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호

청와대 안보라인 파워게임 2라운드

핵심실세가 주도한‘문민 국방장관론’ … 류우익·이상우 카드 급부상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0-07-30 15: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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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원 감사 반발, 천안함 사고대응 부실에 분노한 청와대
    • 4월 사실상 폐기됐던 보고서가 되살아난 까닭은
    • ‘실세’ 정인철 전 비서관이 밀었던 류우익 카드의 위력
    • 후보 1순위였던 장수만 차관이 하마평에서 멀어진 이유
    • 국방선진화위 대통령 직속으로 재편한 이상우의 힘
    • 군 관련 인사에서 ‘단호한 조치’ 주저해온 대통령 결심이 관건
    청와대 안보라인 파워게임 2라운드
    “오바마 대통령이 몇 마디 말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의 목을 단번에 날리는 것을 봐라. 문민통제라는 가치의 무서움이다. 반면 우리군은 천안함 사건처럼 엄중한 사태가 터졌는데도 감사원 감사결과에 국방장관이 직접 반박하고 나서는 수준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지 않았나. 민간인 국방장관을 세워 통수권자의 명령을 직접적으로 관철하는 구조를 만들 때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안보분야 참모그룹으로 분류되는 인사의 이 같은 말은, 6월 하순 이후 청와대 당국자들이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문민 국방장관론’의 복판을 꿰뚫고 있다. 군도 정부의 일부라는 인식을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군을 대표하는 국방장관’이 아니라 ‘대통령 참모로서 군을 관리할 국방장관’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 발표현장에서 제시한 설계도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등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지고, 군 수뇌부가 국회 상임위 석상에서 감사원 발표를 ‘들이받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이러한 인식이 급부상했다는 것. 한마디로 ‘군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 핵심에서 문민 국방장관을 검토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천안함 사건 직후인 4월 초순 정인철 전 비서관이 이끌던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에 중량급 정치인들을 거명한 보고서 제출됐다가,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이 북한 소행 쪽으로 급격히 기울면서 사그라진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주변의 예비역 인사들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사이에서는 이른바 ‘안보태세 재정비’의 주도권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신동아’ 6월호 ‘청와대 파워게임 전말’ 기사 참조). 문민 국방장관 임명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는 그 2라운드에 해당하는 셈이다.

    정인철의 힘

    첫 번째 논쟁의 핵심쟁점이었던 신설 안보특보의 역할에 관해서는 외교안보수석실 등 참모그룹의 견해가 관철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존 안보라인과는 별도로 국방 분야 어젠다를 총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던 특보의 역할이 6월말 들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관할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는 것. 눈여겨볼 것은 이러한 ‘교통정리’ 역시 기획관리비서관실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최근 ‘영포라인’과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의 권력 전횡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뉴스의 초점에 섰던 정인철 전 기획관리 비서관은 2008년 7월 박영준 당시 기획조정비서관의 뒤를 이어 청와대에 입성했다. 선진국민연대 대변인을 지낸 정 전 비서관은 최근 은행장과 민영화된 공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정례적으로 소집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청와대 조직개편 과정에서 신설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될 가능성이 점쳐졌던 정 전 비서관은 1급이지만 수석비서관(차관급) 회의에 참석했을 정도로 ‘숨은 실세’였다.

    흥미로운 것은 그간 기획관리비서관실이 외교안보 분야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관여해왔다는 정부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안보특보와 외교안보수석실 사이의 업무분장 조정은 청와대 내부의 조직관리를 담당하는 기획관리비서관의 업무범위 내의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 전 비서관의 관여는 이를 넘어섰다는 것. 뒤늦게나마 ‘월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형국이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무기중개상들의 리베이트를 없애면 국방비를 20%는 줄일 수 있다”고 언급한 이래 검찰과 국세청은 전방위적으로 방산업체 비리 수사를 진행한 바 있다. 사정기관 출신 행정관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기획관리비서관실은 이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왔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안보전문지 ‘D·D포커스’는 2009년 12월호 기사에서 정인철 비서관이 김태영 장관 등을 접촉하며 업무범위를 넓혀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렇듯 광폭행보를 이어가던 기획관리비서관실은 7월 초까지 문민장관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설파한 주체였다. 구체적으로 거론했던 장관 후보는 류우익 주중대사였다. 당초 이재오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비롯한 다른 카드도 보고서에 포함됐지만 국내 정치일정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해 류 대사로 단일화됐다는 게 정설. 카리스마 있는 대통령의 핵심측근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해 강도 높은 군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게 핵심논리였다. 안보태세 재정비 과정을 군이 주도할 것이냐 민간이 주도할 것이냐를 두고 일었던 논란에서 일단 ‘실세그룹’이 참모진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다. ‘실세그룹이 미는 핵심실세’라는 점에서 류우익 카드가 강력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육군 중위로 병역을 마친 뒤 육군사관학교에서 근무했던 류 대사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군 인사들과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2007년 이명박 후보의 경선 자문단장을 맡아 안보정책 준비에도 관여하려다 안보 분야 참모진의 수장 역할을 했던 현인택 현 통일부 장관과 마찰을 빚은 일은 잘 알려진 일화. 대통령실장 재임 중에도 군 정보당국의 청와대 보고에 관여하는 등 국방 문제에 관심을 피력해왔다.

