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호

정의당 장혜영 “좌우가 아닌 상하 불평등이 문제…하위 90% 대변하는 정당 돼야” [사바나]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0-06-15 10: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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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증발달장애 동생 탈(脫)시설 도우며 인권운동가로 활동

    • 사회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정치 입문

    • 심상정 대표 ‘하드캐리’ 더는 무리

    • 민주당과 다른 정의당…“색깔 또렷이 하겠다!”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뉴시스]

    [뉴시스]

    장혜영(33) 정의당 혁신위원장은 요즘 가장 바쁜 초선의원 중 한 명이다. 지난해 10월 정의당에 입당해 당내 경선을 거쳐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현재 그 앞에 떨어진 발등의 불은 ‘정의당 혁신안 구성’. 5월 24일 정의당 혁신위 위원장으로 선출됨에 따라 당 노선과 지도체제 개편 등 쇄신 방안을 책임지게 됐다. 이를 위해 날마다 전국 시도 당과 지역위원회를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혁신안은 오는 8월 30일 열리는 혁신 당대회에서 의결 과정을 거친다. 

    정 의원의 이력은 남다르다. 2011년 연세대(신문방송학과)를 자퇴하며 이른바 ‘스카이(SKY) 자퇴생’ 일원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후 발달장애인인 동생 혜정 씨의 자립을 도우며 장애인운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을 제작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법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의당에 입당했다. 30대 초선의원이 그리는 새로운 정의당의 청사진은 무엇일까. 다음은 장혜영 의원과의 일문일답.

    “인물이 아닌 시스템 구축이 우선”


    - 혁신위원장으로서 정의당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조직을 끌고 가기 쉽지 않다. 심상정 대표의 ‘하드캐리(hard carry)’ 방식이 안타깝다. 혼자 너무 많은 무게를 지고 가는 것 같다. 정확한 방향과 정책을 구축해 누가 와도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 이념적인 지향이나 비전에는 변함이 없나. 

    “당의 노선 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좀 더 구체적이고 또렷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좌우’가 아닌 ‘상하 불평등’이다. 이번 혁신을 통해 정의당이 하위 대다수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걸 명확히 할 것이다.” 



    - 기존의 정의당 색깔은 흐릿하다는 의미인가? 

    “정의당 하면 사람들이 민주노총을 떠올린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훨씬 많고, 수많은 비정규직 중에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못하는 분들은 과연 정의당이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투명인간 취급받는 최약자들, 하위 90%를 대변하는 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자산(소득)의 불평등이 세습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기후위기 등의 재난에서조차 평등하지 않다. 재난이 닥치면 이미 취약한 사람은 더 취약해진다. 지금이야말로 민주사회에서 우리가 그토록 외치는 평등,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노동이 기본적인 분배의 기준이 됐지만 지금처럼 실업이 증가하고 경기 흐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복지 영역을 확충하고 고용 안전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게 필요하다.” 

    - 현재 ‘차별금지법’ 대표발의를 준비 중인데, 이번에는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 같나.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이후 14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적지 않은 의원이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발의자 10명을 반드시 채워서 조만간 국회에 정식 제출할 계획이다.” 

    차별금지법은 정의당의 5대 입법과제 중 하나로 장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추진했던 ‘심상정안(案)’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발의를 준비했다. 차별금지법은 성적지향·성별정체성·학력 등을 이유로 고용·거래·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17~19대 국회에서 꾸준히 발의됐지만 종교계 등의 반대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대 국회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발의를 준비했으나 정의당 외에 공동발의자를 찾지 못해 발의조차 하지 못했다.

    발달장애 동생과의 동거…“함께 사니 살만해”


    - 정의당을 ‘민주당 2중대’ 쯤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두 정당의 ‘민주대연합’ 요체는 야권 연합이었다. 하지만 이제 민주당은 여당이고 정의당은 야당이다. 정의당은 독자적인 야당의 컬러를 가져야 한다. 민주당이 할 수 없는 얘기를 우리는 할 것이다. 민주당이 거대 여당의 자리에 오른 건 국민의 선택이었기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대 여당에 걸맞은 공적 책임감을 회복하면 좋겠다. 정치적 책임감 말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가 ‘내로남불’ 아닌가. 제발 그것만큼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 

    - 인권운동가에서 정치인으로 변모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 9월 심상정 대표로부터 입당 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거절할 궁리만 했다. 그런데 내가 이토록 바라는 ‘사회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려면 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정치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인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들만 모여 정치를 한다면, 그 정치가 이상해지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나.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정치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게 됐다.” 

    - 발달장애로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던 동생을 집으로 데리고 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지금의 삶은 어떤가(장 의원은 일찌감치 부모에게서 독립해 혼자 살았다). 

    “동생의 탈(脫)시설을 결심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많이 괴로웠다. 긴장감이 컸던 거다. 워낙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동생과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내 삶에 배수진을 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동생이 인간답게 사는 게 더 옳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장애가 있는 가족과도 행복하게 한집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사회적인 차원에서 증거를 만들고 싶었다.” 

    - 현재 동생은 누가 보살피나. 

    “활동지원사 서비스를 이용한다. 한 달에 총 300시간을 쓰는데 이 중 150시간을 나라에서 지원해 준다. 나머지는 사비로 내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장애인의 사회적 자립을 위한 24시간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1호 공약으로 내고 싶었다. 우리는 여전히 장애인의 돌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가족이 있든 없든,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 태어났다면 그 사람을 돌볼 인력은 사회 자원으로 제공해야 한다. 중증 장애를 가진 자식을 돌보다 부모가 자식과 함께 동반 사망했다는 뉴스가 더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 초선의원으로서 다짐 한 마디 한다면.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컸다. 아무리 굳은 의지가 있는 사람도 엿가락처럼 휘어지게 만들거나 마른 대나무처럼 부러지게 만드는 게 정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길에 뛰어든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말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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