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호

기아차 쾌속질주 비결은?

까탈진 임원도 디자인에 토 달지 못했다

  • 장진택| 자동차 칼럼니스트 thetrend@naver.com |

    입력2010-07-29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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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아차가 요즘 잘나간다. 현대차보다 더 잘 팔린다.
    • 하지만 ‘디자인 기아, 성공’이란 타이틀은 아직 이르다. ‘디자인 기아, 매끄럽게 출발’이라면 몰라도.
    기아차  쾌속질주 비결은?

    절제미와 균형감이 돋보이는 K7.(왼쪽) 기아차의 중형 세단 K5.(오른쪽)

    2년 전 일이다. 한국에 잠깐 들른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책임자, 피터 슈라이어(기아차 디자인총괄 부사장인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디자인연구소에 주로 머무른다)를 만나러 경기 의왕시에 갔다. 그날 예고에 없던 폭우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쏟아져 내렸다. 온몸이 흠뻑 젖어서 몹시 짜증이 났다. 그런 와중에 슈라이어가 약속시간보다 14분이나 늦게 나타나서 로또 맞힌 사람처럼 방긋 웃었다. 검은색 모하비에서 황급히 내리던 그에게 한마디했다.

    “(오늘 같은 날씨에 늦게 나타난 당신에겐 전혀 내키지 않는 말이지만) 무슨 좋은 일 있나?”

    “그럼, 좋고말고. 디자인 품평을 했는데, 아주 잘 나왔지.”

    “무슨 차를 품평했기에?”

    “하하, 노코멘트. 2년만 기다리면 당신도 감탄할 거야.”



    K5, 쏘나타를 잡아먹다?

    확신에 가득 찬 슈라이어의 눈빛을 기억하면서, 정확하게 2년을 기다렸다. 그랬더니 정말 ‘끝내주는’ 차가 나왔다. 자동차 판매 ‘전교 1등’을 독차지하던 쏘나타를 단숨에 누른 K5 말이다. 지난 6월부터 K5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다. 6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1만673대가 팔렸다. 그 뒤를 9957대가 팔린 YF쏘나타가 머쓱하게 따르고 있다. 매월 1만대 넘게 팔리던 쏘나타가 K5가 나오자마자 1만대 밑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2위로 밀린 것이다.

    아시다시피, 쏘나타와 K5는 거의 비슷한 차다. 같은 골격에서 출발했고, 엔진도 유사하다. 변속기도 같은 걸 쓰면서, 차체 크기도 비슷하고, 심지어 연비와 최고출력까지 똑같다. 그래서 ‘다른 건 디자인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고, 2년 전 슈라이어가 확신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K5의 디자인에 감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기아차가 기세를 올린 건 K5가 처음은 아니다. 맏형인 K7이 판매량에서 국가대표 대형차인 그랜저를 4개월 연속 앞서고 있으며, 6월에는 그랜저보다 두 배 넘게 팔렸다. 스포티지R도 투싼ix보다 많이 팔렸고, 쏘렌토R도 싼타페보다 잘나간다.

    기아는 참으로 오랫동안 오르지 못하던 ‘판매왕’ 자리를 꿰찼다. 기아차는 6월에 2만9716대를 팔았다. 현대차보다 4000여 대 많은 숫자다.

    기아차가 출시한 ‘야심작’들은 현대차 경쟁모델과 골격, 엔진, 변속기 등이 거의 같다. K5가 쏘나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K7은 그랜저를, 스포티지R은 투싼ix를, 쏘렌토R은 싼타페를 기본으로 했으나 ‘디자인을 확 바꾼’ 차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기아차의 승리가 아니라 ‘디자인 기아’의 승리라고.

    잠시, 30여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기아차는 쿨(cool)한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회사였다. 독자적인 디자인이란 게 없었다. 일본 디자인을 들여와 팔거나 유럽차를 조립해 생산했다. 정부가 단행한 공업합리화 조치 탓에 1981년부터 한동안 승용차를 만들지도 못했다. 트럭과 버스만 만드는 회사가 된 것이다. 기아차는 예쁘고 멋진 디자인의 자동차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튼튼하고 질긴 운송수단 제조업체였다.

    기아차  쾌속질주 비결은?

    페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 담당 총괄부사장.

