내일의 아름다운 태양이 떠오를지 궁금합니다.
정여울
● 1976년 서울 출생
●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
● 저서 : ‘빈센트 나의 빈센트’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