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강자와 권력에 반항심”
미·중 인터넷 기업 ‘거인’, ‘제국’ 지칭도
김상조, 이해진에 “포용사회 선도해 달라”
6월 1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디지털 G2 시대, 우리의 선택과 미래 경쟁력’ 심포지엄에서 이해진 네이버 GIO(오른쪽)가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와 대담하고 있다. [네이버]
만화 속 약한 주인공 승리에 쾌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묻는 말에 이해진 네이버 GIO(Global Investment Officer, 글로벌투자책임자)가 내놓은 답이다. 6월 1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한국사회학회와 한국경영학회가 공동주최한 ‘디지털 G2 시대, 우리의 선택과 미래 경쟁력’ 심포지엄에서다. 그가 대중강연에 나선 것은 2014년 6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리더스포럼 참석 이후 5년만이다.앞선 ‘만화 취향담’이 맥락 없이 나온 얘기는 아니다. 이날 이 GIO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일견 약한 주인공이 강한 적을 이기는 서사를 즐긴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결국 승리하는지 결말을 미리 본 후 안심하고 만화를 읽는 편”이라며 특유의 독법도 밝혔다. 이날 이 GIO는 시종 자신과 네이버를 강자와 맞서 싸우는 ‘저항자’이자 ‘다윗’에 견주었다.
특히 그는 인터넷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화제에 오르자 “한국은 옛날식의 프레임으로 조금만 큰 회사가 나오면 규제를 한다”며 “5조원이나 10조원 규모 회사가 크다고 규제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겠는가”하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2017년 9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당시 자산 총액 5조원을 넘긴 네이버를 공시대상기업집단, 즉 준대기업집단으에 포함시키면서 이 GIO를 네이버 총수(동일인)으로 지정했다.
6월 20일 현재 네이버 시가총액은 약 18조3800억 원 안팎이다. 국내 기업 중에는 ‘다윗’이라고 할 수 없는 큰 덩치다.
영화서 딴 펀드이름, ‘제국’에 맞설 의지
네이버가 참여하는 투자펀드 ‘코렐리아캐피탈’의 작명에 얽힌 비화도 이른바 ‘다윗 자처하기’의 자장 안에 있다. ‘코렐리아캐피탈’은 프랑스 중소기업 및 디지털경제부, 문화통신부 장관 등을 지낸 플뢰르 펠르랭(Fleur Pellerin)이 2016년 설립한 투자펀드다. 2017년 네이버는 ‘코렐리아캐피탈’과 함께 유럽의 스타트업 업체에 투자하는 ‘K-펀드1’을 조성한 바 있다.이 GIO는 “‘스타워즈’에서 연합군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이 ‘코렐리아’ 행성”이라며 “(미국, 중국 기업들에 대해)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연합군이 필요한 시기라는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도 미국 인터넷 기업들이 매출, 데이터를 다 가져가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코렐리아’ 행성은 영화 ‘스타워즈’에서 악의 세력 ‘은하제국’에 맞서는 ‘반란연합’(이 GIO는 ‘연합군’으로 표현)의 근거지다. 이 GIO가 세계 인터넷 경제의 상황을 “시가총액 1000조 원대의 기업이 역사상 처음 탄생한 인터넷 제국주의 시대”로 규정하고 미국과 중국의 인터넷 기업들을 ‘제국’, ‘거인’ 등으로 지칭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그는 “(네이버가) 삼별초처럼 거인에 저항해 살아남은 회사가 되고자 한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 말대로라면 미국 구글이나 중국 텐센트 같은 기업이 ‘몽고’인 꼴.
“혁신 사업가, 포용사회 기여해야”
이와 관련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다시 한 번, 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 by the innovators’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자본주의자들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는 미국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의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루이지 징갈레스(Luigi Zingales) 교수가 공저한 책이다. 경제 기득권을 견제해 시장경제가 잘 작동할 수 있게끔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제언을 담고 있다. 즉 모양새를 놓고 보면 네이버를 경제 기득권이자 견제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이 GIO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두고 꺼낸 “트랙터 회사에게 농민의 일자리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과도하다”는 발언을 두고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시장이나 사회안전망 구축이 “정부 혼자서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며 “포용사회라는 전제조건을 형성하는데 혁신 사업가들이 함께 해주기를, 아니 선도해주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기업에 대한 규제와 사회적 책임 부과에 불만을 드러낸 이 GIO를 사실상 겨냥한 모양새다.
이 GIO를 향한 김 위원장의 저격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9월 5일 김 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GIO가) 지금까지 스티브 잡스와 같이 미래를 보는 비전을 우리 사회에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