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택시 기사’ 이병석 의원 동행 취재

“의원님, 잔돈은 팁이에요!”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입력2007-10-08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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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 기사’ 이병석 의원 동행 취재
    희뿌옇게 동이 터온 오전 6시44분. 양손에 힘겹게 짐 보따리를 든 할머니가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짐을 트렁크에 싣고 차에 올랐다.

    “어르신 올해 연세가 얼만교? 일흔다섯?”

    “넘(남)의 나이를 와 그리 높이 보노. 아저씨 눈이 좀 이상타.”

    뜻밖의 호통에 혼쭐난 ‘택시 기사’는 경북 포항 북구를 지역구로 둔 한나라당 이병석(李秉錫·55) 의원이다.

    “나이를 10년이나 더 봤으니 찍혀도 싸지…어르신, 제가 국회의원 이병석입니더.”



    미안한 마음에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리자 할머니는 다시 “국회의원이 제 일은 안 하고 뭐 하러 이리 돌아다니노? 돈도 많이 벌고 비서 델꼬 다니는 사람이 택시 운전은 와 하노” 하고 몰아세웠다.

    이 의원이 “우리 시에서 재개발,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해달라고 도에 신청한 곳이 26군데인데 요번에 모두 확정된 거 아시지요? 어르신이 사시는 곳도 상습침수지역이라 요번에 통과됐어요. 그곳 조합장님이 저한테 와서 통과시켜달라꼬 하도 부탁을 해쌌고, 아이구…말도 마이소”라며 너스레를 떨자 그제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잠시 뒤 할머니가 내려야 할 곳을 조금 지나쳐 차를 세우자 “조만치에 서야 되는데 와 이리 마이(많이) 왔소!”라고 핀잔을 했다. 재빨리 택시에서 내린 이 의원이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 캐리어에 얹어주자 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 걱정스러운 듯 뒤를 따르던 이 의원은 할머니가 골목 어귀로 사라지자 택시로 돌아왔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재선(再選)의 이병석 의원은 올해로 6년째 여름이면 지역구에 내려가 이틀 동안 택시 운전대를 잡는다. 영업용 택시 안은 실물경기를 체감하는 바로미터이자 서민의 삶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돈 벌러 갑니데이”

    “한나라당의 주도로 이번 국회에서 기초노령연금지원 법안을 통과시켜 내년부터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연금을 주게 됐어요. 또 택시업계를 위해 영업용에 부과되는 LPG 특별소비세 폐지를 추진 중이고, 고급 운송수단으로 되어 있는 택시를 대중 운송수단으로 바꾸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죠. 피부에 와 닿는 정책들을 세우고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은 민심을 아는 데서 나옵니다. 택시를 몰면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손님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민생경제와 관련한 의견을 듣고 이를 의정활동에 반영할 수 있어요.”

    그가 택시 운전대를 잡게 된 건 16대 총선을 앞두고 만난 택시 기사들과 한 약속 때문이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역구에 나타났다 당선되면 코빼기도 안 보인다. 지역구에 내려와서 택시 운전을 하라면 할 수 있겠느냐”는 기사들의 빈정거림에 이 의원은 “할 수 있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선 직후 1종 운전면허 시험을 치러 택시 기사 자격증을 딴 그는 2002년부터 해마다 포항을 찾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일정으로 다른 해보다 조금 늦어진 9월2일(일요일)과 3일(월요일) 이 의원이 포항으로 내려와 운전대를 잡았다.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12시간 낮 근무를 자원한 그를 동행 취재하기 위해 9월2일 심야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북구 우현동에 위치한 (주)영광교통에 미리 도착해 30분쯤 기다리자 새벽 3시45분 회사 입구에 중형 SUV 한 대가 와서 멈췄다. 이 의원이 수행비서 등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교대근무를 하러 나온 기사들에 둘러싸여 인사를 나누던 그가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영업이 영 신통치 않았다. 손님이 13명뿐이었다. 12시간 일하고 3만4000원 벌어서 사납금(5만9000원)도 못 채웠다”고 한숨을 내쉰다.

