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평양 여자’ 문연희의 서울냉면 vs 평양랭면

“평양 고려호텔, 서울 우래옥 최고” “옥류관? 관광객 상대라 퀄리티 낮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9-06-28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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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여학생의 로망’ 장철구상업대학 나온 재원

    • 고려호텔서 일한 어머니 냉면 서울서 재현

    • 평양서 서울로 이주해 ‘비즈니스’ 뛰어들어

    • 평양랭면, 서울냉면은 ‘다른’ 냉면

    [김도균 객원기자]

    [김도균 객원기자]

    문연희 씨는 평양 여자다. 1991년생. 장철구평양상업대학을 졸업했다. 

    - 북한에도 상대가 있어요? 

    “그럼요. 경영학부 나왔어요.” 

    평양 평천구역에 터 잡은 장철구상대는 서비스업 전문인을 양성한다. 상업, 요리, 피복, 관광을 가르친다. 북한 여학생이 선망하는 대학이다. 평양의 호텔이나 옥류관을 비롯한 국영 음식점에서 일하는 여성 대부분이 이 학교 출신이다. 

    “여학생에게 로망과도 같은 대학이에요. 김일성대보다 더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상업 부문에서 제일가는 대학이거든요. 입학했더니 여자 선배들 평균 키가 168㎝더라고요. 다들 예쁘고요. 옥류관, 청류관 같은 봉사 부문으로 진출합니다. 호텔, 백화점도 우리 학교 출신을 선별해 가고요.” 

    - 서비스업을 공부하는 곳이군요



    “서비스 업종과 관련한 모든 것, 옷 만드는 것 가르치는 학부도 있어요.” 

    그는 2008년 대학에 입학해 2014년 졸업했다. 3학년 때는 대집단체조를 기반으로 한 예술공연 ‘아리랑’에도 참여했다. 

    “아리랑 공연에서 미니스커트 군복 차림으로 춤추는 파트가 있어요. 2010년 공연 영상에 제 얼굴이 살짝 나와요. 맨 앞줄 센터에서 춤췄거든요.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연습했습니다.” 

    사회 건설 동원으로 2년간 대학을 쉬고 노동을 했다. 

    “의무적으로 해야 해요. 창전거리 아파트를 지었습니다. 20층, 30층까지 올라가 일했어요.” 

    2015년 북한에서 한국으로 이주했다. 양강도 혜산에서 압록강을 건넜다. 어머니와 남동생도 뒤따라 서울로 터전을 옮겼다. 1인당 1만5000달러(1775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 어떻게 한국에 왔어요. 

    “뭐랄까. 자유가 고팠다고나 할까요.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다른 나라가 어떻게 사는지 알았거든요.”

    “평양 사람은 옥류관 냉면 안 먹어”

    [김도균 객원기자]

    [김도균 객원기자]

    그는 최근 서울 서초구에 평양냉면집을 냈다. 가게 이름은 ‘설눈’. 

    “설날에 내리는 눈이라는 뜻이에요. 화이트 크리스마스 같은 느낌? 북한에서는 눈 흩날리는 설날을 굉장히 기다려요. 새해 첫눈이잖아요.” 

    - 사업하러 한국에 온 거네요. 

    “그러네요. 하하”. 

    - 창업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친척이 외국에 사세요. 제가 만든 제안서가 통과됐죠. 친척한테 투자받았습니다.” 

    문씨의 어머니가 탁자에서 만두를 빚는다.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피를 만든다. 피가 크고 두껍다. 큰 그릇에 담은 소를 숟가락으로 퍼 피 위에 동그랗게 올린다. 만두 빚는 모습에서 공력이 느껴진다. 평양 고려호텔에서 ‘랭면’을 내던 솜씨다. 북한에서는 냉면을 랭면이라고 한다. 

    “고려호텔 1층과 지하 1층에 식당이 하나씩 있어요. 지하 1층 식당 사장이 친척이었어요. 어머니는 그곳에서 일하다 다른 곳에서 개업했고요. 탈북 직전까지 운영한 식당이 모란봉구역에서 굉장히 유명한 곳이에요. 평양에는 서울처럼 냉면만 파는 가게는 없어요. 요리와 밥을 팔면서 냉면도 내는 거죠.” 

