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환법 반대, 홍콩 역대 최대 규모 시위
“중국식 일국양제(一國兩制)에 의구심”
“중국과 통일에 회의적”
전문가 “양안관계 극단 치닫진 않을 것”
6월 19일 서울 신촌의 한 카페에서 대만인 유학생 린 모(38)씨가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자신의 SNS 계정에 게시한 홍콩 시위 지지 메시지를 읽고 있다. 차이 총통은 해당 게시글에서 "온 세상 자유와 민주를 믿는 사람들이 홍콩 사람들과 함께 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우정 기자]
6월 19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때도 린 씨는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위 관련 소식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중국이 홍콩 시민들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홍콩의 상황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린 씨는 스마트폰을 통해 6월 12일 오후 9시(현지시간)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을 보여줬다. 글에서 차이 총통은 “온 세상 자유와 민주를 믿는 사람들이 홍콩 사람들과 함께 설 것”이라며 “우리도 대만의 민주와 자유를 반드시 수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대를 상징하듯 대만과 홍콩 지도가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고 “자유 대만은 홍콩의 자유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도 함께 게시했다.
또 다른 대만인 유학생 양 모(26)씨도 홍콩 시위를 지켜보며 중국과의 통일에 회의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양씨는 홍콩 시위를 계기로 “일국양제(一國兩制, 하나의 나라, 두 가지 체제)가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강해졌다”며 “대만에서 일국양제를 바라는 사람은 대만이 다음 홍콩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만은 현상유지 혹은 독립을 지향해야지 (중국과의)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홍콩 자치권 침해에 분노
6월 16일 홍콩 시내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 철회를 주장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시위대가 든 흰색과 검은색 걸개에는 각각 ‘철회악법’(撤回惡法, 악법을 철회하라), ‘통심질수’(痛心疾首, 매우 증오하고 미워한다)라는 글이 써있다. [AP/뉴시스]
이번 송환법 개정안은 중국을 포함해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지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가능케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시위 참석자들은 송환법 개정이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 시민이 누리던 권리를 침해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범죄인 송환이 자칫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홍콩인들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은 중국은 홍콩에 ‘일국양제’를 약속했다. 외교와 국방은 중국이 전담하되 홍콩인들에게 중국 헌법과는 별개의 ‘홍콩 특별행정구 기본법’에 기초한 자치권을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홍콩 정부 최고 수반인 행정장관이 친중파 위주인 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선출되는 등 자치권이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2014년 홍콩 시민들은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인 ‘우산 운동’을 전개했지만 실제 선거제도 개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의사로 일하는 홍콩 시민 에이미 콩(Amy Kong)씨는 2014년 ‘우산 운동’에 이어 이번 시위에도 4차례 참여했다. 콩 씨는 온라인 서신을 통해 ‘신동아’에 “이전에도 많은 홍콩 시민들이 중국 정부에 납치, 투옥되었다”며 “중국 정부를 불신하며 송환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홍콩의 오늘’과 ‘대만의 내일’
‘일국양제’ 실험이 홍콩에서 위기를 맞는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대만인들의 관심도 높을 수밖에 없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표방하는 중국은 대만에 대해서도 ‘일국양제’ 방식의 통일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1979년 중국은 예젠잉(葉劍英)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일국양제를 통한 평화통일’을 골자로 ‘대만 동포들에게 고함’이라는 유화적 메시지를 발표했다. 오랫동안 체제 경쟁을 해오던 중국과 대만은 이후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전제 위에 본격적인 관계개선에 나섰다.지난 1월 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 동포들에게 고함’ 발표 40주년을 맞아 내놓은 성명도 같은 맥락이다. 시 주석은 대만 독립을 경계하는 한편 ‘일국양제’를 통한 통일을 재차 강조했다. 정작 중국이 약속한 ‘일국양제’가 파열음을 내는 가운데 ‘홍콩의 오늘’이 ‘대만의 내일’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대만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런 정서는 대만인 중에서도 ‘본성인’(本省人) 출신들에게서 짙게 나타난다. 대만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본성인은 명나라, 청나라 시기 지금의 푸젠(福建)성 등 중국 남동부 연안 지대에서 대만으로 온 이주민들의 후손이다. 이들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을 따라 대만으로 이주한 ‘외성인(外省人)’과는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는다.
국민당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대만을 계엄 통치했다. 이 시기 대만 사회에서 국민당원 등 외성인은 소수임에도 정치, 경제, 사회적 주류를 점했다. 대륙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외성인 중심의 국민당은 중국과의 통일을 지향한다. 반면 대만인으로서 정체성이 큰 본성인은 대륙과 통일보다는 독립에 공감하는 편이다.
천수이볜 총통 시절 역사교육 받은 세대
특히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대만의 젊은이들은 이번 홍콩 시위를 계기로 중국에 대한 분노를 크게 표출하고 있다. 강귀영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오늘날 대만의 젊은 층은 천수이볜 총통 시절 대만독립 역사교육을 받아온 세대”라며 “‘대만화’가 이뤄진 젊은이들이 이번 홍콩 사태에 대만의 상황을 투영해 더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이 한복판에 차이잉원 총통이 있다. 2016년 집권한 차이 총통은 본성인 중심의 정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 출신으로는 두 번째 총통이다. 1986년 국민당 독재에 반대하던 본성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진당은 2000년 첫 총통인 천수이볜(陳水扁)을 배출했다.
중국의 ‘일국양제’에 반대하는 차이 총통은 연일 홍콩 시위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17일에는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이 중국의 대 홍콩 정책을 “독재주의의 확장”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대만이 2020년 1월 11일 총통 선거를 치른다는 점은 관심거리다. 차이 총통은 6월 13일 민진당 총통 후보 경선에서 승리했다. 차이 총통의 재선 가능성은 경기 침체 탓에 그간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이에 차이 총통의 ‘홍콩 시위’ 지지를 두고 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이 많다. 다만 이 같은 행보가 실제 선거에도 도움이 될 지는 의문부호가 뒤따른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중국문제연구소 소장)는 “대만인들에게 최근 홍콩의 현실은 중국식 일국양제의 허구성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향후 양안관계 진전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면서도 “(다만) 양국 간 경제교류 규모가 상당해 (양안관계가_ 극단적 상황으로 흐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차이 총통에게도 홍콩 시위가 단기적으로는 호재이겠지만 그것이 선거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끝나지 않은 홍콩 시위
6월 18일 홍콩 정부 청사에서 캐리 람(Carrie Lam) 홍콩 행정장관이 기자 회견을 열고 '범죄인 인도 법안' 추진을 둘러 싼 사회 혼란에 사과 의사를 밝히고 있다. [AP/뉴시스]
람 행정장관이 12일 시민들의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했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대처지만 홍콩 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송환법 완전 철회, 람 행정장관 사퇴, 홍콩 자치권 보장 등 시위대의 핵심적인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년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리던 7월 1일 ‘홍콩 주권 반환일’을 앞두고 있어 추가적인 대규모 시위가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