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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반동적, 노무현은 역동적”

[‘한때 좌파’ 4人의 쾌도난마②] 문재인 시대㊦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문재인은 반동적, 노무현은 역동적”

  • ●“황우석 편들던 유시민·김어준, 지금도 어용”(나연준)
    ●“좌파, 盧를 보수정치 희생양으로만 삼아”(노정태)
    ●“진보 교수들, 혁명 논하다 뒷날엔 부동산 구입”(민경우)
    ●“진중권 안 좋아했는데 ‘진짜배기’더라”(봉달호)
    ●“韓보수, 보편적으로 갖는 정서는 불안감”(나연준)
    ●“국민의힘, 당사에 김대중·노무현 사진 걸어야”(노정태)
    ●“검찰 문턱도 안 가본 사람들이 검찰 악마화”(민경우)
    ●“‘기승전 反共’이 ‘기승전 검찰개혁’으로”(봉달호)


‘한때 좌파’ 네 사람이 12월 7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모였다. 왼쪽부터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 봉달호 편의점주. [박해윤 기자]

‘한때 좌파’ 네 사람이 12월 7일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 모였다. 왼쪽부터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 봉달호 편의점주. [박해윤 기자]

나라가 분열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에 이렇게 살벌한 대치선이 있었던가. 여야는 독재, 횡포, 독선 따위의 단어를 주고받고 있다. 어제의 ‘민주 투사’들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으나 세상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통합 대통령이 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일성은 풍등처럼 어디로 날아가 버렸나. 

난세에는 이해관계를 초월한 진단서가 필요하다. 현재 권력과 불화(不和)하되 과거 권력, 그러니까 전통적 보수진영의 계보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들을 물색했다.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에서 97세대(90년대 학번·70년대 출생), 밀레니얼 세대(1980년 이후 출생) 등 세대도 안배했다. 네 사람의 이력부터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은 1965년생이다. 1987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NL(민족해방) 계열 핵심 이론가였다. 

봉달호 편의점주는 1974년생이다. 92학번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생운동을 시작해 구력은 길다. 주체사상을 공부했으나 후에는 비(非)NL 계열로 총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다.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1981년생이다. 한국 근현대사 정치사상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했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1983년생이다. 딴지일보 온라인 에디터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냈다. 1980년대생을 대표하는 진보 논객으로 불렸다. 

‘신동아’는 12월 7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으로 네 사람을 초청했다. 서로의 글은 즐겨 읽지만 이날 처음 보는 사이도 있다고 했다.

“지금은 노무현 100% 인정”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은 “지금은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을 100% 인정한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민경우 민경우수학교육연구소장은 “지금은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을 100% 인정한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요새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교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 선봉에 선 민경우 소장은 두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민경우 | 노무현과 문재인은 매우 달라요. 저희 때는 노무현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광적으로 좋아한다기보다는 예의 바르게 좋아했다고 해야 할까. 

기자 | 좋아하더라도 남에게 ‘너 왜 노무현 안 좋아해?’ 하며 윽박지르지는 않는다? 

민경우 | 그렇죠.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사상적 공백 상황이었어요.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등장해 민족문제 대신 참여민주주의를 주창하면서 사회를 굉장히 역동적으로 끌고 갔어요. 2000년대가 되면 미·중 양강 체제로 국제질서가 재편됩니다.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했는데, 변화하는 국제질서를 고려한 문제의식이었거든요. 나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고, 한미 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서 정책팀장을 했지만 지금은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을 100% 인정합니다. 훌륭한 대통령이에요. 

2010년대 미·중 양강 체제가 더 심화했습니다. 한국의 다음 과제가 무엇일지 고민할 시기에 유시민 같은 사람이 사회 분위기를 과거사, 적폐청산 등으로 몰고 갔어요. 이 사람들이 주축이 돼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고요. 노무현 정부는 냉전 이후 한국을 젊고 역동적으로 이끌면서 좌파 신자유주의 같은 논쟁도 벌였다면 문재인 정부는 시대를 완전히 거꾸로 몰고 갔어요. 

