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무역전쟁을 거치면서 4차 산업혁명 생태계가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되고 있다. 화웨이 샤오미 ZTE가 미국 시장을 잃고 있다면, 애플 MS 구글은 중국 시장을 잃고 있다. 두 생태계에 동시에 조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전략을 준비할 때다.
장기전으로 치닫는 미·중 무역전쟁. [shutterstock]
미·중 무역전쟁은 2018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이 340억 달러(약 40조8000억 원)에 달하는 수입품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상향했다. 항목도 818개에 달했다. 중국은 미국의 공격에 ‘똑같이’ 맞대응했다. 545개 항목의 수입품에 관세율 25%를 적용했으며, 추가 관세 대상 규모는 340억 달러였다.
미국과 중국은 이후 한 차례 더 관세 폭탄을 주고받았다. 양국은 추가로 각각 160억 달러(19조2000억 원) 상당의 상대국 수입품에 25% 관세율을 적용했다. 미국은 279개 항목, 중국은 115개 항목이 대상이었다.
지난해까지의 미·중 무역전쟁 양상은 올해와 비교하면 국지전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5월 전년 대비 4배 증가한 2131억3000만 달러(255조7000억 원)에 달하는 5745개 수입 품목에 추가 관세(25%)를 부과했다. 중국도 6월 600억 달러(약 72조 원) 상당의 5140개 수입 품목에 25% 관세율을 부과했다.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미국은 3250억 달러(약 390조 원) 규모의 3805개 수입 품목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이렇게 끝장을 보자는 듯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수출에서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한국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이 전체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2.02%(87조2000억 원), 26.80%(194조5000억 원)다. 두 국가로의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셈이다.
대중 무역 적자 오히려 증가
안드로이드폰 갤럭시 S10. 삼성전자가 ‘훙멍폰’도 개발해야 하는 날이 올 수 있다. [삼성전자 제공]
우선 미국의 무역 적자를 생각해볼 수 있다. 금융 전문 미디어 블룸버그는 “미국이 이번 전쟁을 통해 무역 적자를 어느 정도 만회했다”고 보도했다. 2018년 2월 대비 2019년 2월의 무역 적자 액수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블룸버그의 분석은 근거가 빈약하다. 미국 통계국(USCB) 자료를 보면 대중 무역 적자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으로 3756억 달러(약 451조 원)의 손해를 봤다. 이는 전년 대비 8.24% 증가한 수치다. 적자 폭은 무역전쟁이 진행된 2018년 더 확대됐다. 적자 규모가 4192억 달러(약 503조 원)에 달하며 비율로도 전년보다 11.61% 증가했다. 2018년 2월과 2019년 2월만 비교한 블룸버그 분석과 달리 USCB 통계는 추가 관세가 무역 적자를 줄이는 데 효과를 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빌 더들리 프린스턴대 경제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은 세금과 환율이라면서 추가 관세는 효과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유는 상대 국가가 똑같이 추가 관세로 보복하기 때문이다. 반면 세금은 국민 소비에 영향을 미치므로 무역수지에 영향을 준다. 감세를 실시하면 다른 국가로부터의 수입이 늘어나는데 트럼프 정부는 1.5조 달러(1800조 원)의 감세를 진행했다. 환율 또한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친다. 이론적으로 높은 화폐가치는 수입, 낮은 화폐 가치는 수출을 증가시킨다.
다시 말해 무역 적자 해결 관점에서 보면 추가 관세는 알맞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중국에 관세 폭탄을 투하한 진짜 이유는 뭘까. 뉴욕타임스가 미국 정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듯하다. 뉴욕타임스는 2019년 3월 6일 기사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자 무역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분석했다.
中 ‘제조 2025’가 무역전쟁 직접 원인
ICT 제조에 필수 자원인 회토류. 중국은 희토류 미국 수출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Flickr]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다. 화웨이, 알리바바, 샤오미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의 도드라진 기업이 ‘중국 국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더티 플레이가 미국을 자극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정 무역’을 중요시하는데, 중국의 무역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치관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중국이 추진하는 ‘제조 2025’를 살펴보자. 제조 2025는 2015년 5월 중국 정부가 내놓은 30년 장기 계획 중 첫 번째 단계로 2025년까지 중국 내 부품 국산화율을 7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이러한 정책은 이른바 ‘볼펜심 개탄’이라는 표현에 압축돼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2015년 12월 “우주선도 만드는 중국이 볼펜심을 어찌 만들지 못하는가”라고 한탄했다.
제조 2025는 중국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하겠으나 문제는 추진 방법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이 해외 핵심 인력을 ‘쓰고 버리는’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중국에 진출한 기업에 자국 기업으로의 기술 이전을 강요하기도 한다. 한국도 이 같은 ‘더티 플레이’의 피해자다. 한 전직 대기업 고위 임원은 “중국 시장 진출 시 기술을 탈취하려는 비도덕적 행동을 주의하라”고 조언했다. 최근 한국 기업이 중국보다 베트남을 선호하는 이유도 이 같은 더러운 행동 때문이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도 “중국이 기술 기밀을 훔친다”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제조 2025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무역전쟁 전선은 미국이 중국의 4차 산업혁명 분야를 압살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기업 푸젠진화(JHICC)를 소프트웨어와 기술 부품 등의 수출 제한 리스트(Entity List)에 포함한 게 대표적이다. 수출 제한 리스트에 오른 기업은 미국으로 제품을 수출할 수 없다. JHICC는 중국이 반도체 시장 진출을 위해 2016년 설립한 국유 기업이다. 반도체는 제조 2025를 통해 중국이 육성하려는 10대 산업 중 하나다.
화웨이 ‘훙멍OS’의 미래는?
화웨이도 미국의 공격으로 수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12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됐으며 미국의 수출 제한 리스트에도 포함됐다. 5세대 무선통신망(5G) 산업 선점을 위해 미국과 중국이 다투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CCTV 전문 제조 기업 하이크비전을 두고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수출 제한 리스트 포함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이렇듯 두 나라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고조되고 있다. 서로에게 부과한 추가 관세를 낮추고 미국이 수출 제한 리스트를 해제하더라도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두 나라 산업의 협력 체계가 허물어지면서 상호 의존도가 낮아질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5월 21일 구글은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중국에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구글은 90일간의 거래 중단 보류 기간을 가진 후 이 조치 실행 여부를 확정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 또한 OS를 공급하지 않기로 했다. 중국 정보통신(ICT) 기업 처지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화웨이는 공급 중단에 대응하고자 훙멍OS를 출시할 계획이다. 출시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세계의 스마트폰 OS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애플의 iOS, 화웨이의 훙멍OS로 나뉘게 된다. 미국과 중국은 스마트폰 OS에서 그간 협력해왔는데 무역전쟁을 계기로 협조가 끝나는 셈이다. OS의 양분은 생각보다 파급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 스마트폰 생태계가 나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거치면서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서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ICT 생태계에서 벗어날 수 있고, 미국은 ICT 기기 생산과 관련해 희토류 등의 대(對)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혜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화웨이를 예로 들면 모바일 OS 공급 중단으로 단기적 피해를 보겠으나 훙멍OS를 통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도 아니다.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중국의 빠른 성장을 저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회토류 물량 확보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대중 의존도를 낮춰 위험을 분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