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궤멸’ 트라우마 떠올리게 하는 지지율
대통령 핵심 지지기반까지 등 돌려
낡고 식상한 인사…그때 그 사람들
대통령 할 일은 돌 던지는 일 없도록 하는 것
‘새로운 보수’ 재건 노력, 보수 정치 궤멸 막는 길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국민 담화를 낭독하기에 앞서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근래 들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마의 10%대’까지 추락한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갤럽이 11월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취임 이후 최저치인 17%를 기록했다. 직무수행 부정 평가는 74%로 취임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보수-중도연합 해체…여당 참패
전국 모든 지역에서 부정 평가 비율이 높았는데,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경북(TK)에서도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23%, 부정 평가는 63%로 나타나 예외가 아니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11월 4∼6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도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9%였다. 2주 전 조사와 비교해 3%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NBS 조사 기준으로 국정 지지율이 20% 아래로 내려앉은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잘못하고 있다’고 한 응답자는 7%포인트 오른 74%로, 같은 조사에서 취임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 연령대, 전 지역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보다 많았는데, 역시 TK와 부산·울산·경남(PK) 지역에서도 부정적 평가가 우위를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20%대 지지율은 유지했지만 취임 후 최저치 기록이 나왔다. 이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22.4%였다. 일주일 전 조사보다 2.2%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들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여권의 전통적 우세 지역인 TK와 보수층에서도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보다 훨씬 앞서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보수-중도연합이 해체되고 중도층 이반이 주요 선거에서 여당의 참패를 낳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 나아가 윤 대통령 핵심 지지기반이던 보수층까지 등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임기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윤 정부의 위기, 아니 보수의 위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임기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첫 대국민사과를 할 때의 지지율이 17%가량이었다. 박 전 대통령을 찍었던 보수층까지 이반함으로써 그런 수치가 나온 것이다. 그렇게 보면 윤 대통령의 현재 상황도 박 전 대통령이 겪었던 최악의 상황에 근접해 가는 수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시점상으로 보면 아직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이 더 빠른 것이니, 지지율의 질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야당이나 진보성향 언론만 하는 상황이 아니다. 보수층은 물론이고 보수성향 언론들의 비판이 더 매섭고 신랄한 경우가 많다. 동아일보는 11월 2일자 사설 ‘긍정 19%, 부정 72%… 임기가 반이나 남았는데’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만남 뒤에 ‘돌 던지면 맞고 가겠다’며 김 여사 문제에 대한 답을 회피한 채 연금 의료 노동 교육개혁 등 4대 개혁의 지속적인 추진 의지를 밝혔으나 꿩처럼 머리 박고 현실을 외면하는 심리일 뿐이다. 여당 지지층의 절반까지 등 돌린 지지율 10%대로는 개혁은커녕 일반적인 국정 수행에도 동력을 얻을 수 없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기다.”
그러고는 정신 차려달라고 당부한다.
“국회 여소야대 상황에서 지지율 19%인 대통령은 영락없는 레임덕이다. 임기 말도 아니고 임기 절반을 남겨놓은 대통령이 레임덕이 되면 나라는 표류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나라가 걱정돼서라도 대통령에게 정신 차려달라고 호소하고 싶은 국민이 적지 않을 게다.”
조선일보도 11월 2일자 사설 ‘마침내 10%대까지, 국민 지지 없는 권력은 아무 일도 못 한다’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중앙일보 역시 11월 2일자 사설 ‘‘여사 문제’ 결단 안 하면 정권 붕괴 순식간이다’에서 “성난 민심을 수습할 특단의 조치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사과문 발표 다음 주 지지율이 5%까지 추락한 끝에 탄핵의 나락에 떨어진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4대 개혁’ 성사시킬 구체적 내용 없어
2017년 3월 10일 서울시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당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선고하고 있다. [동아DB]
11월 7일에 한 대국민담화에서도 윤 대통령은 “남은 2년 반은 민생의 변화를 최우선에 둘 것”이라며 “민생의 변화, 국민들께서 기조 변화에 따른 혜택을 더 체감하실 수 있게, 실질적인 변화에 역량을 집중시키겠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을 섬기는 마음으로 쇄신에 쇄신을 기해 나갈 것이다. 당정 소통도 강화하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유능한 정부, 유능한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모든 말이 ‘말의 성찬’에 그치는 느낌이다. 막상 ‘4대 개혁’을 성사시킬 방법도, 쇄신을 해 유능한 정부를 만들 계획도, 구체적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 무엇보다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대통령에게서 그런 국정과제들을 추진해 나갈 동력이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니 공허하게 들린다.