    이 의원에게 내준 택시는 ‘경북11바2347’. 조수석 앞쪽에 자신의 택시 기사 자격증을 끼워넣은 그가 “내, 돈 벌러 갑니데이” 하며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기자가 택시에 동석하면 손님들이 잘 타지 않는다”는 비서관의 충고에 따라 일행과 함께 SUV에 올라 택시 뒤를 따랐다. 택시 안의 대화를 들을 수 있도록 무선 마이크를 장착했다.

    죽도시장에서 좌판 벌인 어머니

    ‘택시 기사’ 이병석 의원 동행 취재

    이병석 의원은 택시 기사, 승객들과 대화하면서 민생정책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한다.

    새벽 4시4분 회사를 출발한 이 의원의 차가 6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죽도시장. 포항의 ‘정치 1번지’로 불리며 모든 선거운동의 출발점이 되는 이곳에서 그는 선주(船主)들과 인사를 나눴다. 선주들은 “어제 파도가 세서 폭풍주의보가 내리는 바람에 출항을 못했다. 오늘은 어획량이 어떨지 모르겠다”며 근심을 내비쳤다.

    죽도시장을 나와 첫 손님을 태운 시각은 4시21분. 중앙통 국민은행 사거리에서 해군 하사로 복무 중인 30대 남성이 차에 올랐다. 이 의원이 “요즘 직업군인은 옛날과 달리 군에 남기 위해 경쟁이 심한 모양이던데…”라고 말을 걸자 그는 “하사는 9급 공무원인데 요즘은 사회에서 직장 잡기가 힘드니까 군에 남으려는 사람이 많다. 직업군인이 되려는 사람도 많고. 이래저래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첫 손님을 내려준 뒤 30분 넘게 빈 차로 달리다 들른 곳은 포항의료원 장례식장. 이 의원은 “포항 MBC 보도국장과 경북매일신문 부사장을 역임하신 분이 세상을 떠 오늘 발인이다. 지금 아니면 들를 시간이 없다”며 2층 빈소로 향했다. 유족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나온 그는 “손님이 없을 때 짬짬이 지역구 볼일을 안 보면 따로 시간 내기 힘들다”며 서둘러 차에 올랐다.

    한산한 거리에서 손님이 눈에 띄지 않자 무료했는지 이 의원이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박목월의 시에 곡을 붙인 ‘사월의 노래’였다. 그가 차안에서 즐겨 부르는 가곡은 또 있다. 자작시 ‘3월의 소리’와 ‘그리움은 사랑이 되어’에 전북대 음악학과 이종록 교수가 가락을 붙여준 곡이다.

    ‘처절한 생계수단’

    그는 “이른 새벽에 손님을 찾아 빈 차로 거리를 달릴 때면 어릴 때 고생하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포항은 그가 나고 자란 곳으로 고등학교(동지상고, 현 동지고등학교) 때까지 살았고 지금도 이곳에 집이 있다. 이곳 출신이자 동지상고 선배인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지난 7월 포항 죽도시장을 찾아 ‘아이스케키’ 통을 메고 어린 시절 행상하던 모습을 재현해 화제가 됐다. 이 의원은 “이 후보가 아이스케키 행상을 하던 곳에서 우리 어머니는 좌판을 벌여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서민들 어려운 사정을 잘 안다”고 했다.

    병원을 나와 도착한 곳은 포항에서 가장 큰 아파트 단지인 북구 용흥동 우방아파트. 출근 손님을 태울 요량이었지만 이곳에서도 손님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아파트 경비원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돌아선 이 의원은 “포스코 등 큰 기업들은 대부분 통근버스를 운영하기 때문에 출근시간에도 승객이 별로 없다”고 혀를 찼다.

    “비록 1년에 이틀 택시를 몰지만 이걸 생계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처절해요. LPG 특소세가 100% 면세되면 기사 1인당 월 8만원가량 더 가져갈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나라당이 그 법을 발의했는데,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현재 재발의된 상태죠. 택시 기사들이 잘해야 월 110만원을 버는데, 부인이 부업을 하지 않고는 생활비와 사교육비 대기가 어려워요. 대중 교통수단으로 지정해 세제혜택을 주는 등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택시 기사는 직업으로 분류할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로 분류해야 할 지경입니다.”

