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케이뱅크, 국회 덕에 겨우 앞길 터
표면상의 대주주는 KT 자회사 BC카드
여론 의식한 ‘우회전략’으로 케뱅 지배할 듯
카카오뱅크, 꾸준한 이슈몰이로 앞서나가
압도적 자산 규모 시중은행도 디지털 전략 진화
회원 1700만 명 발판 ‘토스뱅크’, 내년 출범
서울 종로구 케이뱅크 사옥. [뉴스1]
통상 금융 당국 수장이 공식 석상에서 ‘금융사를 돕겠다’는 언급을 한다면 시장에서는 난리가 났을 터다.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사의 경우 실제 경영이 어렵더라도 정부는 최대한 비밀리에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소비자를 불안하게 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벌어지는 등 상황만 더욱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케이뱅크를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는데도 시장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소비자가 케이뱅크를 강하게 신뢰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케이뱅크가 어려운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어서 은 위원장의 발언에 특별히 의미를 두는 이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은 위원장의 발언 자체가 다소 원론적인 수준이긴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금융 당국 수장을 비롯한 대부분이 위기를 인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케이뱅크 처지에서는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영난 케이뱅크의 기나긴 ‘정상화’”
케이뱅크는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카카오뱅크나 조만간 출범할 토스뱅크보다 먼저 금융업계에 발을 들인 ‘맏형’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로 선정된 시점은 카카오뱅크와 같지만, 1호가 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던 케이뱅크다.그런데 케이뱅크는 자본금 부족으로 신규 대출을 중단하는 등 개점휴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대주주 KT의 경우 지분 일부를 자회사인 BC카드에 모두 넘기면서 명목상으로는 대주주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도대체 케이뱅크는 어쩌다가 이런 상황까지 내몰리게 됐을까?
케이뱅크가 출범 후 끊임없이 경영난을 겪어온 원인으로 거론되는 것 중 하나는 제도 정비가 예상보다 늦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국회가 지난 4월 29일에야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개정안의 핵심은 인터넷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요건을 완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에는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이 있으면 대주주가 될 수 없었지만, 개정안에서는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행위 전력’이 있을 때만 대주주가 될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로써 KT가 케이뱅크의 실질적 대주주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 2017년 출범한 지 3년여 만이다.
케이뱅크 설립을 주도한 KT가 대주주가 되는 길이 열리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산업자본이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닻을 올렸다. 이에 카카오뱅크는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케이뱅크는 우리은행을 최대 주주로 내세워 사업을 시작했다. 일단 출범부터 하고 국회에 법 개정을 요구해 ‘정상화’하는 방식으로 첫발을 디딘 셈이다.
이후 찬반 논란을 거듭하다 이번 정권 들어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참여를 일부 허용키로 하면서 원래 ‘주인들’이 대주주가 될 길이 열렸다. 카카오는 지난해 11월 출범 2년여 만에 실제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반면 케이뱅크는 이때도 ‘정상화’에 실패했다. KT가 과거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탓에 대주주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케이뱅크에 앞길을 터주기 위해 만든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 당국도 관련 법 정비도 안 된 상황에서 서둘러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킨 점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입장이다. 은성수 위원장이 국회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발언한 까닭도 사실 이런 ‘원죄 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KT 역시 금융 당국과 국회만 믿고 사업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법 제정이 늦어질 경우 자본 확충은 어떤 방식으로 할지 등에 대한 철저한 계획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KT “케이뱅크 혁신 지원”
4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일 부개정법률안이 재적 290인, 재석 209인, 찬성 163인, 반대 23인, 기권 23 인으로 가결됐다.
이제 KT는 우여곡절 끝에 대주주가 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케이뱅크의 대주주는 KT가 아닌 KT의 자회사인 BC카드가 맡기로 했다. KT는 개정안이 통과한 직후 “KT가 보유한 케이뱅크 지분 10%를 자회사인 BC카드에 모두 넘기고, BC카드가 케이뱅크 대주주로서 자본금을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 KT는 국회에서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자회사인 BC카드를 케이뱅크의 대주주로 내세우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혹여 또다시 국회에서 개정안이 가결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다. 이후 개정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이미 이런 방안을 진행해 온 데다가 한시가 급한 KT로서는 이를 그대로 추진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은 ‘KT 특혜법’이라는 비판 속에서 가결됐다. 시장에서는 KT가 케이뱅크의 대주주가 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우회 전략’을 유지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다만 BC카드가 대주주가 되더라도 KT가 케이뱅크를 실제로 운영하는 역할은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KT 관계자는 “IT에 강한 BC카드와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가 충분히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라면서 “KT는 BC카드의 대주주인 만큼 지속해 케이뱅크의 혁신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그간 케이뱅크를 괴롭히던 자본 확충 문제는 증자 등을 통해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케이뱅크의 계획대로라면 자본금이 기존 5050억 원가량에서 1조100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중단된 신용대출 상품도 조만간 다시 취급할 계획이다.