노정태 |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직접 댓글을 단 적이 있어요. 체통도 그렇거니와 너무 노골적으로 정치편향 행위 아니냐고 막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죠. 돌이켜보면 진짜 ‘인터넷 대통령’이었던 거예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완전히 사라진 존재가 됐습니다. 휴가를 썼다고 하는데, 휴가를 쓴 것과 안 쓴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반면 노 전 대통령은 굉장히 거칠고 투박했지만 굵직굵직한 움직임을 보여줬단 말이에요.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에 참여함으로써 한국이 얻은 건 무엇이고 잃은 건 무엇인지 논하면서 노무현 시대를 이해해야 하는데, 노무현의 상징자산을 통째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회피하죠. 우파는 노무현을 입에 담고 싶어 하지도 않으니 얘기하지 않고, 좌파는 노무현을 보수정치의 희생양으로만 만들고 싶어 하니 얘기하지 않아요. 

봉달호 | 인간 노무현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면 지지자들이 또 화를 내겠지만, 이분이 대체 조직에 대한 관념이 있는 분이었나 싶어요. 본인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을 추스르는 사람이거든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치욕적이라고 느꼈을 테지만 혼자 운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죠. 거기서부터 우리나라 정치가 참 많이 뒤틀렸어요. 복수의 정치가 생겨났고, 폐족을 자처한 사람들이 그 죽음으로 다시 일어섰고요. 

기자 | 진보 지식인 이야기를 해보죠. 먼저 논객이 떠오르는데요. 진중권, 강준만, 유시민, 김어준 씨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문재인 정권 들어 이 중 일부가 어용화(御用化)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논객시대’ 저자인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노정태 | 진보 논객들이 발전담론, 성장담론을 죄악시하거나 설계하지 못하니 퇴행적으로 복수나 과거사에만 집착하는 겁니다. 10년 전부터 감을 잡은 게 있어요. ‘안티조선운동’은 박세길이 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마지막 챕터에 조선일보를 끼워 넣고 ‘이것은 친일의 잔재’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이었다는 걸요. 진보 논객이란 사람들이 운동권 시절부터 배워서 익힌 ‘내러티브’를 새로운 적을 찾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계속 활용한 거죠.

황우석 사태라는 試金石

나연준 | ‘황우석 사태’ 때 황우석 씨 편을 들던 사람들은 지금도 어용화돼 있어요. 유시민, 김어준 씨 같은 사람이요. 

노정태 | 굉장히 중요한 시금석이죠. 

나연준 | 반면 황씨를 비판한 진중권 전 교수는 여전히 비판적 지식인의 입지를 갖고 있고요. 같은 진영처럼 보이던 논객들이 86세대가 권력을 차지하면서 갈린 겁니다. 한쪽은 권력을 결사옹위 대상으로 삼고, 다른 한쪽은 20년 전과 똑같이 비판적 지식인으로 남았죠. 

봉달호 | 무슨 ‘주의자’가 되려면 일관돼야 하잖아요. 밖에서는 굉장한 페미니스트로 자처하는데 집에서 부인이나 딸을 막 대하는 사람은 가짜 페미니스트죠. 마찬가지로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그 사람은 ‘주의자’죠. 사실 진중권 씨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최근 활동을 보면서 ‘와 멋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사람은 박근혜 정권에 들이댄 잣대를 문재인 정권에 똑같이 들이대는 겁니다. 그러면 진짜배기죠(그의 ‘어용화 진단’이 이번에는 권부를 향해 달려갔다). 현 정권에 속한 사람들 눈에는 권력을 잡았을 때 얻는 떡고물이 너무 잘 보이는 거죠. 권력을 빼앗겼을 때 배고팠던 경험도 있고요. (민주당이) 지방권력을 잡으니까 당 조직이 튼튼하게 강화돼 움직이고 있다고 해요. 결국 조직력은 돈에서 나오거든요. 어용화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여담인데, 노무현 정부 때 아는 선배가 청와대에 들어갔어요. 어느 상가에서 만났더니 ‘청와대에 연못이 있는데 거기를 돌려면 몇 분이 걸리고’ 이런 얘기를 해요. ‘이 사람들이 뭔가를 알아가는구나’라고 느꼈어요. 천박한 권력의 맛이죠.

