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가를 꿈꾸던 한 청년이 ‘까대기(택배 상하차)’에 발을 들였다. 그림 그리는 데 전념할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동트기 전부터 짐을 나르기 시작해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그래도 돈이 모이지 않았다. “1년 바짝 한 뒤 그만두고 만화만 그리자”던 계획은 계속 미뤄졌지만,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6년이 흐르는 사이, 고된 노동이 글이 되고 그림이 됐다. 땀냄새 흠뻑 밴 만화 ‘까대기’를 통해 택배산업의 속살을 공개한 작가 이종철을 만났다.
[박해윤 기자]
이 단어는 우리말 ‘가대기’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창고나 부두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같은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을 가대기라고 한다. 가대기든 까대기든,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는 노동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종철 작가는 그 일을 6년간 했다. 처음엔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경북 포항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 졸업 후 만화가의 꿈을 품고 서울에 왔다. 2012년, 그가 스물여덟 살 때의 일이다. 은평구 수색동에 세 들어 살던 대학 선배가 방 한 칸을 내줬다. 집세 일부를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방값, 생활비를 내고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려면 ‘알바’를 해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까대기다. 근무시간이 짧고 보수가 최저임금보다 시간당 1000~2000원가량 많았다. 아침 7시부터 네댓 시간 정도 일하면 한 달에 80만 원쯤은 벌 것 같았다.
“그 외 시간에 만화를 그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집 근처에 까대기 모집 업체가 있어 바로 찾아갔죠.”
이 작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 그때부터 6년간 까대기 일을 하셨다고요.
“작년 여름까지 했으니 그 정도 돼요. 처음엔 이렇게 길게 할 줄 몰랐어요. ‘얼른 만화가로 자리 잡아 생계를 꾸려야지’ 했어요. 집에 오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그림책 학교도 다녔죠.”
지옥의 알바
- 손이 덜덜 떨린 건 일이 힘들어서인가요?“초반에 일이 몸에 익기 전이라 더 그랬을 거예요. 까대기를 ‘지옥의 알바’라고들 하잖아요. 육체적으로 고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긴장을 많이 하게 돼요. 일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도 마칠 무렵이면 녹초가 되죠.”
- 정확히 어떤 일을 하셨나요.
“고객이 보낸 택배는 보통 전국 각지 물류센터에 모여요. 화물차 기사님들이 거기서 물건을 실어다가 각 택배업체 지점에 배달해주죠. 화물차 한 대에 실려 있는 물건이 많게는 1000개가 넘어요. 택배 하면 흔히 떠올리는 갈색 종이상자뿐 아니라 생수, 타이어, 자전거, 냉장고, 어항, 운동기구 등등 별게 다 있어요. 저는 그걸 일일이 바닥에 내리는 일을 했습니다. 6년 동안 5개 업체에서 일했죠. 지점에는 보통 레일이라고 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어요. 까대기가 짐을 트럭에서 내려 송장이 보이도록 그 위에 올려요. 그러면 택배기사님들이 지키고 섰다가 자기 담당 지역으로 온 물건을 골라내요. 공항에서 자기 수화물을 찾아내는 것 같은 방식이죠. 그렇게 골라낸 물건을 각자 트럭에 옮겨 싣고 본격적으로 배송하러 나가는 겁니다.
까대기가 트럭 한 대를 ‘까는’ 데는 보통 40~50분 걸려요. 택배 물량이 많을 때는 숨 돌릴 틈이 없죠. 한 트럭 끝나면 다음 트럭, 또 다음 트럭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요. 택배기사님들은 빨리 물건 챙겨 나가야 하루 배송량을 다 소화할 수 있으니 눈에 불을 켜고 우리 일하는 걸 지켜보고요. 아침 몇 시간 반짝 일하는 건데 왜 까대기 시급이 높은지, 조금만 일해도 곧 알 수 있어요.”
- 육체적으로는 그렇다 하고, 정신적으로는 왜 힘든 건가요?
“사고 위험이 높아서죠. 화물트럭 문을 열면 정말 산더미같이 많은 물건이 빽빽이 쌓여 있어요. 하나라도 잘못 빼면 우르르 무너져버릴 수 있죠. 물건 더미가 쓰러질 때 별다른 소리가 안 나는 거 아세요? 아무 조짐도 없다가 갑자기 쏟아져요. 그게 사람을 덮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 힘을 쓰면서 내내 긴장도 늦추지 못하는 거죠.”
