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상황에서 직장인은 상시 구조조정 대상”
코로나19 여파, ‘긱잡’ 긍정적 인식 확산
취업 전 세상 경험? 알바도 엄연한 직업!
“시간제 근무나 멀티 잡 늘어날 것”
코로나19 여파로 젊은 층의 직업 관념이 크게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GettyImage]
“위기 상황에서 직장인은 상시 구조조정 대상”
국내 대기업 계열 화장품 회사를 다니던 박씨가 N잡러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몫했다.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후 여유시간이 생겼지만 오히려 야간근무수당을 받지 못해 월급이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창궐로 회사가 3개월 무급휴직을 시행하면서 경제적 타격이 더 커졌다.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박씨는 언제든 회사의 무급휴직 또는 희망퇴직,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박씨는 “회사가 절대 나를 책임져 주지 않으니 내 살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메이크업 강연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 강연을 듣고 ‘유용한 팁을 전수해 줘서 고맙다’며 반응을 보였다. 긍정적 피드백에 용기를 얻어 평소 취미로 하던 동영상 편집 경험을 전자책으로 엮어 판매하고, 유튜브 채널에는 개인 일상을 담은 동영상을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가 N잡러로 활동하면서 가장 만족하는 점은 하루 반나절을 직장에 묶여 있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일을 겸하면서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고용불안에 시달리거나 수입이 줄어들어 생활에 지장을 줄까 내심 불안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씨는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다. 회사에 몸담고 있더라도 고용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디지털 플랫폼에서 ‘긱잡’으로 활동하며 내 브랜드 가치를 높여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긱잡은 미국에서 1920년대 유행하던 단기 공연 팀을 뜻하는 ‘긱(gig)’과 직업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잡(job)’의 합성어. 디지털 플랫폼에서 필요할 때마다 초단기 계약을 맺어 일하는 근로 형태를 의미한다. 보통 시급이나 월급이 아닌 업무 건수별로 임금을 받으며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코로나19 이후 ‘긱잡’ 긍정적 인식 확산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각광받는 긱잡(gig job) 중 하나는 ‘쿠팡이츠 배달파트너(배달원)’다. [쿠팡 제공]
변지성 잡코리아 팀장은 “최근 젊은 구직자 사이에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또한 시간과 장소에 구애하지 않고 근무가 가능한 고용 형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긱잡 같은 고용 형태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가장 각광받는 긱잡은 ‘쿠팡이츠 배달파트너(배달원)’다.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이 2019년 개시한 ‘일반인 배달 서비스’로 누구나 도보나 자전거, 퀵보드 등을 이용해 배달할 수 있다. 가입 방법도 어렵지 않다.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에서 ‘쿠팡이츠 쿠리어’ 앱을 설치한 후 간단한 교육 영상을 시청한 다음 회원 가입을 하면 된다. 진입장벽이 낮아 여가시간을 이용해 부수입을 올리려는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배달파트너가 원할 때 근무하며 배달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기본 배달료는 2500원에서 시작하며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게 책정된다. 배달료 지급은 7~14일가량 소요된다.
일주일에 두세 번 쿠팡이츠 배달파트너로 근무하는 취업준비생 윤수연(26) 씨는 “긱잡은 풀타임 일자리보다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뿐더러 비교적 급여를 빨리 받을 수 있다. N잡으로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무엇보다 회식처럼 부담스러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취업 전 세상 경험? 알바도 엄연한 직업!
코로나19 창궐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일정한 직업 없이 알바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GettyImage]
2030세대의 달라진 직업관은 아르바이트(알바)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요즘 젊은 층은 알바도 엄연한 직업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임시직이라는 알바 특성 때문에 청년 세대가 직장을 구하기 전 세상을 경험하는 작은 사회생활 정도로 여기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지난해 11월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과 ‘잡코리아’가 20~30대 성인 남녀 328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7.5%가 ‘알바도 직업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알바를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이 가운데 73.3%가 ‘알바생도 엄연한 노동자이기 때문(73.3%)’이라고 답했다. ‘알바를 통해서도 충분히 생계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34.2%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2월 대학교를 졸업한 임세영(27) 씨는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평일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5시간씩 근무하며 시간당 8720원을 받는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라 임씨는 기본급 이외 주휴수당과 야간근로수당 등을 보장받는다. 임씨는 “한 가지 알바만 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에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평일에는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일하고 주말에 단기 알바를 병행한다. 그러면 매달 180만 원 안팎의 급여를 벌 수 있다. 일주일 내내 알바를 하는 ‘일상 알바족(族)’ 신세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일정한 직업 없이 알바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이 늘어난 것 또한 눈여겨볼 만한 양상이다. 프리터족은 영어 프리(free)와 독일어 아르바이터(Arbeiter), 한자 족(族)의 합성어로, 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만 알바로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기침체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고 고용불안 현상이 심화하면서 비자발적 프리터족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시간제 근무나 멀티잡 직업인 증가할 것”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몬’이 지난해 4월 20~40대 알바 경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2.4%가 스스로를 ‘프리터족’이라고 밝혔다. 같은 답을 한 응답자가 전체의 31.0%에 그친 전년에 비해 11.4%포인트가 증가한 것이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리터족의 79.5%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비자발적 프리터족’이라고 답했다. ‘자발적으로 프리터족이 됐다’는 대답은 20.5%에 머물렀다.프리터족이 늘어난 배경에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있다. 취업준비생 정지훈(28) 씨의 하소연이다.
“원래 계획은 취업 전까지 생계비를 마련하는 것이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정규직을 포기했어요. 매년 신입사원을 선발하던 기업들마저 줄줄이 채용 계획을 연기하거나 접었죠. 이러다 덜컥 서른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리를 짓누르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당분간은 프리터족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전문가들은 평생직장이 더는 없는 프리랜서 이코노미(freelancer economy) 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한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 ‘온라인 인재 플랫폼이 직업 세계를 변화시킨다’에서 “향후 직업 기회는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않더라도 더 다양하고 유연하게 넓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점점 좁아지는 취업 관문을 뚫는 대신 자기 고용을 시도하는 기회가 많아지고, 시간제 근무나 프로젝트 형태로 여러 기업과 동시에 일을 하는 프리랜서나 멀티잡(multi-job) 직업인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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