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지상중계〉 (사)한국전통식초협회, 중국 산시성 식초 세미나

3000년 역사의 산시 노진초(山西 老陣醋) 제조 현장을 가다

  • 글·사진 황윤억 (사)한국전통식초협회 수석부회장 gold4271@naver.com

    입력2019-07-03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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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초탐사대, ‘중국 식초 聖地’ 탐방

    • 훈증 거친 식초, 톡 쏘는 맛과 향 일품

    • 韓中 합작식초 등 新바이오 산업 육성 필요

    중국 산시성 보원노촌 노진초 제조 공정 중 훈증 공정.

    중국 산시성 보원노촌 노진초 제조 공정 중 훈증 공정.

    중국 식초는 고대 황하 문명을 꽃피운 산시성에서 시작됐다. 고대 황하 문명을 꽃피운 산시(山西)성은 중국 미초(米醋‧곡물식초)인 노진초(老陳醋)가 생산되는 곳. 노진초는 중국 4대 명초 중 하나로 3000년 역사를 간직한 ‘천하제일초’의 명성을 지키고 있다. 산(酸)과 향(香), 단맛(甜), 순하고 독특한 풍미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사)한국전통식초협회(회장 한상준‧이하 식초협회)는 ‘식초의 성지’ 산시성에서 5월 24~29일 현지 세미나를 열었다. 한국과 중국의 식초 제조법을 비교 연구하고, 요즘 미식 트렌드인 ‘신맛’의 정수를 신초 본고장에서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신맛은 산미(酸味)와 동시에 풍미(風味)를 높이는 오미(五味)의 하나다. 신맛은 단맛 등 다른 맛과 어울리면 풍미를 증폭시키고 생동감을 주고, 맛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한다. 산미가 풍부한 커피가 ‘프리미엄 커피’의 새 기준이 되고, 시큼한 맛의 사워도우(sour dough, 천연발효빵)가 인기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식초는 기원전부터 사용된 아주 오래된 조미료이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단맛과 짠맛, 감칠맛, 매운맛에 밀려나 있었다. 지난 5년간 식초협회는 식초학교를 개설해 천연발효식초의 우수성을 알리고 ‘신맛 찾기’ 운동을 펼쳤다. 지난해 6월에는 동아일보사와 함께 ‘2018 대한민국 식초문화대전’을 공동 개최하며 전통식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일으켰다.

    중국 식초 최대 생산지

    중국 산시성 식초 세미나를 주최한 한국전통식초협회 회원들.

    중국 산시성 식초 세미나를 주최한 한국전통식초협회 회원들.

    중국 산시성 보원노초 공장 앞에 놓인 노지 항아리.

    중국 산시성 보원노초 공장 앞에 놓인 노지 항아리.

    ‘2019 중국 산시성 식초 세미나’는 산시성 성도인 타이위안(太原)에 있는 전통식초(천연발효식초) 생산 공장인 ‘보원식초(寶源老醋)’와 ‘동호식초(東湖老醋)’ 2곳에서 열렸다. 두 회사 모두 6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식초 공장. 보원식초는 노지(露地)에 식초옹기만 1만여 개가 놓인 중국 최대 규모 식초생산지로 정부가 투자한 공기업이다. 공장 부지와 시설이 마치 하나의 소도시 같다. 동호식초는 보원식초보다 규모는 작지만, 생산 전체 공정을 수작업으로 하는 곳이다. 1957년 중국공산당의 ‘공사합병’(사유재산을 공공재산으로 합병) 조치로 21개 가내수공업 식초업체가 모여 만든 업체다. 두 곳 모두 재료와 생산 공정은 비슷하다. 현대식 기계 설비냐 수작업이냐는 차이다. 



    산시 노진초는 고량(수수), 밀기울(밀에서 가루를 빼고 남은 찌꺼기), 겨와 물을 주원료로 한다. 보리와 완두콩을 당화발효제로 해 알코올 발효 후 고체 초산 발효와 훈제 과정을 거친다. 수수 위주의 다양한 원료 배합, 양질의 당화 발효제, 저온의 진한 알코올 발효, 고온의 고체 아세테이트(acetate) 발효, 훈제 및 오랜 숙성 과정을 거친다. 

