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 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검증된 지식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에 드물어서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씩 책 한 권을 고재석 ‘신동아’ 기자와 함께 읽는다. 5월 28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Book치고 세 번째 모임이 열렸다.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은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의 저서 ‘축적의 길’과 공저서 ‘축적의 시간’이다. 멤버들이 정성스레 써온 서평 중 일부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 주]
책의 저자인 이정동 청와대 경제과학특별보좌관. [이상윤 객원기자]
그러려면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저자는 한국 산업이 처한 위기의 본질을 ‘개념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라는 말로 갈음한다. ‘개념설계’는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산업은 선진 기업이 그려준 밑그림을 받아와 빠르고 효율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성장해왔다. 선진국에는 천재가 많아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 아니다. 선진국 산업은 밑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견디고 서서히 경험을 축적해나갔다. 사람으로 따지면 ‘첫 단추’와 같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연애든 첫 단추를 잘 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밑그림은 곧 첫 단추다.
시행착오는 상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혁신 시도가 실제 결과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구현해보는 ‘스케일 업’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케일 업’ 과정에서 포기해버리는 경우는 많다. 그만큼 어려운 구간이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 산업도 ‘스케일 업’을 하기보다는 만들어진 결과물을 가져오거나 블루오션을 좇아다녔다.
이제 한국 산업은 ‘스케일 업’을 하기 위해 현장을 넓히고 역량 있는 인재를 키워나가야 한다. 그 과정이 길어질 수도 있지만 기다리고 견뎌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포기할 때쯤 한 번 더 버티는 사람이 ‘스케일 업’의 단계를 뛰어넘어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대한민국은 아무런 축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해 고소득 국가에 이른 놀라운 성취를 이뤄낸 나라다. 하지만 과거의 쾌거가 현재의 삶을 채우는 족쇄가 됐다. ‘우리는 잘해왔다’고 박수만 치다 이내 뒤처질 조짐이다.
지금은 ‘시행착오’를 감수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이 서로 독려하고 사회가 그 결과를 확인해 나가야 할 때다.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는 일도 아니다. 저자의 해석을 빌리자면 축적은 사회 곳곳,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이뤄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산업도 사람도 그 과정으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