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지휘부 부딪치다 현장도 포기”
“토리<문 대통령 애완견> 지휘부” “애플 청장”
“시위 대처·수사에 외압 없어”
“경찰개혁위원회, 인권 개선에 기여”
6월 22일 서울 종로구 현대 중공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금속노조 집회에서 한 경찰관이 집회 참가자들에 둘러싸여 끌려가고 있다. [뉴스1]
한 경찰 간부가 ‘경찰 지휘부의 정권 눈치 보기’ 논란을 빗댄 말이다. 토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애완견 이름이다. 이 간부는 민갑룡 경찰청장이 2018년 7월 취임한 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 등의 불법 시위에 경찰이 무력한 것 같다고 말한다.
경찰서를 출입하는 몇몇 기자는 요즘 민노총에 밀리는 경찰의 모습을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민노총 금속노조 소속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노조 조합원들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에 반발해 최근 울산, 경남 거제, 서울에서 불법성 폭력시위를 벌여왔다. 5월 22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 앞 시위에서 민노총 조합원들의 폭력으로 경찰관 19명이 다쳤다. 치아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경찰관도 있었다. 선글라스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조합원들은 경찰관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일부 경찰관들은 붙잡혀 질질 끌려다녔다.
이 현장을 취재한 한 언론사 사회부 A 기자는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1000여 명의 경찰이 있었는데 제대로 진압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상당수 경찰이 다쳤지만 브리핑이나 발표가 없었다. 폭행당하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경찰 지휘부의 행태가 문제다.”
한 매체는 경찰관의 손목이 골절됐다고 보도한 반면, 다른 매체는 손목 인대가 손상됐다고 했다. 경찰이 사건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4월 3일 국회 앞에서 열린 ‘탄력근로제 확대 반대’ 집회 등의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자주 경찰 공권력을 경시한다.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회사 측이 고소·고발한 노조 간부 등은 79명(6월 12일 기준)에 달한다. 경찰의 후속 대처와 관련해 ‘미흡하다’는 논란이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5월 22일 오후 8시께 현대중공업 불법 시위 현장에서 공무집행방해와 집회시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거된 민노총 조합원 12명 중 10명은 4시간 만인 다음 날 새벽 1시쯤 석방됐다.
경찰관 6명이 다친 4월 3일 국회 앞 시위에서도 경찰은 불법·폭력 시위를 한 혐의로 김명환 위원장 등 민노총 관계자 25명을 연행했지만 8시간 만에 전원 석방했다. 한 수사경찰은 “피해자가 여러 명이면 조서 작성에만 장시간이 걸린다. 수사를 대충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제 대한민국은 ‘민주노총공화국’으로 바뀐 것 같다”고 했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강성 노조는 문재인 정권 출범의 최대 채권자”라며 “연행된 조합원 전원이 석방됐다고 하니 법을 무시하고 공권력을 무력화시켜도 역시 민노총은 치외법권”이라고 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일반인이 경찰관에게 그랬으면 체포돼 수감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경찰 간부는 “경찰의 정권 눈치 보기는 역대 정권에서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도가 심하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부 출범 초기 민노총의 불법에 대해 현장과 지휘부가 부딪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현장에선 엄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윗분’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현장도 포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찰 지휘부가 정권의 친노조 정서에 알아서 맞추는 분위기를 조성해온 것 같다.”
