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 명예회장 헨리 포드와 견줄 만한 업적”
20년 전 ‘싼 게 비지떡이던’ 한국 자동차
‘품질 경영’으로 고급화 성공한 정 명예회장
이유 있는 뚝심의 DNA, 수소차로 이어진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7월 22일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 Hall of Fame)’에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 벤츠 창립자, ‘헨리 포드’ 포드 창립자도 헌액된 자동차 명예의 전당은 이른바 ‘자동차 영웅관’으로 불린다. 2001년 정 명예회장(당시 현대·기아차회장)이 기아차 인수 등으로 자동차 명예의 전당으로부터 업계 노벨상인 ‘올해의 자동차산업 공헌상’을 받은 지 20년 만이다.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산업 전설적 인물”
7월 22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2020~2021 자동차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대리 수상자로 참석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자동차 명예의 전당 측은 지난해 2월 정 명예회장을 “현대자동차그룹을 성공의 반열에 올린 글로벌 업계의 리더”라며 “그의 수많은 성과는 자동차 산업의 전설적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고 평했다.
이날 헌액식에는 정 명예회장을 대신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수상자로 참석했다.이날 헌액 기념 연설을 대신한 정 회장은 “명예회장께서는 세계 자동차산업에서 최고 권위를 가지는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을 영광스러워하셨다”면서 “헌액은 현대차그룹의 성장과 함께 한 전 세계 직원, 딜러뿐 아니라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기아자동차(이하 기아)를 신뢰해 준 고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정 명예회장의 소감을 전했다. 또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를 사랑하는 분이셨다”면서 “지금도 그의 철학과 통찰은 현대차그룹이 더 위대한 기업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라고 덧붙였다.
정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재벌 2세였지만 창업 경영자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2000년 현대그룹 계열 분리 이후 글로벌 자동차 판매 순위(현대차, 기아), 국내 재계 2위의 현대차그룹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2000년 당시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 순위는 10위권 남짓. 조사기관에 따라 10위권 바깥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2019년부터는 판매 순위 4~5위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거둔 성공은 현대차그룹의 국내 위상도 다르게 만들었다. 2000년 계열 분리 직후 현대차그룹은 계열사 10개 자산 34조 원을 보유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2019년에는 계열사 54개, 자산 234조 원의 재계 2위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현대차그룹이 항상 승승장구해 온 것은 아니다. 계열 분리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제조한 자동차는 세계시장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특히 자동차산업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고장이 잦은 싸구려 차’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2000년 세계 37개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한 품질 조사에서 현대차는 34위, 기아는 말석인 37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의 위상은 완전히 다르다. 현대차그룹의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최고 권위의 시장조사 업체 JD파워(J.D.POWER) 품질 조사에서 매년 상위권의 성적을 거둔다. JD파워는 2021년 자동차 브랜드 충성도 조사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7위와 6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는 JD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4년 연속 고급차 브랜드 1위를 달성했다.
박리다매에서 품질 경쟁으로 대전환
획기적 품질 개선의 배경에는 정 명예회장이 있었다. 그는 ‘품질 제일주의’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을 이끌어왔다. 정 명예회장은 1999년 현대차 회장으로 취임해 처음 나간 미국 출장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품질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현대차가 대량 리콜 요청을 받게 됐기 때문. 국내에서는 최고의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의 수치였다.정 명예회장은 귀국하자마자 “신차 출시 일정을 미루더라도 부실한 생산라인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품질에 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동시에 경기 화성시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한 달에 두 번씩 ‘품질회의’를 열어 현대차그룹 전 차종의 품질을 점검하고 관리했다.
점차 품질에 자신감이 생기자 정 명예회장은 미국 시장에서 ‘10년 10만 마일 워런티(품질보증)’ 공약을 발표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워런티는 ‘2년, 2만 4000마일’이 일반적이었다. 도요타나 혼다 등 일본 완성차 업체는 “미친 전략”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고객이 믿고 탈 수 있는 차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받아쳤다.
품질 제일주의는 미국에서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2016년 JD파워 신차품질조사(불만건수로 결과 산정)에서 전체 33개 완성차 브랜드 가운데 기아는 1위(83점), 현대차는 3위(92점)에 올랐다.
그룹 명운 바꾼 뚝심, 수소차에서도 빛 보나
현대차의 미래 먹거리인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이하 수소차) 사업도 정 명예회장의 혜안과 뚝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일찍이 수소연료전지의 가능성을 파악한 그는 취임 초창기부터 수소차 개발에 나섰다. 2018년에는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 ‘넥소’ 양산에 성공하기도 했다.반면 201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수소차 손절에 나섰다. 수소차보다 단가가 싸고 충전소가 많은 전기차로 방향을 바꾼 것. 2020년 4월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GM, 혼다, 아우디 등의 기업이 수소차 개발을 보류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과거 정 명예회장이 품질 경영을 고집한 것처럼 뚝심 있게 수소차를 개발·판매했다.
정 명예회장의 혜안 덕분일까. 최근 다시 수소차로 자동차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수소연료전지가 차세대 탄소중립 발전 수단으로 각광받으며 기술개발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다. 수소차에 손을 뗐던 업체들도 하나 둘 다시 수소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5월 13일 벤츠의 모회사인 다임러는 볼보와 합작회사 ‘셀센트릭(Cellcentric)’을 통해 2025년부터 수소연료전지 양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수소차 업계의 선두 주자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수소차 업계 시장점유율은 51.7%를 차지했다. 정 명예회장의 ‘품질 경영’에 이은 ‘수소 혁명’이 현대차그룹을 세계 1위 수소차 업체의 자리에 앉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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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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