    타이탄, 복사라는 이름의 트럭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연탄을 싣고 올라가는 광경을 기억하는가. “봉고 덕분에 다 모였구나!”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다. ‘기술의 기아’라는 타이틀을 가진 적은 있으나 ‘디자인 기아’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당시 디자이너들의 임무는 양산화에 집중돼 있었고, 창의성은 데코레이션 테이프나 엠블렘을 제외한 곳에선 발휘되지 못했다.

    유럽 스타일의 간결한 해치백, 프라이드가 나오고, 최초의 독자모델인 세피아를 만들긴 했지만 기아차의 디자인은 여전히 눈길을 끌지 못했다. 당시 기아차 디자이너이던 선배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동차 1대를 디자인할 수 있는 공간이 겨우 있고, 디자이너들이 앞 다퉈 클레이(카 디자이너들이 쓰는 공업용 찰흙) 모델을 깎아놓긴 했는데, 그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넋 놓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급할 때마다 미국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국제전화를 걸어야 했다.” 디자이너들이 국제전화로 디자인을 배웠다는 얘기다.

    누구도 ‘토 달지’ 못했다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기아차는 현대차그룹으로 흡수됐다. 디자인연구소엔 찬바람이 불었다. 누구는 들어오고, 누구는 나가고, 누구는 남았다. 현대차 디자이너와 기아차 디자이너가 한데 섞여서 디자인했고, 디자인의 재료인 차체, 엔진, 변속기 등을 나눠 썼다. 기아차는 현대차그룹에서 서자(庶子) 대접을 받았다. 그 결과 기아차만의 색깔, 기아차만의 차별점이 사라졌다. ‘기아만의 무엇’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회사 안팎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즈음 기아차에서 일하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디자인 기아’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곤 아우디-폴크스바겐그룹 디자인 책임자이던 슈라이어를 덜컥 영입했다.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슈라이어는 아우디TT, 폴크스바겐 5세대 골프, 뉴 비틀,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등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을 명차를 디자인한 명장이다. ‘정의선의 선택’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다. ‘디자인 사대주의’ ‘외화 낭비’ 같은 말이 업계에 나돌았고 ‘그렇고 그런 명사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따라붙었다.

    “디자인실이 군대 같다”

    슈라이어는 기아차의 첫인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 기아차 디자인연구소에 들어갔을 때, 무척 딱딱했다. 군대 같았다.”

    필자도 기아차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맞는 말이다. 현대차, 기아차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군대 갈래, 현대 갈래?”라고 물으면 “군대 가겠다”고 답하겠다는 농담까지 나돌았으니까. 선후배 관계가 필요 이상으로 엄격했다. 위에서 시키면 무조건 해야 했다. 누가 누구의 ‘조인트를 까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디자인을 잘 모르는 경영진의 간섭이 ‘지랄맞아서’ 디자인이 ‘산으로 바다로 헤매는 일’이 많았다. 원가 절감을 담당하는 임원의 입김이 셀 때면 저렴한 소재를 써야 했고, 형태를 변경해야 했다. 언론에서는 슈라이어가 이러한 분위기를 일신한 것처럼 기사를 쓰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그것보다는 ‘어떤 임원도 슈라이어의 디자인에 토를 달지 못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일전에 만난 기아차 전직 임원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서울대 들어가던 시절에 미대에서 디자인을 배웠다는 건 정말 공부를 못했다는 거지. 그림을 잘 그리는지는 몰라도, 그런 사람이 자동차를 디자인한다고? 그러다 망하면 누가 책임지라고? 우리도 디자인에 간섭하기 싫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한마디로 ‘무식한’ 사람에게 회사의 미래를 맡길 수 없어 디자인에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우디TT, 폴크스바겐 골프, 뉴 비틀,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를 디자인한 외국인 디자이너가 들어왔다. 이 같은 명차와 비슷한 수준의 자동차 한 대만 디자인해도 입이 딱 벌어질 판 아니었겠는가. 현대차, 기아차 임원들이 명차 종합선물세트를 디자인한 세계적 명장과 신차 제작과 관련해 회의를 함께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슈라이어는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해 온 디자이너였다. 어느 누가 토를 달겠나? 그러지 않아도 임원 인사가 ‘지랄맞은’ 현대·기아차에서.

    기아차  쾌속질주 비결은?