    빈 차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5시25분에 도착한 곳은 시청 청소과. 새벽 근무를 마친 환경미화원들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퇴근하는 시각이다. 10여 명의 미화원이 그를 발견하고 “오랜만에 오셨다”며 반가워했다. 뒤이어 “제발 포항 경제 살려서 미화원들 밥 좀 먹고살게 해달라”는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전국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는 환경미화사업 민영화 문제로 포항시는 1년 전 몸살을 앓았다. 시위 등으로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난 후 없던 일로 됐지만, 이 의원은 그 후의 근무여건이 궁금했다. 오후에 다시 만난 한 미화원은 바쁘게 비질을 하며 “인력 보충을 안 해줘서 담당하는 구역이 엄청 넓어졌다”고 힘겨워했다.

    7시49분. 등교시간에 맞춰 대흥중학교 학생 두 명을 태웠다. 북구 용흥동에 있는 대흥중학교는 아파트 단지 안에 비좁게 들어서 예전엔 강당이 없었다. 모든 학교 행사를 운동장에서 하다 보니 한여름, 한겨울엔 학생들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 의원은 “요즘은 다목적 강당에서 학예회 발표나 연극도 하고 지역사회 노인을 모시고 효도잔치도 한다”며 뿌듯해했다. 다목적 강당이 완공된 것은 2002년. 9억8000만원의 건립 비용 가운데 9억원이 국비(특별교부세)로 지원됐다. 이 과정에 이 의원이 힘을 쏟았다.

    이날 오후 영광교통 근처에서 택시를 탄 고교생들 가운데 한 명이 이 의원을 보자 “예전에 의원님께 상을 받았다”며 좋아했다. 지역단체의 추천을 받아 이 의원 명의로 시내 중학생 두 명에게 선행상과 효행상을 준 적이 있는데, 마침 그 상의 주인공을 만난 것이다. 이 의원은 “내 상을 받은 학생을 손님으로 모실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냐”며 놀라워했다.

    쏟아지는 하소연

    ‘택시 기사’ 이병석 의원 동행 취재

    12시간의 고된 택시운전을 마친 이 의원은 사납금 5만9000원을 채우고 1만3000원을 벌었다.

    학생들을 내려주고 오전 8시30분이 가까워오자 시장기가 밀려왔다. 이 의원의 택시가 신호등 앞에 잠시 멈추자 비서관이 차에서 내려 재빨리 뛰어갔다.

    “의원님, 뒷차에서 배고프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마지못해 차를 돌려 송도해수욕장에 위치한 기사식당 ‘옥산옥’에 멈춰섰다. 뒤따라 차를 세운 일행이 내리자 그는 “한창 손님이 잘 드는 때에 배 고프다고 하냐, 돈 벌기 바쁜데 무슨 밥을 먹자는 거냐”며 면박을 줬다. 동태찌개와 순두부찌개로 식사를 마치자 이 의원이 “오늘은 비싼 거(4000원짜리) 먹었으니까 내 밥값은 내가 내고 나머지는 각자 내라”며 식당 밖으로 나갔다. 민망해진 비서관이 “평소에는 단골식당에서 2800원짜리 식사를 하신다”고 귀띔했다.

    식당 앞에서 만난 택시 기사 대여섯이 커피를 들고 이 의원을 둘러쌌다. 한 개인택시 기사가 “하루 3만원도 못 번다. 그런데 건강보험은 개인택시 기사 일당을 7만4000원으로 책정해서 보험료를 매긴다. 이번에 정부가 감세정책(재정경제부가 발표한 ‘2007 세제개편안’에서 종합소득세 과표 구간을 조정한 것)을 내놨는데, 1년 내내 2000만원도 못 버는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다. 연봉을 3000만~4000만원씩 받는 사람들도 임금 올려달라며 파업하는데 우리는 파업도 못 한다”고 불평을 쏟아놓았다.