이 작가도 다친 적이 있다. 다행히 짐 더미에 깔린 건 아니다. 바닥에 있는 상자를 가벼운 줄 알고 번쩍 들려다 손목 인대를 다쳤다. 처음엔 별일 아니려니 했는데 통증이 심상치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퉁퉁 붓기까지 했다. 결국 한동안 일을 쉬어야 했다.
- 그렇게 다쳐서 일을 못 나가면 어떻게 되나요?
“돈을 못 벌죠. 치료비를 보상받거나 그런 건 전혀 없어요. 애초에 까대기는 계약서 없이 일하거든요. 철저히 시급제예요. 택배 물량이 적은 날은 짧게, 많은 날은 길게, 일한 시간에 맞춰 돈을 받아요. 일을 못 하면 바로 수입이 끊기죠.”
다치면 끝이다
- 졸지에 일자리 잃고, 치료받느라 오히려 돈은 더 나가고…. 다쳤을 때 많이 속상하셨겠네요.“사실 치료비는 거의 안 들었어요. 병원에 안 갔거든요. 다행히 어떻게 잘 나았고요. 택배 일 하는 분 상당수가 그래요. 택배기사님 대부분이 개인 사장인 건 아시죠? 배송 건당 받는 수수료에서 기름값, 차량 유지비, 전화료, 식대 등등 모든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요. 그러면서 ‘당일 배송’ 같은 택배회사 업무 명령은 또 따라야 하고요. 택배기사가 배송 도중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 다치면? 그건 본인 사정이에요. 그것 때문에 배송을 못 하거나 늦게 하면? 계약 위반이죠. 책임은 다 택배기사에게 돌아가요. 그러니 아파도 아플 수가 없어요.
한번은 제가 까대기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택배기사님 몇 분이 모여 웅성웅성하고 계시더군요.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 보니 한 분이 쌀 포대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해 쓰러지신 거예요. 그분이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데, 다른 택배기사님들은 다 배송을 나가야 하는 처지였어요. 그때가 가을이라 택배 물량이 정말 많았거든요. 당일 배송 약속을 못 지키면 문제가 생기니까, 오래 알아온 동료가 아파도 옆에 있어줄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은 다친 택배기사님을 ‘빠레트’(팔레트·화물 운반판) 위에 눕혀두고 다들 각자 차를 몰고 나가시더라고요. 얼마 지나 구급차가 와서 다친 분을 실어갔고요. 다음 날 출근해보니, 전날 쓰러진 그분이 초췌한 모습으로 또 배송을 하러 나오셨더군요. 여기가 이런 곳이구나. 아니, 사람이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까대기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가진 거라고는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이 악물고 살아가는 곳. 이 작가가 ‘시급제 알바’로 일한 택배 지점은 모두 그런 공간이었다. 처음엔 “곧 떠날 곳”이라 여겨 가벼이 보아 넘긴 삶의 모습들이 언제부턴가 하나하나 그의 눈에 들어와 박혔다. 처음엔 이 작가의 이름조차 묻지 않던 택배기사들도 시간이 흐르며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그들은 남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저 바쁠 뿐이었다. 먹고살자면, 빚 갚고 자식 키우고 병든 어머니 건사하자면, 한시도 쉴 틈 없이 택배 배송에 매달려야 했다. 그걸 서로 알았다. 그래서 누군가 어느 날 불쑥 나타났다 인사조차 없이 사라져버려도 ‘사정이 있겠거니’ 여겼다.
이 작가에 따르면 택배회사 사람들은 종종 연락이 끊겼다. 어제까지 같이 일하던 동료가 오늘 조건이 좋은 택배사로 옮겨가기도 하고, 아예 종적을 감추고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빚에 쫓겼다더라, 이 바닥을 떠났다더라 이런저런 뒷얘기만 떠돌았다. 그런데도 이 작가는 언제부턴가 그 공간에 정이 붙었다. 함께 자판기 커피잔을 기울이고, 배송 중 깨져 사고 처리된 수박 조각을 나눠 먹으며 이 작가는 문득 “이곳에서의 삶을 만화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까대기를 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의 일이다.
당시 그는 전문 ‘글 작가’와 함께 어린이 만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만화업계에서는 글 작가가 스토리를 쓰고, 그림 작가가 그것을 극화하는 창작 방식이 널리 쓰인다. 이 작가도 오전 까대기를 마치고 몸을 좀 추스르고 나면 바로 이 작업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까대기 현장에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 등을 매일매일 기록했다.