    기아차 K7 스티어링 휠 열선(왼쪽). 기아차 중형 세단 K5의 실내 렌더링 이미지. 계기판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스포티한 느낌을 준 것이 특징이다.

    슈라이어와 함께 일하는 기아차 디자이너들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피 대리’라는 말을 쓴다. 별말 없이 묵묵히 스케치하고, 모델을 다듬고,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대리급’이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면서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전혀 ‘부사장스럽지’ 않다.” 슈라이어의 이런 태도가 사무실의 분위기를 바꿨다. 차장, 부장, 이사 할 것 없이 종이 위에 자동차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엔 과장만 돼도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시키는 사람이었다. 사원이나 대리가 명령에 따라 뭔가를 그렸다. 학연과 지연이 일에 개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현재 기아차 디자인연구소의 풍경은 다르다. 시키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이 구별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모두 함께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그중 채택된 스케치를 중심으로 일을 진행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나이 어린 리더, 나이 많은 팀원이 나오기도 한다. 외국에서 공부했다고 저절로 리더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지방대 출신이란 이유로 뒷전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슈라이어는 한국 디자이너의 기량에 대해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실력을 갖췄지만 다양한 컬러, 다양한 형식의 자동차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다. 오픈카를 타봐야 더 좋은 오픈카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기아차는 지붕이 열리는 오픈카 출시를 준비 중이다.

    “K시리즈는 단순하게 간다”

    기아차의 너저분한 라인업은 슈라이어에겐 정리해고 대상이었다. 옛 기아차 시절 디자인한 미니밴, 현대차로부터 들여온 중형 세단, 유럽 클래식 스타일을 추종한 대형 세단, 모던한 직선으로 디자인한 SUV에 이르기까지 ‘KIA’라는 생산자 마크만 똑같을 뿐 한 회사에서 만들었다고 보기엔 일관성이 없었다. 자동차를 새로 디자인할 때마다 콘셉트를 다시 잡고, 리서치를 보태는 등 새로운 것을 추종한 데 따른 부작용이었다.

    슈라이어는 그중에서도 오피러스를 콕 집어서 “오피러스는 다른 기아차들과는 영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기아’라는 브랜드 네임에 대해선 이런 말을 했다.

    “기아는 3개의 영문자로 구성된 매우 단순한 이름을 갖고 있다.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 중 가장 단순한 이름일 것이다. 어감도 좋다. 강하고 빠르다는 느낌, 직선적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지금 와서 브랜드명을 새로 찾더라도 이 같은 이름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동차 회사로서는 최적의 이름이 아닌가 싶다. 동양스럽지 않다는 점에서도 좋다. 타원에 K, I, A가 들어간 엠블렘도 단순하고 명확하면서 강렬해 보인다. ‘키아(KIA)’라는 말이 주는 느낌을 직관적으로 잘 살렸다.”

    슈라이어는 엠블렘이 주는 느낌대로 디자인 콘셉트를 ‘직선의 단순화’로 정의했다. ‘키아’라는 단어의 발음, 어감에서 풍기는 추상화 같은 느낌을 자동차 디자인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키아’가 만든 자동차는 누가 보더라도 ‘키아스럽게’ 생길 의무가 있다.

    그렇게 포르테와 쏘울이 탄생했고, 쏘렌토R, 스포티지R, K7, K5가 나왔다. 그리고 K9이란 이름의 대형차가 라인업에 추가된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전면에 ‘호랑이 그릴’을 달고 있으며 직선으로 단순화한 몸매를 뽐낸다. 호랑이 그릴이란 표현은 슈라이어가 만든 게 아니다. 프로야구팀 기아 타이거즈를 염두에 뒀거나, 한국의 상징동물을 형상화한 것도 아니다. 다른 자동차들과 구분되는 기아만의 직선적이며 단순한 얼굴을 강조하고자 심사숙고 끝에 도입한 디자인에 그저 호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패밀리 룩은 숙성 중

    기아차  쾌속질주 비결은?
    슈라이어가 디자인한 호랑이 그릴은 SUV인 모하비를 제외한 모든 기아차에 들어가 있다. 모하비는 슈라이어가 기아차에서 일하게 된 뒤 출시된 모델이지만, 디자인 과정에 그가 깊숙이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출시된 포르테와 쏘울도 슈라이어가 마무리했을 뿐이지 그가 역량을 쏟아 부은 디자인은 아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K7부터가 슈라이어가 디자인 전 과정에 관여한 자동차다.