    옆에 있던 기사도 “택시가 왜 고급 교통수단이냐.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서 2만원, 3만원 벌어봤자 밥값하고 자판기 커피 값 버는 거”라며 열을 냈다. 이 의원은 “지난 10년간 택시업계가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어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 정부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 법인택시 부가가치세 50% 환급제도(조세특례제한법에 근거해 2008년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음) 연장도 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사식당 앞에서 “밥 먹느라 시간 허비했다. 빨리 돈 벌러 가야 한다”고 서두르던 이 의원의 발길을 70대 노인이 붙잡았다. 그는 “지자체에서 6·25 참전용사에게 주는 명예수당이 매월 6만원 나온다. 처음엔 10만원을 주자고 했는데 통과되지 않았다. 전국에 참전용사가 얼마인데 그러냐. 수당 안 올려줘서 우리가 이명박 안 찍어주면 절대 대통령 못 된다”고 흥분했다. 현재 정부는 6·25 참전용사에게 명예수당으로 매월 7만원을 지급한다. 이외에 지자체별로 조례안을 만들어 수당을 지급하는데, 지자체마다 액수가 다르다.

    “국회의원 이병석 닮았네”

    노인과 헤어져 10시9분, 법원·검찰청에 도착했다. 이곳을 드나드는 손님을 태울 생각으로 달려왔지만 이미 먼저 온 빈 택시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 의원은 “시외버스터미널이나 철도역, 공항에 가면 손님이 좀 있다. 법원도 손님이 제법 있는 곳인데 오늘은 어째 사람이 안 보인다”며 별수없이 차를 돌렸다.

    택시 기사 노릇 초기에는 ‘노하우’가 없어 종일 빈 차로 손님을 찾아다녔다. 대로로 다니기만 하면 손님이 있을 줄 알았던 이 의원이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 건 서너 번 기사 경험을 해보고 난 뒤였다.

    “터미널이나 공항에 가면 빈 택시가 줄을 서 있는데, 처음엔 저래 갖고 어떻게 돈을 버나 의아했죠. 그런데 한여름 땡볕 아래 누가 움직이려 하겠어요. 그럴 땐 기름 쓰고 돌아다녀봐야 헛일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죠. 손님이 많은 곳에서 시동 끄고 기다리면 기름 값도 절약되고 손님을 태울 확률도 높으니까 경험 많은 기사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기억에 남는 손님도 여럿 있다. 남구 상대시장에서 작은 순두부가게를 하는 할머니가 그중 하나다. 할머니는 이 의원에게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어려워서 식당 문을 닫을 판이다. 하지만 경기가 어렵다고 사람 입맛이 변하나. 어려울수록 입맛은 더 까다로워지는 법”이라고 했다. 물가가 오르는 만큼 가격을 올리거나 음식 재료비를 줄여야 하지만 가격을 올리면 손님이 줄고, 재료비를 줄이면 손님들이 바뀐 음식 맛을 귀신같이 알고 떨어져 나간다는 푸념이었다.

    그에게 ‘팁’을 준 손님도 잊히지 않는다. 2년 전 한약방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중년여성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횡단보도를 피해 차를 세우자 중년여성은 “몸도 불편한데 사람을 걷게 한다”며 차에 타자마자 짜증을 냈다. 그녀는 택시 기사 자격증에 붙은 사진을 보고 “국회의원 이병석 하고 닮았네” 하고 혼잣말을 하다 실제로 이 의원임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남편이 무뚝뚝하고 거친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이 의원은 얼결에 부부 문제 카운슬러가 돼 상담을 해주게 됐고, 얘기가 길어지자 목적지를 지나 한 바퀴 더 돈 다음 손님을 내려줬다. 기분이 좋아진 중년여성은 1만원을 주면서 “잔돈은 팁”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택시를 몬 이래 처음으로 5000원이 좀 넘는 돈을 팁으로 받았다.

    “국회의원은 늘 팁을 주는 처지인데, 오히려 받게 되니까 기분이 묘합디다. 팁은 흔히 상대방의 감정에 상관없이 우월한 기분으로 선심 쓰듯 주는데, 그 손님처럼 마음에서 우러난 정성을 담아주면 서로 기분 좋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이렇듯 마음에서 우러나는 팁 문화가 널리 퍼지면 좋겠어요.”

    그때 받은 1만원은 ‘기분 좋게’ 개인후원금으로 영수증 처리했다고 한다.

    “정치에 관심 없다, 경제나 살려라”

    정오경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해병대에 입대하는 청년 두 명을 태웠다. 북구에서 남구를 가로질러 해병대본부 앞에서 손님을 내려준 이 의원은 “우리 아들이 둘 다 해병대 출신인데 입대할 때 내가 바빠서 못 가고 아내가 홀로 배웅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펑펑 우는 아내를 보며 미안했는데, 해병대에 입대하는 청년을 태워주고 오니 새삼 그때 생각이 난다”고 했다.