‘거지끼리 자루 찢는 격’

봉달호 편의점주는 “현 정권이 ‘기승전 반공’을 ‘기승전 검찰개혁’으로 바꿔버렸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봉달호 편의점주는 “현 정권이 ‘기승전 반공’을 ‘기승전 검찰개혁’으로 바꿔버렸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이 대목에서 기자는 화제를 진보 성향 대학교수로 돌려봤다. 교수들과 협업할 기회가 많던 민 소장에게 먼저 물었다. 

기자 | 민 소장은 이른바 진보 교수들을 두고 “말만 과격하고 운동은 치열하게 하지도 않았다”고 꼬집은 적이 있죠. 

민경우 | 진보 교수들은 본질적으로 기회주의자예요. 노무현 정부 때 한미 FTA 반대 운동하면서 교수들과 같이 활동했어요. 이분들은 굉장히 사변적이고 관념적이죠. 허황된 주장을 많이 하는데, 그 산물이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열풍입니다.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나라에 있나 싶을 정도로 과격한 얘기를 많이 해요. 나는 부동산 갖지 않고 평생 운동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혁명 얘기하다가 그 뒷날 부동산 사는 일은 안 했어요. 그런데 진보 교수들은 버젓이 부동산으로 돈을 벌더라고요. 황당했어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그 사람들이 청문회에 나오는 걸 보는데 하나씩 퍼즐이 맞춰졌어요. 한미 FTA 싸움은 전부 농민들이 한 거예요. 농민 2만 명이 지방에서 트랙터 몰고 서울에 와서 집회했어요. 그러려면 돈도 많이 들어요. 그런데 교수들은 코빼기도 안 보여. 나는 농민들과 집회를 주도하다가 뒷날엔 교수들하고 토론한 뒤 근사한 술집 가서 술 마셨어요. 

나연준 | 제 전공이 역사학인데, 역사학과는 1년에 한 번씩 역사학 대회를 엽니다. 2014년 제57회 역사학 대회의 주제가 국가권력과 역사 서술이었어요. 역사학 교수들이 모여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를 비판하는 학술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 들어 역사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게 ‘5·18 역사 왜곡 처벌법안’인데, 이걸 비판하는 역사학 교수들을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정말 당파적이에요. 이 세대가 대체로 86세대예요. 지식인이 아니고 그냥 직업이 교수인 사람들이죠. 

기자 | ‘우리 진영’에 맞는 지식인만 찾고, 만약 진영의 이해관계에 해가 되는 말을 하면 속된 말로 ‘좌표’가 찍히죠. 

노정태 | 그러니 분위기를 봐서 얘기하는 게 요새 트렌드죠. 방송 같은 공식 채널에서 배제된 보수 유튜버들은 ‘거지끼리 자루 찢는 격’으로 자기네끼리 욕하고 저격하잖아요. (일동 웃음) 그래야 후원금이 더 들어오니까요.

보수의 헛발질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한국 보수가 보편적으로 갖는 정서는 불안감”이라고 했다. [박해윤 기자]

나연준 제3의길 편집위원은 “한국 보수가 보편적으로 갖는 정서는 불안감”이라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최근 전국 단위 선거에서 보수정당이 4연패했습니다. 왜 보수가 약체가 됐을까요. 

노정태 | IMF 위기를 기점으로 발전·성장·군사 담론이 완전히 확 무너졌어요. 보수가 이를 되살릴 기회는 놓치고 ‘노무현 팬덤 정치’가 이기니 박근혜라는 새로운 아이콘을 데려와 팬덤 정치로 맞섰어요. 담론을 경신하지 않았던 겁니다. 

나연준 | 저희 세대는 유시민, 강준만, 진중권 등 이른바 논객들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반면 사회운동이나 정치에 관심 없는 친구들은 자기계발서를 읽었고요. 저는 자기계발서의 존재야말로 우파 담론이 실패한 증거라고 봐요. 좌파는 어쨌든 자기 담론을 생산했는데, 우파는 국가 발전 담론을 대중화하는 데 실패한 겁니다. 자기계발서에는 국가 담론이 없어요. 모든 문제를 개인화해 버려요. 각자도생이란 말이에요. 자기계발서를 보던 친구들이 나중에는 삶이 힘드니까 복지 담론에 가장 취약해져요.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을 던지고 나오면서부터 우파가 패배했다고 하는데, 그건 패배의 결과였어요. 복지 담론에서 밀렸고 대안 담론이 없으니까 무릎 꿇고 읍소하다가 던지고 나와버린 거거든요. 아직도 우파 지식인들이 베스트셀러를 못 내놓잖아요. 