마늘아 고추야 나 좀 살려주렴
택배업계에 대한 이 작가의 묘사는 꼼꼼하고 재치 넘친다. 그에 따르면 화물트럭을 채우는 물건은 계절을 경계로 확확 바뀐다. ‘계절의 여왕’ 5월은 전국 각지에서 농산물이 종류별로 올라오는 시기다. 까대기는 이때 “감자야! 양파야! 마늘아! 나 좀 살려주라!” 외치며 짐을 내린다. 6월의 시작을 알리는 농작물은 매실이다. 옥수수와 수박이 뒤를 잇는다.늦가을 낙엽이 질 무렵, 화물트럭을 녹색으로 물들이는 존재가 나타난다. 절인 배추다. 이 작가는 “절인 배추는 한 집에 한 상자만 오는 경우가 드물다. 또 터지기 쉬워 살살 놓아야 한다. 힘이 배로 든다”고 전했다. 절인 배추, 일명 ‘절배’ 물량이 줄어들기 시작할 즈음에는 대망의 김장김치가 트럭을 채우기 시작한다. 김장김치는 보통 비닐로 포장한 뒤 종이상자나 아이스박스에 담아 보낸다. 이때 상자에 김치를 꽉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까대기나 택배기사에게는 무척 괴로운 물건이다. 이 작가는 “배송 중 김치가 발효되면 그 택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된다”고 토로했다. 김장철은 택배업계 노동자들이 가장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시기로 손꼽힌다. 한 번 김장철을 거친 뒤부터 이 작가는 고향 어머니가 김치를 보내겠다고 하면 다급히 이 말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하며 이 작가는 씩 웃었다.
- 겨울이 오면 사정이 좀 나아지나요?
“겨울에는 귤 택배가 많죠. 그리고 무엇보다 추위 때문에 힘들어요. 일을 하다 보면 몸에는 열이 나는데 손가락 발가락이 꽁꽁 얼어붙거든요. 정말 깨질 것처럼 아파요. 돌아보면 택배 일 하기에는 여름이 그나마 수월한 것 같아요. 더위는 웃통 벗고 음료수 마시며 견딜 수 있으니까요. 또 휴가철이 끼어 있어 물량이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고요. 반면 수입도 그만큼 줄죠. 이쪽 일이 그래요. 물량이 많으면 돈을 좀 더 벌 수 있어요. 그러니 힘들어도 또 버티게 되고…. 그렇게 계속 일하는 거죠.”
이 작가의 ‘까대기’에는 주인공이 과메기 택배 상자를 옮기다 문득 고향 포항을 떠올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가 자신의 얘기다. 그의 부모는 포항에서 찌개, 해장국 등을 파는 식당을 운영한다. 이 작가가 어릴 때부터 쭉 그 일을 했다. 손님은 대부분 제철소 노동자였다. 어린 시절 이 작가는 그 식당 안쪽에 있는 방에 엎드려 만화를 그렸다. 마침 앞집에 살던 형과 초등학교 단짝, 옆 동네에 살던 사촌 누나가 하나같이 만화를 좋아하고 잘 그렸다. 그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만화에 빠져들었다. 중학교 무렵부터는 “만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머니는 “그림 그리고 살면 굶어죽기 십상”이라며 반대했지만, 그가 ‘이모’라고 부르던 식당 종업원들은 이 작가의 그림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만화 공모전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까대기 만화화 프로젝트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을 때, 그가 소재로 염두에 둔 건 “어릴 때부터 봐온 것들”이었다. 식당 이모들과 주변 노동자들의 이야기,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포항에서는 일러스트 학원에 다니고, 출판사와 접촉하고, 공모전이나 지원사업 정보를 얻는 것 등이 모두 여의치 않았다. 무리해 서울행을 택했고, 까대기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트럭 화물칸에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나르다 보면 종종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아들이 만화 공부하러 서울에 가겠다고 할 때 영 탐탁지않아 했던, 그러면서도 내놓고 반대하지는 못했던, 없는 살림에 보증금을 보태주며 더 주지 못해 속상해했던, 아들이 까대기 알바를 한다고 할 때 펄쩍 뛰며 놀랐던, 그래서 ‘그만뒀다’는 거짓말로 안심시켜 드릴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가 늘 그리웠다. 이 작가는 “까대기 생활을 만화로 그리기로 마음먹은 건 어머니 때문이기도 했다. 어머니께 말로는 할 수 없었던 내 삶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 첫 작품은 글 작가분과 함께 작업한 어린이 만화 ‘바다 아이 창대’예요. 이 작품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을 받았고, 꽤 오래 잡지 연재도 했어요. 하지만 그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다 꾸릴 수 없어 까대기 일도 계속했죠. 오전에 까대기, 오후에 어린이 만화 연재를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어요.”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까대기 이야기 만화화 프로젝트’만은 놓지 않았다. 매일 일기를 쓰며 이야기를 갈고닦았다. 작년 2월, A4용지로 270쪽 분량에 이른 기초 원고를 토대로 작품 기획안을 써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다양성만화지원사업에 제출했다. 그리고 화물트럭에 봄 작물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그의 아이디어가 지원 대상으로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덕에 지난해 여름 무렵부터는 까대기를 그만두고 만화 작업에만 매달릴 수 있게 됐다. 마침내 5월 중순, 이 작가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 만화책 ‘까대기’가 돼 세상에 나왔다.
