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석의 경력은 다양하다. 연구위원, 경제관료, 교수, 외교관, 연구원장, 대학총장 등 화려한 자리를 두루 거쳤다. 운수가 좋아서 양지로만 돌았다기보다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끊임없이 스카우트를 당한 셈이다. 그는 지인들에게 “나처럼 직장을 열 군데 넘게 옮긴 사람도 드물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면 ‘일에 대한 집념’으로 요약된다. 프로복서 타이슨처럼 목이 굵어 외모부터 다부지게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시절에 숱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힘들다”는 말을 내뱉지 않아 동료들 사이에서는 ‘워커홀릭에 걸린 사람’으로 통했다.
조세연구원장, KDI 원장 때도 업무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연구위원들에 대한 호불호가 뚜렷한 편이었는데 그 잣대는 오로지 업무 성과였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 상대적으로 수월성이 떨어지는 사람에겐 냉랭했다. 그의 취미가 테니스인 것을 알고 어느 간부가 KDI에 테니스장을 설치하자고 건의했다가 “일하러 나오는 곳에 웬 테니스장이냐”는 질책을 들었다.
김 수석의 원적은 함경북도 함흥이다. 한림대 설립자의 고향도 이북인 인연으로 한림대 총장으로 영입됐다. 그는 춘천에 자리 잡은 한림대를 명문 학교로 키우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보직교수 회의를 오전 8시에 소집했더니 일부 교수들이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일어나기 어려우니 오전 9시로 늦추자”고 건의했다. 김 총장은 “그 시간에 일어나기 어렵다면 밤을 꼬박 새워 회의에 나오라”고 맞받았다고 한다.
그는 나라 경제 전체를 보는 경험을 오래 쌓았고 이론 무장도 했다. 그의 경제철학 키워드는 개방, 자율, 경쟁이다. 이른바 ‘MB노믹스’와 결이 같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과는 직접 접촉할 인연이 거의 없었는데도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것은 그의 경륜이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빼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고건 전 총리가 대권 꿈을 꾸며 준비할 때 경제정책 구상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는 말을 논리정연하게 한다. 목소리도 낭랑한 편이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측면에서 대통령과 경제장관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적임자로 보인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준비사무소장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와인에 대한 감식 능력이 소믈리에 수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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