봉달호 | 보수가 대안 담론을 제시해야 하는데, 자꾸 부정선거 주장하고 이젠 미국 대선까지 부정선거라고 하고 있어요. 어처구니가 없는데…. 

노정태 | 대체 한국 사람들이 미국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뭔지…. 

봉달호 | 문제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보수진영에서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보수에 새로운 대안이 나오지 않고서는 이런 문제가 풀리지 않을 거예요. 보수진영 사람들을 만나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내면 그냥 무조건 싫다고 해요. 미래 사회가 어떻게 변모할지에 대해 대화 자체를 안 하려고 해요. 소위 진보에 대한 안티테제로만 존재할 뿐이지, 정권을 잡으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어요. 여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작은 정부나 감세론을 얘기해요. 그러면 그냥 계속 태극기 흔드는 사람일 뿐이죠. 

나연준 | 한국 보수가 보편적으로 갖는 정서는 불안감이에요. 선거에서 계속 졌고 다음 선거에서도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는 겁니다. 불안함이 커질 때 증상이 여럿 있잖아요. 그중 하나가 음모론에 빠지는 겁니다. 또 보수에 감별사가 너무 많아요. 너는 진짜 보수고 너는 가짜 보수라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감별해요. 

노정태 | 그게 진보가 패배할 때 했던 행동이에요. 

나연준 | 맞아요. 1980년대 운동권들이 누가 레닌에 가까운지 경쟁한 것과 비슷해요. 불안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인정투쟁이 심해지죠. 1980년대 운동권들에게 레닌이 하던 역할을 지금 우파에서 하는 인물이 이승만, 박정희예요. 이승만, 박정희 모두 훌륭한 인물이죠. 그런데 지금 한국 보수는 이승만, 박정희를 영웅주의 서사 속에서 보고 있어요. ‘이 사람들 없으면 우리는 망했고, 깡통 찼을 거고, 배곯고 있고….’ 이승만과 박정희는 당시 시대 과제를 해결한 사람들이에요. 지금 한국 보수는 훈고학적이에요. 옛날얘기만 하면서 이승만, 박정희처럼 시대 과제를 내세우는 일은 하나도 못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너 김영삼 좋아해? 그러면 가짜 우파야’ 이러고 있어요. 

기자 | 보수도 사림 논쟁 중이군요.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 

노정태 |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사과하는 것보다 보수에 더 중요한 건 김대중·노무현 두 사람을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건 당사에서 이승만·박정희의 사진을 떼는 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의 사진을 거는 겁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모든 대통령을 모두 인정하고 국가 전체를 끌어안는 세력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해요. 김대중·노무현은 뭘 해도 안 되고 용납 못 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중도를 포용할 수 없어요. 

주사파였던 민 소장이 이즈음 간략히 ‘보수 혁신론’을 폈다. 

민경우 | 나는 보수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생활형 보수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의사파업이나 탈원전, 최저임금 문제 등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생활형 보수와 몽상가 운동권 정권으로 대치선을 치면 어떨까 해요. 이념형 보수로는 답이 없어요. 나는 보수 유튜브 채널을 보면 정말 기겁하겠더라고요.

검찰개혁의 민낯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여야 모두 검찰의 불기소 처분 권한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는 “여야 모두 검찰의 불기소 처분 권한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기자 |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많이 회자되는 단어가 ‘검찰개혁’인데요. 이른바 ‘추-윤’ 정국을 어떻게 봤나요. 

민경우 | 먼저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1999년 30일, 2004년 30일 간 검찰 조사를 직접 받았어요. 

기자 | 당시 구속됐죠. 

민경우 | 네. 검찰을 마치 거대 악처럼 생각하는데, 내 경험으로는 거대악은커녕 늘 보는 아저씨들이에요. 