    일정 시간이 흐르면 기아차가 생산하는 차들은 일관된 모습으로 정리될 것이다. 지금은 호랑이 그릴이 ‘어울리는 선수’와 ‘어색한 선수’가 혼재돼 있다.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기아차의 일원임을 알아챌 수 있는 DNA가 기아의 모든 라인업을 관통할 것이다.

    현재까지 감지된 ‘디자인 기아’의 패밀리 룩은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역사다리꼴의 네모난 라디에이터에 정수리와 턱이 쫑긋 올라온 호랑이 그릴, 유리창 뒷부분이 꺾여 올라가면서 속도감을 주는 측면 디자인이 그것이다. K5와 K7의 측면 유리창을 잘 살펴보시라.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엉덩이에 달린 램프도 안쪽 밑 부분이 잘려 올라가면서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또한 야간에 점등되는 계기반을 붉은색 조명으로 통일해 실내 디자인도 같은 느낌을 줄 예정이라고 한다.

    자동차회사가 통일된 디자인을 추구하는 건 한국에서도 기아차가 처음은 아니다. 현대차, 쌍용차, 르노삼성차, GM대우차 모두 이런 식의 통합을 약하게나마 시도해왔다. 기아차도 마찬가지였다. 옛 대우차는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를 숨 가쁘게 출시할 때 이 세 차종에 모두 3분할 그릴을 앉혔다.

    하지만 ‘디자인 기아’가 가는 길은 다르다. 다른 회사들이 자동차의 얼굴만 비슷하게 꾸민 데 반해, 기아차는 ‘직선의 단순화’라는 말이 상징하듯 자동차 전체의 이미지를 통일시키고 있다. 엠블렘의 어감에서 ‘단순하고 직선적인’ 디자인이 나왔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점, ‘디자인 기아’라는 슬로건 아래 전 직원이 제품의 이미지를 바꿔나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기아차의 품질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얼굴만 같다고 패밀리 룩?

    업계에선 이런 말도 나돈다. 기아차가 영입한 유럽 디자이너가 유럽에서 하던 방식대로 자동차의 얼굴을 모두 똑같이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기아차가 주제도 모르고 유럽 회사들을 흉내 낸다는 비아냥거림이다. “그렇지 않아도 차종 수가 적은 한국에서 뭣 하러 똑같은 차를 만드는가?”라는 불만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에서 기아차의 임무는 유럽 시장 공략이다. 이를 위해 유럽에서 잘나가는 디자이너를 영입했고, 유럽인 취향의 디자인이 기아차에 스며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럽식 패밀리 룩과 K7, K5처럼 영문과 숫자를 조합한 유럽식 이름 짓기가 수혈됐다. 기아차는 세계적 회사다. 글로벌 기업이 세계적 트렌드에 귀 기울이는 건 당연하다.

    패밀리 룩이 있고, 없고는 ‘그냥 멋있는 차’와 ‘기아스러우면서 멋있는 차’의 차이다. 고로, ‘그냥 멋있는 차’가 아닌 ‘기아스러우면서 멋있는 차’를 만들어내려면 ‘기아스러움’이 빛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밀리 룩의 목적은 얼굴을 똑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아스러움를 바탕으로 좋은 이미지를 차곡차곡 보태는 것이라 하겠다. 호랑이 그릴이나 붉은 실내등, 타원형의 기아 마크를 보면 저절로 미소 짓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패밀리 룩이 성공하려면 앞으로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한 차종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모두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패밀리 룩의 약점이다.

    자동차를 잘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다음과 같은 우려가 나온다. “패밀리 룩이라는 건 지금의 기아차처럼 얼굴만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패밀리 룩은 인위적으로, 단시간에 구축되는 게 아니다. 차곡차곡 이미지를 쌓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기아차의 패밀리 룩에서는 인스턴트식품 냄새가 난다.” 기아차가 최근 눈에 띄게 좋아지긴 했지만, 기아차의 패밀리 룩이 숙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디자인 기아, 성공’이라는 타이틀은 아직 이르다. ‘디자인 기아, 매끄럽게 출발’이라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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