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 삼성·SK ‘칼바람’, 현대차·LG ‘봄바람’

[재계 인사이드] 인사 시즌 개막, 4대 그룹 임원 '엇갈릴 운명'

  •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khm193@asiae.co.kr

    입력2024-11-12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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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파운드리·HBM 임원 대폭 교체 전망

    • SK, 호실적에도 219개 계열사 합병·매각에 칼바람

    • 현대차, 경질보다는 ‘보상’에 초점 맞출 듯

    • LG 조주완, 이번에는 부회장 승진 유력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추형욱 SK E&S 사장, 장재훈 현대차 사장, 조주완 LG전자 사장(왼쪽부터). [각 사]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추형욱 SK E&S 사장, 장재훈 현대차 사장, 조주완 LG전자 사장(왼쪽부터). [각 사]

    날씨가 부쩍 추워진 11월부터 우리 기업들은 ‘인사 시즌’의 막을 올렸다. 기업들이 한 해 동안 정기적으로 맞이하는 ‘시즌’은 크게 세 가지인데, 인사는 그중에서도 마지막을 장식한다. 1년의 사이클은 3월 주총(주주총회), 7~8월 휴가. 그리고 11~12월 정기인사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통상적으로 기업들은 조직을 개편한 뒤 그 조직을 이끌 사장단에 대해 인사 조치를 단행, 그 후에 사장들과 함께 일할 평사원들을 배정하는 순서로 인사를 단행한다. 그 기간은 짧으면 일주일, 길어지면 2주가 걸린다고 한다.

    매년 겪는 연례행사지만, 올해만큼은 인사를 맞이하는 기업들의 분위기가 무겁고 냉랭하다. 올해 경영 실적이 좋지 않았고 내년 전망도 좋지 않은 곳이 상당히 많아서다. 현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본 전문가, 관계자들은 현대자동차 등 몇 곳을 제외하곤 사실상 모든 기업이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대외적 요인이 컸다. 국내 경기는 장기간 침체됐고 글로벌 경쟁은 사업 분야를 막론하고 격화됐다.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한 전쟁과 다수 기업이 진출해 있는 주요국들은 선거를 치러 예상하기 힘든 변수가 유독 많았다.

    인사를 통한 인적 쇄신은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어느 것보다도 단기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반전 수단이다. 인사는 바깥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반도체 위기론으로 지난 한두 달간 위태로웠던 삼성전자가 이번 정기 인사를 대규모로 단행할 것이란 소식이 시장에 전해지고 그 시점도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오자, 역대 가장 긴 34거래일 동안 주식을 팔고 떠났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조금씩 복귀하며 삼성전자의 주가가 오랜만에 반등한 일이 대표적이다.

    올해 인사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세대교체’에 주안점을 두면서 기업의 대외 이미지를 신선하게 바꾸고 내부 조직도 경량화해서 효율적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랜 기간 회사에서 ‘철밥통’으로 자리를 지켰던 임원들이 이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지며 회사에 위기가 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기업이 상당히 많다. 인사 적체(人事積滯) 해소에 나서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를 위한 사전작업에 일찌감치 돌입한 기업들도 있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롯데호텔, KT 등은 특정 연차와 직급의 임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권고하고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 예년보다 시점을 앞당겨 인사 발표를 내고 전열 재정비를 서두르는 기업들도 있다.

    삼성 반도체 임원 전면 교체 전망…장덕현 거취 주목

    올해 정기인사의 최대 화두는 단연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오너 일가가 대대로 이어온 가업에 가까운 간판 사업, 반도체에서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이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다가오는 정기 인사는 현재 닥친 반도체 위기 상황에 맞춰질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 인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이 회장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4주기를 추모한 10월 25일과 본인의 취임 2주년이 된 27일, 회사 창립기념일이었던 11월 1일에 회사의 위기와 관련된 어떠한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인사를 앞둔 회사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이 회장이 강도 높은 쇄신책의 일환으로 인사를 대대적으로 단행, 위기 극복의 의지를 표명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위기를 촉발한 인물들로 지목된 임원들의 거취가 가장 큰 관심거리다. 올해 원포인트 인사로 취임한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은 자리를 지키고 계속해서 기회를 부여받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최시영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등은 교체 대상 1순위로 꼽히는 분위기다.

    특히 올해도 조 단위 적자를 내고 세계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사업과 관련된 임원들은 대폭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서 경쟁사들에 크게 밀린 메모리 분야도 가시방석이다. 회사 사업의 방향을 가늠하고 진두지휘하는 임원들도 자리를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부의 수장인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인사 요구가 일각에서 빗발치고 있는데 이 회장이 이에 부응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빈자리가 생기면 이곳을 채울 인물이 누가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재계 일각에선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이 모기업의 반도체 위기를 막을 구원투수로 합류할 것이란 후문이 나온다. 장 사장은 삼성전기의 호황을 이끈 인물로 최근 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장 사장이 이끈 삼성전기는 올해 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실적이나 사업 전망에서 가장 두드러진 결과물을 내놨다.