봉달호 | 직장인이죠.(웃음) 

민경우 | 검찰 수사의 전 과정을 관통하는 건 ‘팩트(fact)’예요. 나는 검찰에서 맞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검찰에 간 첫날 혀 깨무는 연습부터 했다니까요. 하지만 그냥 팩트에 기초해 드라이하게 수사했어요. 1980년대 운동권이 보기에 그 정도면 사랑스러운 검찰이죠.(웃음) 그런데 지난해부터 주변에서 ‘너 검찰이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알아?’ 이렇게 말해요. 그럼 ‘나 검찰 조사 60일 받아봤어. 넌 무슨 조사 받았는데’라고 되묻죠. 당연히 받아본 일이 없겠죠. 검찰 문턱에도 안 가본 친구들이 검찰을 악마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한국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화되고 현대화됐어요. 검찰에 다소간 흠결은 있겠으나 검찰개혁이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인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고요. 

봉달호 | 지금 검찰이 절대로 기소권·수사권 못 내놓겠다고 하는 상황이 아니에요. 검찰 전체가 나서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요. 여권이 자신들에 대한 수사가 들어오니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검찰을 ‘조지고’ 있단 말이죠. 어처구니가 없어요. ‘기승전 반공’을 ‘기승전 검찰개혁’으로 바꿔버린 셈인데, 과거 자신들이 당했던 걸 그대로 이용하는 겁니다. 

노정태 | 1987년 민주화는 검찰이 군부를 이긴 결과예요. 군부독재의 하수인인 경찰이 사람을 죽였는데 검찰이 다시 조사했잖아요. 자칭 민주화 세력은 검찰이 축소수사를 했다고 주장하는데, 애초에 검찰이 나서지 않았으면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하고 넘어갔을 사안을 검찰이 들고일어나 조사한 겁니다. 민주주의와 민중주의를 자꾸 혼동하는데요. 민주화는 민중의 힘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엘리트 내부의 균열로 이뤄졌습니다. 엘리트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 중 하나는 자존심 강하고 사실과 법을 존중하는 훈련이 돼 있는 검찰이었어요. 검찰을 새로운 악으로 부추기는 건 탈역사적 행위이자 거짓말에 입각한 세계관입니다. 

나연준 | 사실 일반인이 웬만큼 잘못하지 않으면 검찰한테 조사받을 일은 없거든요. 

기자 | 민경우 소장은 많이 잘못했나 봐요.(웃음) 

노정태 |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는 게 일종의 신분 증명이잖아요.(웃음) 

나연준 | 검찰개혁을 이렇게 의도적으로 띄우는 이유는 86세대가 검찰에 불려 갈 만한 행동을 차곡차곡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여요. 검찰개혁이 마치 전 국민에게 급박한 담론인 것처럼 얘기하는 과정에서 노무현이라는 상징이 동원된 거죠. 또 다른 형태의 ‘노무현 장사’입니다. 검찰개혁은 아무 의미 없는, 그냥 주문이에요 주문. 우리 편 모으는 깃발이죠.

‘국민의 영웅’과 ‘악당’ 사이

이 대목에서 화살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향했다. 

노정태 | 한국 검찰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검찰이 사건을 덮을 수 있다는 겁니다. 즉 불기소처분이 가능한 건데, 독일 검찰도 수사권은 있어요. 다만 기소를 안 할 권리가 없어요. 그러면 무조건 법정에 가니까 사건이 드러나요. 미국에서는 검찰에 수사권이 없는 대신 FBI나 지방경찰 등 경찰 조직이 여럿 있어요. 사건이 올라오는 걸 검사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어쨌든 또 법정으로 갑니다. 즉 검찰의 권력을 빼는 방법은 검찰이 사건을 덮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정작 불기소 처분에 대한 얘기를 아무도 안 해요. 국민의힘에서도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면 현재 검찰 제도를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별 얘기 안 하고요. 

봉달호 | 검찰을 키운 건 정치인들이에요. 대화로 풀 수 있는데도 서로 고소·고발하잖아요. 정치가 실종됐죠.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정말 검찰개혁 하려고 했다면 1년차에 했어야죠. 써먹을 땐 ‘국민의 영웅’이라더니 4년차가 되니 검찰을 ‘악당’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신동아 202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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