    그러나 류우익 카드가 과연 군이나 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인지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만만찮다. 우선 실세 논란 혹은 회전문 인사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 복잡하기 짝이 없는 국방 분야를 조기에 꿰뚫어 개혁을 밀어붙이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예상된다. 대통령실장 시절 군 인사를 앞두고 각군 총장을 면담한 일이나, 인척관계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김종태 장군이 기무사령관으로 발탁된 것을 둘러싸고 군 인사개입에 관해 뒷말이 나왔던 것도 난점으로 지적된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 초기 현인택 장관이 입각하지 못했던 것을 당시 대통령실장이던 류 대사와의 ‘옛 악연’ 때문으로 풀이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는 점이다. 류 대사 카드에 대해 안보라인 참모그룹 일각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현재의 흐름은 이와 관련 지어 해석할 수 있다. 류우익 장관론을 주도했던 정 전 비서관이 안보라인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피해의식’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7월 초 이른바 ‘실세 권력전횡’ 논란이 불거진 이후 류우익 장관론이 일정부분 수그러들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를 주도했던 정인철 전 비서관이 7월12일 사퇴하면서 동력을 상당히 잃었다는 것. 특히 청와대 안보라인 관계자들은 “그 카드는 이제 폐기됐다”고 공언할 정도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의 역할은 류우익 장관론의 ‘전파’에 가까웠을 뿐, 이를 뒷받침한 권력핵심의 의중은 여전하다는 점에서 계속 살아 있는 카드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선진화위가 청와대 간 까닭은

    당초 청와대가 문민 국방장관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알려졌던 장수만 국방차관은 현재 시점에서는 장관 하마평에서 멀어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선 지난해 국방예산 논의 과정에서 이상희 당시 장관과 빚은 갈등 때문에 군심(軍心)과 지나치게 거리가 벌어졌고, 예산 문제 이외의 개혁과제 수행에서 이렇다 할 성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본인 도 국방장관직에는 큰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게 국방부 핵심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대신 외교안보수석실과 대선 과정에서의 참모들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새로운 카드는 이상우 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이다. 우선 전문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게 첫째 이유다. 지난해부터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을,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을 맡아 안보정책 재편 논의에 깊숙이 관여해왔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개혁 방향 설정을 주도한 인물이 그 실행까지 책임진다’는 그림이 가능한 것이다.

    국제정치학과 안보문제의 ‘대가’로 평가받는 이 의장은 1971년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오랜 기간 재직했다. 안보라인 핵심에 포진한 학자 출신 주요 당국자들과는 사제지간에 준하는 인연으로 얽혀 있기도 하다. 청와대 주변에서 ‘이상우 국방장관론’이 끊이지 않는 배경 가운데 하나다.

    국방장관 직속이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최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재편된 것도 이 의장의 작품이라고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군의 문제점과 비효율적 요소를 점검해야 하는 위원회의 특성상 장관 직속으로는 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이 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해 성사시켰다는 것.

    그러나 올해 72세인 고령의 이 의장이 혹독한 업무량을 자랑하는 국방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본인 역시 장관 임명 자체에 대해 별다른 의지를 피력한 적은 없다는 것이 가까운 인사들의 전언. 긴 시간 이어진 하마평이 좀처럼 수면으로 부상하지 못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한편 대통령 주변의 군 출신 인사들은 여전히 문민장관론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과정에 자문했던 한 전직 군 고위관계자는 “청와대가 국방예산 문제에서 양보하지 않는 한 군의 반발이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장수만 차관이나 홍규덕 개혁실장 등 외부인사가 국방부에 입성하는 과정에서 겪은 난관을 봐도 알 수 있듯 문민장관 임명 이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단언이다.

    남은 것은 대통령의 결심

    특히 예비역 단체 등 보수진영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늠해보면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도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 전작권 전환 연기로 보수층의 안보 우려를 상당부분 달랬다고는 하지만, ‘5·16 이후 최초의 문민장관’이라는 상징성이 갖는 충격파는 상상 이상일 수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대응과정에서 드러났듯 이명박 대통령이 ‘군의 사기와 관계된 일’, 특히 인사문제에 있어 단호한 조치를 내리는 데 주저해왔다는 점은 급부상한 문민장관론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다. 과연 청와대는 ‘상상 이상의 결심’을 감행할 수 있을까. 개각의 초시계가 째깍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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