주인공 ‘이바다’는 포항에서 나고 자란 만화가 지망생으로, 생계를 꾸리고자 까대기 일에 나선다. 누가 봐도 ‘이종철 작가’ 자신이다. 그는 “6년간 겪은 일을 책 한 권에 담느라 에피소드를 다소 편집한 부분은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그대로의 일”이라고 밝혔다. 등장인물도 가명을 사용했을 뿐, 모두 이 작가가 만난 주위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만화책에서는 ‘진짜’ 냄새가 난다. 택배 한 개가 ‘당일’ ‘특급’ 배송 서비스를 통해 내 손에 배달되기까지,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까대기와 택배기사, 화물기사들의 삶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온다. 꼼꼼한 현장 취재와 깊은 성찰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심지어 재미도 있다. ‘이바다’와 그를 둘러싼 주위 인물들이 ‘고된 삶을 시원하게 웃어넘기는’ 여유와 재치까지 겸비하고 있어서다.
- 주인공이 ‘식당 이모님’에서 까대기로 바뀌기는 했지만,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겠다는 어린 시절 꿈을 이룬 거네요.
“이 책을 낼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이에요. 독자들이 이 만화를 통해 편리한 택배 시스템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좋겠어요. 이 책 작업을 하면서 스스로 ‘징징대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나 힘들게 살았어’ 하는 얘기 하려고 만화를 그린 게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우리가 받아 드는 택배 하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의 지문이 찍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그분들께 위로와 응원을 드리고 싶기도 했고요.”
“몸도 마음도 파손 주의”
[박해윤 기자]
“저도 어머니가 ‘아들아, 네가 그렇게 오래 까대기를 하는지 몰랐다. 고생했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군요. 생각보다 훨씬 많이 속상해하셨어요. 당신이 가난하고 못나서 아들까지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자꾸 자책하셔서 많이 놀랐고, 속도 상했죠. 다행히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나아지시는 것 같아요. 오늘로 ‘까대기’가 나온 지 보름쯤 됐는데, 이제는 휴대전화에서 제 이름 검색하는 걸 좋아하세요. 독자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까 기쁘신가 봐요. 얼마 전부터 식당에다 안내문도 하나 걸어놓으셨대요. ‘작가이자 만화가인 아들이 이번에 만화 까대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관심 부탁드립니다’ 라고요.”
- 책에 등장하는, 함께 일했던 동료들께도 책을 드렸나요.
“아직이요. 제가 까대기 생활을 만화로 그릴 거라는 걸 다들 알고 계셨어요. 그분들 이름을 다 가명으로 처리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좀 조심스러워요. 혹시 이 책을 보고 당신 처지나 상황에 대해 속상해하시지 않을까 걱정돼서요. 그래도 얼른 연락드리고 책도 선물해야지 마음먹고 있어요.”
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라고 했다. 택배 시장의 제1수칙은 ‘파손 주의’다. 사람이 다칠지언정, 물건은 다치면 안 되는 세상,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온몸으로 빗줄기를 막아 물건이 젖지 않게 지켜야 하는 세계.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도 소중하다는 걸 만화 ‘까대기’를 통해 세상에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까대기’를 출발점으로 이 작가는 전업 만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다음 목표는 2020년, 전태일 열사 사망 50주기를 맞아 그와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삶을 다룬 만화를 그리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마음에 품었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만화’를 그리겠다는 꿈을 계속 이뤄나갈 생각이다. 이 작가가 서울에 올라올 때 바라던 대로, ‘만화를 그려 생계를 꾸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래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작품을 계속 선보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