    고려호텔에서 냉면을 만들던 황해도 출신 어머니와 평양의 상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딸이 한국으로 이주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냉면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이다. 

    - 옥류관 냉면이 평양에서 정말로 최고예요? 

    “고려호텔 냉면이 더 맛있죠. 옥류관은 하루에 1만 그릇을 공급해요. 판매가 아니라 공급이라고 봐야 해요. 서민들의 관광 코스이기도 하고요. 지방에서 평양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국가가 배급해주는 방식입니다. 냉면이 여섯 종류인데 배불리 먹으라고 1인당 두 그릇씩 줘요.” 

    - 단체관광객이 가는 식당? 

    “맞아요. 서울로 치면 남산타워나 롯데월드 같은 곳이에요. 그래서 퀄리티가 떨어져요. 공장, 기업소에도 표를 나눠줍니다. 50명이 일하는 기업소이면 1인당 두 그릇씩 100그릇을 먹고 가는 거죠. 평양 사람들은 옥류관 가서 냉면 안 먹습니다. 달러 받는 식당에 가요. 평양호텔, 천지관 같은 곳이 맛있죠.” 

    - 평양에서 냉면 값은 얼마나 해요. 

    “4달러.” 

    - 비싼 음식인가요. 

    “아뇨. 고급 음식은 아니고 밥 한 그릇 값이죠. 국밥이 4~5달러 해요. 요리는 8~10달러, 고급 요리는 30~40달러도 하죠. 북한 식당은 메뉴판이 굉장히 두꺼워요. 돼지국밥 소고기국밥 육개장 같은 주식류가 있고요. 면류에는 평양냉면, 서울에서 함흥냉면이라고 하는 냉면, 고기쟁반국수, 김치말이국수, 농마국수(녹말국수의 북한 표현), 녹차국수, 녹두국수가 있어요. 요리는 온요리, 냉요리로 나뉩니다. 사시미, 육회 같은 게 냉요리죠.” 

    - 국영식당과 자영업 음식점 비율은 어때요. 

    “90%가 개인이 하는 거예요.”

    창업 준비하며 2년간 ‘냉면 투어’… 100군데 넘는 가게 탐방

    그는 ‘설눈’ 창업을 준비하면서 2년간 ‘냉면 투어’를 했다. 이름난 가게를 찾아다니며 냉면을 먹었다. 

    “부산 원산면옥부터 제주도에 있는 냉면집까지 안 간 곳이 없어요. 평양냉면만 찾아다녔죠. 100군데 넘게 가봤어요. 서울의 유명한 냉면집은 가게마다 네댓 번씩 들렀고요. 평양면옥부터 시작해 의정부파도 다 돌았어요.” 

    - 의정부파란 표현도 아네요. 

    “공부했죠.” 

    의정부파는 홍영남·김경필 씨 부부가 1969년 경기 연천군에서 개업해 1987년 의정부시로 옮긴 평양면옥이 뿌리다. 1980년 장녀, 차녀가 각각 필동면옥, 을지면옥을 개점하면서 계열이 분리됐다. 

    “의정부파 가게는 돼지고기가 맛있어요. 쫀득쫀득한 식감으로 차갑게 내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필동면옥에서 ‘제육’, 을지면옥에서 ‘편육’이라고 일컫는 삶은 돼지고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 냉면은 어디가 좋았어요. 

    “우래옥!” 

    - 왜요? 

    “면이 괜찮아요. 평양에서 먹은 면과 맛, 식감이 비슷해요.” 

    우래옥은 1946년 서북관이라는 상호로 개업했다가 6·25전쟁 직후 우래옥으로 이름을 바꿨다. 

    - 육수는 어디가 좋았어요. 

    “다 비슷해요. 평양보다 밍밍하고 심심해요. 도저히 뭔 맛인지 알 수 없는 곳도 있고요.” 

    - 을밀대는 어땠어요. 

    “별점 5개 기준으로 1개. 제 입에는 제일 하위였어요”

    “가위로 잘라 먹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김도균 객원기자]

    [김도균 객원기자]

    그가 덧붙여 말했다. 