케이뱅크의 앞길은 어떨까. 전망은 엇갈린다. 우선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케이뱅크는 출범한 지 벌써 3년을 넘어섰다. 케이뱅크가 국회에서 관련 법 통과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소비자들은 이미 경쟁사인 카카오뱅크로 몰려갔다. 카카오뱅크가 시장을 선점한 탓에 케이뱅크가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카카오뱅크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입자 수가 1150만 명을 넘어섰다. 가입자가 120만 명에 불과한 케이뱅크의 10배 수준이다.
금융업에는 오랜 기간 점유율이 급변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다. 한 번 고객이 되면 꾸준히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 2017년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했을 때만큼은 예외였다. 예상외로 많은 소비자가 ‘새로운 은행’에 관심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인터넷은행도 똑같은 은행 아니냐’며 심드렁하던 기존 시중은행들도 부랴부랴 자사 애플리케이션을 개선하는 등 변신을 꾀했다.
이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이미 한 차례 은행권을 강타한 뒤인데, 케이뱅크가 다시 판을 흔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이 시장을 뒤흔들면서 시중 은행들도 고객을 뺏기지 않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왔다”면서 “이에 따라 은행 앱이 대체적으로 기존보다 더욱 사용하기 쉽게 바뀌는 등 변화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 은행들도 이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3년 전과 지금은 시장 환경이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의미다.
카뱅은 신상품에 사업 다각화까지
경쟁사인 카카오뱅크는 지속해 흥미로운 상품을 쏟아내며 꾸준히 이슈를 만들고 있다. 26주 적금이나 모임통장이 대표적이다. 26주 적금이란 매주 1000원, 5000원, 1만 원씩 증액되는 금액을 납입하는 적금으로 소비자에게 성취감과 함께 재미를 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모임통장은 모임 멤버들을 초대해 해당 통장의 입출금 내역 등을 볼 수 있도록 한 게 특징이다.아울러 카카오뱅크는 최근 ‘다음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4월 말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열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먼저 기업공개(IPO)를 통해 실탄을 확보한 뒤 사업 확장에 활용할 계획이다. 아울러 오는 2021년에는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서비스를 더욱 고도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또 이날 신용카드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국내 인터넷은행 중 카카오뱅크는 확실히 한발 앞서나가는 분위기다.
반면 인터넷은행의 성패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때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우선 카카오가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는 했지만 자산 규모만 놓고 보면 20조 원을 이제 갓 넘은 수준으로, 300조 원을 훌쩍 넘는 시중은행에 비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점이 지적된다. 인터넷은행 중에서는 카카오뱅크가 단연 앞서가지만 전체 시장을 놓고 봤을 때는 카카오가 은행업계를 안정적으로 장악한 수준이 된 건 아니라는 의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카카오뱅크가 지난 2~3년간 빠르게 성장하면서 몸집을 불렸지만, 짧은 기간에 이룬 성과인 만큼 금세 무너질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업계에서는 내년 출범을 준비하는 제3 인터넷은행인 토스뱅크가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핀테크 기업으로 꼽히는 토스는 지난 2015년 설립됐지만, 이미 회원을 1700만 명 보유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3사의 ‘시너지 효과’ 꾀해야
케이뱅크는 인터넷은행 시장에서 카카오뱅크와 경쟁하고 있다. 2021년에는 회 원 1700만 명을 보유한 토스가 제3의 인터넷은행을 출범시킨다.
케이뱅크는 일단 자본 확충 등을 통해 신용대출 등 영업을 정상화한 뒤 BC카드와 시너지 창출에 집중하며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BC카드의 경우 전업 카드사와는 다르게 결제 프로세싱 사업에 주력해 왔기 때문에 정보통신 기술력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IT와 금융이 결합한 인터넷은행으로서 차별화한 경쟁력을 더욱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