야당이 쏟아내는 비판과는 달리 보수 진영에서는 ‘보수 궤멸’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윤 대통령과 척을 진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은 11월 1일 “윤석열 정권도, 보수도 궤멸의 위기에 들어섰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유 전 의원은 윤 대통령 지지율이 19%를 기록한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용기를 내어 부부가 함께 국민 앞에 나와서 모든 잘못에 대해 참회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홍준표 대구시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당 지지율이 4%까지 떨어진 상황을 언급하며 “윤통(윤석열 대통령)이 무너지면 우리에게 차기 대선은 없다”며 “어떻게 쟁취한 정권인데 또다시 몰락의 길을 가고 있나”라고 우려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이 명태균 씨에게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언급하는 통화 음성 파일이 공개된 것과 관련해 “공천 개입 논란에 대해서 진정 어린 사과가 불가피하다”며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그러고는 “대한민국 민심은 엄중하다”며 “최근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10%대로 추락했다. 임기 반환점을 돌기도 전 10%대 추락은 매우 엄중한 위기”라고 주장했다.
목소리를 낸 이들뿐만 아니라 많은 보수 진영 인사가 갖기 시작한 우려는, 이대로 가면 윤 대통령 레임덕이 불가피하고 회생 불능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단순히 윤 대통령 개인의 몰락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보수 정치세력 전체의 궤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경험했듯 대통령이 몰락하는데 여당이라고 멀쩡할 수 없고, 결국 당정의 동반 추락과 궤멸을 피할 수 없다. 이는 ‘박근혜 탄핵’ 이후 천신만고 끝에 되찾은 정권을 다시 더불어민주당에 넘겨주는 상황으로 갈 것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근래 들어 보수 진영에 속한 언론이나 인사들이 야당 이상으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에 나서는 이유도, ‘보수의 심장’이라는 TK지역 주민들이 윤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는 이유도 결국은 그것이다.
이는 근거 없는 우려와 비판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와신상담 끝에 보수 정치가 배출한 대통령으로서 자기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궤멸됐던 보수 정치를 재건하고 진영의 정치를 넘어 국민 전체의 지지를 받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국민이 기대하는 새로운 보수 정치의 모범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고,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보수 정치의 비전을 설계하고, 그것을 현실화할 사람들을 모았어야 할 윤 대통령이었지만, 그저 낡고 식상한 과거 보수 정치의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편한 길을 택했다.
‘새로운 보수’ 재건
정권은 온통 과거 보수 정부 시절의 ‘그때 그 사람들’로 둘러싸였고, 국민의 신망을 받는 새로운 인재들과 함께하려는 탕평의 노력은 부재했다. 국민 눈높이에서 보자면 직언을 피하고 그저 대통령의 말을 잘 들을 사람들만 중용하는 모습이었다. 인사 때면 강성 우파 인사들만 중용함으로써 국민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양상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 5년의 진영과 분열의 정치에 염증을 느껴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던 사람들은 직전 대통령을 능가하는 그 모습에 실망을 넘어 절망하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의료 공백 사태의 장기화 등으로 정부의 국정 난맥상이 심각해지면서부터는 “윤 대통령은 보수 정치의 ‘X맨’”이라는 농반 진반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장래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가면 보수 정치가 다시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 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보수층의 우려가 다시 윤 대통령에 대한 거센 비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거기에다 느닷없이 명태균이라는 정치 브로커가 윤 대통령 부부를 흔들어대는 폭로를 이어가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급기야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이 열렸다. 상대적으로 시간 제약 없이 자유로운 문답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한 회견이었지만, 본질인 국정쇄신에 대한 구체적 답이 나온 것은 없었다는 점에서 그 한계는 뚜렷했다. 윤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사과했으면 어떤 국정 쇄신책을 강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얘기를 하지 못했다.
이날 회견 내용에 대해 여야는 물론 친윤과 친한 인사들의 평가까지 엇갈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자회견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현실이다. 획기적으로 국정을 쇄신할 어떤 구상도 내놓지 않았다. 대선 후 휴대전화를 바꾸지 않은 데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대통령에게 무엇을 쇄신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을 법도 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은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계속 이렇게 가고 있다. 윤 대통령이 부산 범어사에 가서 한 말처럼,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게 될 것 같다. 국민이 돌을 던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대통령이 국민이 던지는 돌을 맞고 가겠다는 것은 고집스러운 오기일 뿐 국민이 기대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정치는 윤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윤 대통령이 회생 불능 상황에 처하더라도, 혹여 국회에서 특검법과 탄핵 소추가 현실화하는 상황까지 가더라도 보수 정치가 함께 궤멸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보수 정치는 윤 대통령의 운명과는 별개로 오히려 새롭게 변신하고 그동안 보수 정치에 실망해서 등을 돌린 민심을 되찾을 생각을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몰락이 ‘보수 정치의 공동묘지’가 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냉정한 얘기일지 몰라도,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기 대선까지 가는 과정에서 보수 정치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나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보수 정치의 차기 리더들이 새로운 보수 정치 비전을 내걸고 경쟁하면서 보수 정치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앞으로 견인해 나가야 한다. 윤 대통령이 달라져서 보수 정치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 상황이 됐다. 이제는 윤석열을 넘어 ‘새로운 보수’를 재건해 나가는 노력만이 보수 정치의 궤멸을 막을 유일한 길이다.
신동아 12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