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그는 빈손을 내민다.
나는 그의 빈손을 받아간다.
빈손을 파지처럼 구겨서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 속에 시인의 주먹이 공처럼 불룩하다.
그의 빈손은 곧 빈 코트에 내리꽂힐지도 모른다.
그의 빈손은 곧 빈 코트에 나를 내리꽂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전에 주머니에서 무심히 툭 떨어져 코트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친구, 나의 그 빈손만은 부디 잡아주면 좋겠어.
보잘것없지만 그건 내 선물이잖아.
물론, 나는 기꺼이 떨어진 그의 손을 다시 잡는다.
그 순간, 그의 손이 나를 꽉 움켜잡아 순식간에 제 주머니에 욱여넣는다.
시인의 주머니 속은 역시 밤이다.
시인의 주머니에 오늘밤은 나로 가득하다.
줄 게 이것밖에 없군요.
시인은 나를 꺼내 네게 내민다.
너는 시인이 내민 빈손을 받자마자
전단지처럼 구겨버리며 바삐 계단을 내려간다.
김중일(金重一)
● 1977년 서울 출생
●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 ‘내가 살아갈 사람’ ‘가슴에서 사슴까지’ 출간
● 제30회 신동엽문학상, 제3회 김구용시문학상, 제19회 지훈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