    제주도에서 포항까지 왔다는 두 청년에게 이 의원이 “이명박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 청년이 “이번에 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그러자 다른 청년은 “난 이명박이 싫다”고 잘라 말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예민해져 있을 때 병역 의혹이 불거져 이 후보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는 것. 이명박 후보의 병역 의혹은 나중에 ‘입소 후 기관지확장증으로 의병 퇴소’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청년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 듯했다.

    오후 1시50분경 죽도시장 부근에서 쏜살같이 달려가는 이 의원의 차를 미처 따라잡지 못하고 놓쳤다. 비서관이 여러 차례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일행은 “의원님이 점심도 안 드실 모양이다. 우리끼리 밥이나 먹자”며 시장 근처 곰탕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비서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왜 제대로 안 따라오냐”는 고함소리에 놀라 황급히 식당을 나와 차에 올랐다. 죽도초등학교 앞에서 다시 만난 이 의원은 “그 사이 두 건이나 했다”며 흐뭇해했다.

    이날 하루 이 의원은 27명(유아 2명 포함)의 손님을 태웠다. 직업군인, 대기업 회사원, 노점상 할머니, 태국에서 시집온 주부, 군 입대자, 중·고등학생, 간호사, 주부 등으로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손님들의 관심사는 많이 변해 있었다.

    “5, 6년 전만 해도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기사식당이나 시장통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면 열을 올리며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언쟁을 벌였다. 그런데 갈수록 사람들이 정치를 멀리하고 있다. 요즘은 ‘일자리를 만들어달라’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가 거의 전부다. 정치에 절망한 것 같아 정치인으로서 자괴심을 갖는다. 사람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인데 공동체에서 정치의 비중이 자꾸 밀려나고 있어 안타깝다.”

    이날 두 번째 손님인 젊은 회사원도 정치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모 대기업 계열사에 근무한다는 그는 이 의원이 이명박 후보 얘기를 꺼내자 “정치에는 관심 없다. 관심 기울일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말을 잘랐다.

    與民同樂

    대부분의 손님은 택시 기사 자격증 사진과 이 의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놀라움과 반가움을 드러냈다. 현역 의원이 택시 운전을 하는 것에 ‘뚱딴지같다’고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격려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이 모는 택시 뒷좌석에 당당하게 앉아 고객으로 예우받을 때 사람들은 내가 국회의원을 뽑아준 주인이구나 하고 실감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걸 볼 때마다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는 초심(初心)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했다.

    “정치권 등 일부에서 ‘쇼’라며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설사 쇼라고 해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두세 번만 해보면 서민 삶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 왜 필요한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오후 4시 교대시간을 앞두고 마지막 손님을 내려준 이 의원은 택시회사가 지정한 충전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웠다. 바로 옆 세차장에서 자동세차를 끝내고 차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들고는 “교대하는 뒷사람을 위해 가스도 채워야 하고 깨끗이 세차도 해야 한다”며 꼼꼼하게 물기를 닦았다. 이 의원의 차가 회사로 들어서자 교대근무를 기다리던 기사 몇 명이 다가왔다. 모두들 사납금을 채웠는지 궁금해했다.

    이 의원이 12시간 동안 택시를 몰고 달린 거리는 147㎞. 사납금 정산창구에서 기록표에 사인을 한 뒤 손에 남은 돈은 1만3000원이었다. 이 의원은 “오늘까지 12번 택시를 몰았는데 사납금을 채우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흥분한 표정이었다. 기사들은 “영업 잘하셨네. 나도 오늘 사납금을 채울 수 있으려나?” 하며 부러움 반, 걱정 반의 얼굴로 각자의 택시에 올랐다.

    이 의원은 “내 정치 모토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다. 하루 종일 운전하다 보면 허리와 다리가 아프고 사람들 고충을 듣느라 마음이 무겁지만 소박한 정을 느낄 때도 많다. 국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결국 점심을 쫄쫄 굶은 우리 일행은 서울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며 서둘러 택시회사를 빠져나가는 이 의원을 배웅하고 오후 5시가 넘어 늦은 점심을 먹으러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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