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방 침대에 걸터앉은 희원이.
“다시 그 학교로? 난 안 가”
이런 연유로 글래스고의 부동산시장에서 플랫 1층을 빌리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웠다. 결국 우리는 글래스고 대학 근처의 플랫 2층을 빌렸다. 우리 집 아래층의 마음씨 좋은 스코틀랜드 노부부는 “낮에는 아이들이 얼마든지 뛰어도 된다”고 하셨지만 내 마음은 늘 좌불안석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빌려주던 집이다 보니 대부분의 가구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희찬이가 동네 초등학교에서 매일같이 말썽을 일으켰다. 영국의 초등학교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군제여서 그 동네에 있는 가까운 학교에 가야만 한다. 학교의 정원이 다 차서 전학생을 받을 자리가 없다면 모를까, 학생 마음대로 학교를 선택해서 갈 수는 없다. 그런데 동네 초등학교가 마음에 안 든다며 아이가 죽어도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니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이 연재물을 계속 봐오신 독자는 아시겠지만, 우리 집의 문제는 대개 희찬이로부터 비롯된다).
지난 호에서 잠깐 설명한 대로, 희찬이는 지난해 10월에 첫 학교인 세인트피터스 초등학교에서 외국인 특별학급이 있는 오크그로브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다행히 외국인 특별학급에서 희찬이는 모범학생으로 180도 변신했고,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며 영어도 많이 배웠다. 그런데 이 외국인 특별학급은 원칙적으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학생들은 다닐 수 없는 곳이었다. 말 그대로 ‘영어가 안되는 외국 학생’만 한시적으로 다닐 수 있는 학교였다. 그래도 나는 스코틀랜드의 1년 학제가 끝나는 6월 말까지는 희찬이가 외국인 학급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글래스고 시의회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글래스고 시 전체에 있는 외국인 특별학급을 5월 말에 일제히 닫아버렸다.
희찬이는 원래 학교인 세인트피터스 초등학교로 돌아갈 바에는 학교를 아예 안 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를 잘 설득해서 학교를 계속 다니게 하는 게 정답이겠지만, 아이가 그렇게나 다니기 싫다고 하는 학교에 억지로 되돌려 보내는 게 꼭 옳은 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왕 살고 있는 플랫도 이래저래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집을 옮겨보자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집을 옮기면 다른 학군으로 소속돼 자동적으로 전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도시 근교에는 중산층이 모여 사는 베드타운 마을이 여러 곳 있다. 이런 마을에는 학군 좋다고 소문난 초등학교와 큰 슈퍼마켓 체인들이 있고 공원과 골프장 등 녹지가 많다. 한마디로 교외의 평온하고 안정된 마을이다. 글래스고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그래 봤자 5㎞ 정도지만) 지역에 베어스덴이라는 소도시가 하나 있었다. 학군 좋고 동네 분위기 좋기로 유명한 지역이니만큼 집세도 싼 편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