민 청장은 원래 1순위 후보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가 이철성 청장 후임 인선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청와대에선 이주민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경찰청장으로 원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 전 청장이 ‘드루킹사건 부실 수사’ 의혹을 받으면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 어렵게 됐다. 경찰총수가 낙마하면 국정 운영에 부담이 크다고 판단해 민 청장을 택한 것으로 안다. 민 청장이 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경찰개혁위원회에서 활동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민 청장은 취임 이후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정부 방침을 잘 따랐다고 한다. 자치경찰제 도입과 위원회 권고안도 거의 수용했다. 자문기구인 경찰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는 2017년 6월 정부의 ‘인권 경찰’ 기조에 따라 설치됐다. 인권보호, 수사개혁, 자치경찰 등 3개 분과로 구성돼 촛불 집회 백서 제작, 집회 차벽 금지, 피의자 인권보호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진상조사위 출신 민 청장
5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찰개혁의 성과와 과제 협의회’에 참석한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맨 왼쪽)과 민갑룡 경찰청장(가운데).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6명의 민간 조사위원은 2급 수사기밀까지 열람할 수 있었다. 위원장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인 유남영 변호사가 맡았다. 유 변호사는 ‘용산참사 기억과 성찰위원회’ 공동위원장 출신이다. 다른 민간 조사위원들은 ‘SKYM(쌍용·강정·용산·밀양)공동행동’ 소속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전승 흥사단 사무총장, 노성현 서울변호사회 인권위원회 노동인권 소위원장, 위은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정문자 한국여성단체연합 이사 등이었다. 경찰 추천 위원에 민갑룡 당시 경찰청 기획조정관도 포함됐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7년 10월 “개혁위 면면을 보면 민변, 참여연대, 민주당 출신, 노무현 정부 출신 등 총 19명 중 15명이 좌파진영”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윤재옥 의원은 “경찰의 정책 결정 과정에 개혁위 권고가 100%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회의 녹취록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진상조사위가 발표한 ‘밀양·청도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쌍용자동차 파업’ ‘2015년 민중총궐기투쟁대회 집회’에 관한 조사 결과들은 거의 모두 “경찰의 진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위대의 불법·폭력에 대해선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밀양 송전탑 건의 경우, 공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10명은 2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건도 2014년 대법원은 불법·폭력 시위로 기지 건설을 지연시킨 7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일부 경찰은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에 반발했다. 주로 조사의 편향성에 대한 지적이었다. 제주경찰청 한 간부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조사 발표 당일 내부망에 ‘해군기지 과잉진압 조사 결과에 동의할 수 없다’는 글을 올렸다. 글에서 “강정마을에서 경찰의 인권침해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건 절대 아니다”면서도 “당시 경찰관, 의경 부상자 수만 46명에 달할 정도로 상황이 평온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이 글에는 “조사위가 결정하는 게 모두 옳지는 않다” “공정하지 못한 결과 발표를 인정하지 못 하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경찰 내부에선 민 청장이 위원회나 여론에 떠밀려 사과하는 듯한 모습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진상을 파악하기 전 사과부터 하면 경찰을 가해자로 만든다는 우려다. 한 경찰이 전한 내부 분위기다.
“일부 경찰은 민 청장을 ‘애플 청장’이라고 부른다. 사과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잘못한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건 당연하지만, 과도한 측면이 있다. 15만 경찰 조직의 총수가 고개를 자주 숙이는 모습이 썩 유쾌하진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찰은 청와대와의 코드 맞추기 논란에 심심찮게 휩싸였다. 특검이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를 기소해 1심 법원이 법정 구속한 드루킹 사건이 한 사례다. 당시 경찰은 김경수 지사를 엄정하게 조사하는 대신 두둔하는 발언을 했고, 핵심 증거인 텔레그램을 조사하지 않는 등 축소·은폐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 지휘부는 인사권을 행사하는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해, 또 수사권 조정도 잘 받아내기 위해, 정권과 코드를 맞추고 노조의 불법 시위에도 유화적으로 나오는 것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경찰이 권력의 입맛에 맞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비치는 한, 경찰이 더 많은 권력을 갖는 것에 여론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 패스트트랙에 올려졌다고 하더라도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실제로 성사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고 했다.
민노총 관계자 6명에 사전구속영장 신청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018년 4월 19일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경찰의 증거인멸·부실수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아울러, 경찰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노조 집회 현장에서 빚어진 경찰 폭행과 관련해 조합원 1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는 노조의 불법 시위에 대해 엄정 수사 원칙을 밝혀왔다.
“인권침해 줄고 외압 없어”
이와 관련, 경찰 내에선 “요즘 경찰이 인권을 고려하면서 엄정하게 시위 등에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민갑룡 청장은 6월 3일 민노총의 불법 시위에 대해 “불법행위가 발생해 유감스럽다. ‘우리 집회시위 문화를 퇴보시키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하고 있다”면서 “엄정하게 사법조치하겠다”고 말했다.경찰청 한 관계자는 “민 청장 취임 이후 경찰의 인권침해 사례가 뚜렷하게 줄고 있다. 경찰은 각종 수사를 공정하게 진행하고 있다. 시위 대처를 비롯한 공권력 행사에 있어 청와대 등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일절 없다. 경찰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경찰개혁위와 진상조사위의 활동은 시위진압 등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지적함으로써 대체로 인권침해 방지에 긍정적 효과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