    반면 한국의 곡물식초는 현미를 주로 사용한다. 경북 예천 소재 ‘초산정’은 쌀과 조, 기장 등 다섯 가지 잡곡을 사용하지만 이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산시성은 연평균 500ml의 적은 강수량으로 밀과 옥수수 등 밭작물이 많다. 원재료가 우리나라와 다르다. 식초의 맛과 향이 우리나라와 다른 까닭이다. 

    발효식초 생산 공정은 전 세계 여느 공정과 동일하다. 알코올 발효와 초산발효, 맛과 향을 위한 숙성과정, 그리고 나라마다 다른 ‘알파(α) 기술’이 있다. 산시 노진초 제조 공정은 원재료를 2시간 찌는 것으로 시작된다. 알코올 발효는 15~18일, 초산발효는 20일 정도의 상온발효, 이후 수수껍질을 넣고 훈증(섭씨 100도)을 한 뒤 여과 때 적정량의 물을 추가한다. 중국의 독특한 훈증 과정은 초산균을 살균하면서 특유의 향과 맛을 낸다. 산미와 풍미가 그윽한 중국 노초(老醋)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공정이다. 총 산도는 우리나라의 4.2(전통식초 기준)도 보다 높은 6도 이상이다.

    香에 방점, 한국에 없는 훈증

    한국전통식초협회 회원들이 중국 산시성 동호식초 관계자들과 제조 공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한국전통식초협회 회원들이 중국 산시성 동호식초 관계자들과 제조 공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식초생산 공정에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명나라 초기(14세기) 때부터 도입했다는 ‘훈임(熏淋‧수증기로 쪄서 거른다)’이다. 중국만의 독특한 제조 기술이다. 훈임을 통해 노진초는 톡 쏘는 맛과 향, 검은색 식초가 탄생한다. 부드럽고 중후한 맛이다. 동호식초 관계자는 “동호노초(老醋)의 아름다운 검은색 자태와 풍미는 훈임 과정에서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한상준 식초협회장은 “왕성한 표면발효를 위해 겨를 사용하는 것 같다”며 “훈임 과정을 통해 초산균의 과발효를 막고 소금을 넣어 수분증발을 막는 게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생산 현장에서는 제조 공정에 대해 식초협회 관계자들과의 질의와 토론이 이어졌다. 신현석 식초협회 사무총장(무주 산들별 대표)는 ‘중국 누룩 원재료와 우리나라 원재료의 차이점’에 대해, 안창호 고문(대보명가 대표)은 ‘중국 식초의 고체발효법의 원리’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국의 누룩 원재료는 우리나라와 완전히 달랐다. 한국은 쌀과 밀이 주요 누룩의 원재료인 반면 중국은 고량과 완두, 분쇄한 조(粟)가 주재료였다. 보조 재료는 녹두 등 다양하다. 

    식초옹기 형태도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달랐다. 주둥이 부분이 둥글고 크다. 높이는 보통 남자(키 170cm)의 허리 높이다. 두께도 우리나라 항아리의 2배 정도다. 옹기 입구가 넓어서 옹기를 눕혀서 세척하기에 편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훈임 과정 때문인지 초항아리에 초파리가 꼬이지 않는 점도 이번 참석자들의 큰 관심사였다. 최진섭 식초협회 고문(보성천연발효메카 대표)은 “초산발효 과정에 초파리가 없는 만큼 우리도 잡균 방지책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식초협회장은 “초산발효 후 훈임 기술은 독특한 풍미를 내는 만큼 우리 고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훈임 과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며 “소비자 신뢰를 얻는 고품격 가치의 식초를 출품해서 식초 시장을 넓힐 방안을 찾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우와 소금, 핑야오와 식초

    중국 산시성 핑야오 고성 의 식초 판매점.

    중국 산시성 핑야오 고성 의 식초 판매점.

    앞서 ‘식초 탐사대’는 산시성 최남단 관우(關羽)의 고향으로 잘 알려준 제저우(解州)로 향했다. 신의와 의리의 관우는 훗날 ‘관제(關帝)’로 불리며 무예와 재물의 신이 된다. 제저우 상인들이 중국 전역으로 소금거래에 나서면서 관우가 자신들을 보호해 줄 신으로 섬겼기 때문이다. 원래 소금호수 총길이는 40km이지만 지금은 20여 km 정도 남아 있었는데, 현재는 공업용(과립형) 소금을 주로 생산한다. 