    “냉면 맛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아요. 냉면 마니아로서 제 입맛에 따라 말한 것입니다. 분단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북에서는 북의 방식대로, 남에서는 남의 방식으로 요리법이 진화한 겁니다. 사람 입맛이라는 게 지역뿐 아니라 시대별로도 다릅니다. 남북에서 제가끔 발전하면서 다른 냉면이 된 거예요. 예컨대 한국 평양냉면은 북한 평양냉면과 비교해 고명이 매우 적어요. 서울에서는 면을 낼 때 밀가루를 많이 쓰고요. 평양냉면과 서울냉면 중 어느 게 더 맛있느냐고 묻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냉면이 다르니 비교할 수 없는 거죠.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 나온 옥류관 냉면에 김정은 위원장이 붉은색 양념장을 넣어 먹는 것을 보고 한국의 평양냉면 애호가들이 화들짝 놀랐잖아요. 평양에서는 양념장이 나와요. 빨간색 육수도 평양냉면입니다. 식초와 겨자만 넣는 사람, 양념장만 넣는 사람이 있습니다. 입맛대로 먹는 거예요. 반쯤 먹은 후 양념장을 넣어 다른 맛을 즐기기도 하고요.” 

    - 북한에는 ‘냉면 먹는 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잘못 알려진 거네요. 

    “아뇨. 있긴 해요. 김정일 위원장이 옥류관을 현지지도하면서 냉면을 먹을 때 식초는 면 위에 뿌리고, 겨자는 육수에 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룰처럼 보급됐어요. 식초를 면 위에 뿌리면 식감이 탱글탱글해진다고 하는데 냉면 마니아로서 말하면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똑같아요.” 

    - 가위로 면을 잘라 먹는 것은 어떻게 봐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쇠가 닿으면 맛이 나빠진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평양에서는 설날이나 생일, 결혼식 때 면을 꼭 먹어요. 면처럼 길게 오래 살라는 의미거든요. 이 같은 속설 탓인지 면을 잘라 먹는 풍습이 없어요. 가위를 왜 대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양 출신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에요.” 

    문씨의 어머니 손맛이 담긴 냉면이 나왔다. 면 색이 짙은 게 특징이다. 고명이 10가지가 넘는다. 달걀지단,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무생채, 무짠지, 소금에 절인 오이가 층층이 쌓여 있다. 고춧가루를 육수에 갠 후 파, 마늘을 다져 넣은 양념장도 식탁에 올랐다. 

    “메밀은 금방 소화돼요. 그래서 고명을 넉넉하게 올려야 해요. 달걀지단 채 썬 모양이 예쁘지 않나요? 다른 곳은 사서 쓰는데 어머니가 직접 부친 거예요.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직접 만드세요.” 

    육수는 서울의 이름난 평양냉면 가게들 육수보다 진하게 느껴진다. 면은 식감이 미끄덩거려 ‘냉면인’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고명을 층층이 쌓는 까닭

    “한국의 냉면은 메밀을 적게 씁니다. 면에서 검은빛이 돌아야 하는데 아이보리색 느낌이 강해요. 메밀은 끈기가 없어 면을 내면 툭툭 끊어져요. 반죽할 때 밀가루를 섞는 건 그래서죠. 북한에서는 메밀을 껍질째 제분하고 밀가루를 쓰지 않습니다. 제분소를 찾아 껍질까지 갈아달라고 했더니 기계가 망가져 안 된다더군요. 1년을 수소문해 강원도 평창에서 껍질째 제분하는 곳을 찾았습니다. 껍질째 제분한 메밀과 감자전분을 섞어 면을 내는 게 북한 방식이에요. 우리 가게도 메밀과 감자전분만 사용합니다. 면이 미끄덩거린다는 분도 있고, 탱글탱글 쫀득쫀득해서 좋다는 분도 있습니다.” 

    - 장사는 잘됩니까.

    “점심에는 예약 손님을 못 받고 있어요. 오전 11시 반부터 줄을 섭니다. 오후 5시 반부터 다시 붐비고요.” 

    ‘설눈 CEO 문연희’ 명함을 가리키며 물었다. 

    - 장래 희망은요. 

    “프랜차이즈로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직영점으로 2호, 3호, 4호를 내가는 게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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