    ‘식초탐사대’가 제저우를 찾은 까닭은 관우와 소금에 얽힌 사연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19살의 관우는 소금상인의 횡포에 맞서다가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 소금상인들로부터 신이 되어 중국 전역에서 사랑받고 있다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핑야오 고성(平遥古城)으로 가는 길에는 유독 포플러 나무가 눈에 띈다. 1960~70년대 비포장 도로 주변에서 흔하게 보았던 포플러 나무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급진주의자들에게 ‘자유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나무다. 앙시앵레짐(구체제)이 뿌리 뽑힌데 불안을 느낀 영국의 지주들은 민중(populace)과 같은 어원의 포플러(poplar) 나무를 경계했지만, 급진주의자들은 쭉쭉 뻗은 포플러 나무를 새 공화국의 자유의 상징으로 여겼다. 장대 같이 치솟은 나무만큼 중국 경제는 급성장했다. 

    서주(BC 11세기에 세워져 771년 수도를 시안(西安)에서 뤄양(洛阳)으로 옮기기 전의 주(周)) 때부터 건설된 도시인 핑야오 고성은 우리에게는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영화촬영지 보다는 이곳도 식초가 더 인기다. 좁은 골목길마다 늘어선 식초 전문 매장이 눈에 띄었다. 현지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중국 식초를 많이 구입하기 때문에 식초 판매점이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산시성의 식초가 외국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졌다니 새삼 부럽기도 했다. 

    5박6일 일정으로 진행된 ‘중국 산시성 식초 세미나’는 천연발효초 부흥을 꿈꾸는 한국 식초 전문가들에게는 배움과 도전의 기회가 됐다. 그들은 우리의 전통식초를 세계적인 바이오산업으로 키워내겠다는 의지로 거듭났다.

    인터뷰 | ‘초(醋)문화 석학’ 자오룽광 교수
    “韓中 발효식초 공동 연구 필요한 때”

    자오롱광(趙榮光) 중국 저장공상(浙江工商)대 중국음식문화연구소장은 “한국전통식초협회의 중국 현지 세미나는 한국과 중국의 식초 제조공정과 문화를 이해하는 자리가 됐다”며 “세계적으로 신맛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만큼 한중 합작 식초 등 새로운 종류의 ‘명품 식초’를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자오 교수는 세계적인 식초 역사‧문화 전문가로, 지난해 6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식초문화대전’에 발제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중국인들에게 식초는 필수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식초는 삼시세끼 필수품이다. 중국인은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식물성 식재료로 배를 불리며 살아왔기 때문에 ‘산(酸)’에 의지했고, 생활환경과 문화, 원재료 등의 차이로 다양한 식초가 탄생했다.” 

    -대표적인 중국 식초는? 

    “산시성 노진초(老陳醋), 장수성(江蘇省)의 향초(香醋), 스촨성(四川省)의 보녕초(保寧醋), 푸젠성(福建省)의 영춘향초(永春香醋)가 중국 4대 식초로 꼽힌다. 어느 민족이든 척박한 땅에 살던 사람들은 신맛을 좋아했는데, 이는 생존유지 본능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음식 소화 과정은 바로 발효 변질 과정인 만큼 특히 산을 필요로 한다.” 

    -식초 명칭도 다양한 거 같다. 

    “초(醋)는 당나라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다. 서주 때는 혜(醯), 한나라와 북위 때는 초(酢), 이후 고초(高醋)와 초(醋)로 불렀어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천연발효식초라는 뜻에서 ‘라오(老)’를 붙인다.” 

    -훈임(熏淋)을 하는 이유는 뭔가. 

    “명나라 때부터 식초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를 통해 중국 노초는 톡 쏘는 맛과 향, 검은색 식초가 탄생했다. 동호노초의 검은색 자태와 풍미는 훈증 과정에서 탄생하는 독특한 기술이다.” 

    -식초는 배앓이 등 질병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명대(明代)의 명의 이시진(1518~93)의 ‘본초강목’에는 30여 종의 식초 약방문이 등장한다. 식초를 증발하여 소독한 기록이 나오는데, 지금도 민간에서 유행성 감기나 뇌수막염 등에 상용된다. 전국시대 명의인 편작(扁鵲)은 식초에 모든 약의 소독 치료에 도움을 주는 효용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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