    특히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사업에서 삼성전기가 활기를 띠고 있다. MLCC는 전기를 저장하고 필요한 만큼 안정적으로 공급해 반도체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부품이다.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 등 다양한 전자기기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이 회장은 MLCC의 수요 증가와 수익성을 주목해 삼성전기 사업장을 올해 자주 찾았다. 지난 6월에는 수원사업장을 방문했고, 10월 6일에는 필리핀 칼람바에 위치한 삼성전기 생산법인을 찾았다. 회장의 관심 사업을 키우는 경영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장 사장이 높은 점수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SK 임원 20% 감축설…사업의 주역들도 ‘칼바람’

    삼성만큼 전례 없는 대규모 인적 쇄신이 이뤄질 곳이 SK다. 12월 초에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SK그룹의 인사 전망은 어렵지 않고 단순하지만 그 실상은 냉혹하다. 인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철저하게 그룹의 리밸런싱(사업재편) 구상에 맞춰 진행될 것이 자명하다. 리밸런싱은 이미 일부 진행됐다. 구체적으로 SK그룹은 지난 6개월간 리밸런싱을 통해 순차입금 9조 원을 줄여 재무건전성 개선에 성공했다.

    또 앞으로 추가 리밸런싱과 운영개선(O/I)을 통해 인공지능(AI)·반도체·에너지 등 핵심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219개에 육박하는 계열사는 합병·매각을 통해 연말까지 10% 이상 줄인다는 계획도 세웠다. 인사도 이런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SK에코플랜트와 SK지오센트릭은 예년보다 이른 지난 10월에 조기 인사가 단행돼 각각 임원이 22.7%, 14.3%가 줄었다. 이로 인해 인사를 앞둔 그룹 계열사들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다. 재계에선 인사 조치가 이뤄지면 SK그룹 임원 전체의 약 20%가 줄어들 것이란 계산도 나온다.

    각 계열사의 실적과 내부 사정에 따라 편차는 다소 있을 수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1월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SK 인공지능(AI) 서밋(Summit) 2024’에서 기조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 리밸런싱과 AI 투자를 동일시했다. 그는 “줄이는 건 줄이는 노력대로 할 필요가 있고 그 줄인 부분을 또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한다”면서 “투자할 부분 중에 AI의 비중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더욱 넓게 펼쳐질 AI 시대에 날개를 펼 가능성이 큰 사업을 중심으로 경영 플랜을 짜고, 이에 맞춰 리밸런싱부터 인사까지 이어가겠단 생각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감안하면 AI 반도체 시장에서 확실하게 강자로 자리매김한 SK하이닉스와 다양한 AI 관련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SK텔레콤 등은 인사 폭이 크지 않을 수도 있어 보인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에너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계열사들은 임원들의 거취가 불분명하다.

    SK이노베이션과 11월 1일 합병된 SK E&S의 임원들이 특히 주목받는다. 추형욱 SK E&S 대표이사 사장은 그룹의 여러 에너지 사업에서 성과를 내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굳건한 신임을 받아온 인물이다. 회사 합병 이후 SK E&S가 여전히 독자적인 경영권을 인정받는 상황에서 추 사장은 유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그의 거취는 최창원 SK수펙스추구위원회 의장의 의중에 달렸다는 분석도 있다.

    장기간 적자 늪에 빠진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온도 임원들이 대거 바뀔 것으로 보인다. 다만 SK온은 올해 3분기에 매출액 1조4308억 원, 영업이익 240억 원을 기록하며 첫 분기 흑자 달성에 성공한 것이 인사에 어떤 영향을 줄지가 관건이다. SK온의 흑자는 배터리 사업이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지 3년 만의 일이다.

    현대차는 ‘칼바람’보다 ‘봄바람’…장재훈 유임 전망

    현대자동차의 정기 인사에 대한 전망은 ‘칼바람’보단 ‘봄바람’에 가깝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호실적이 예상되는 현대자동차는 임원들의 경질과 감축보다는 ‘보상’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정기인사에서 사장 5명 등 역대 가장 많은 252명이 승진을 했는데, 올해도 유사한 인사 결과가 나올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인사는 올해 힘을 받은 각종 협력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새로운 기회로 확대할 수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과정에선 재임 중인 임원 대다수가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 일본의 도요타 등 세계적 자동차 기업들과 손잡을 정도로 세계시장에서 격이 크게 올랐다. 전기차 시장에선 1위 테슬라를 바짝 추격했다.

    이런 공로들을 인정받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오른팔로 평가받는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유임, 계속해서 회사의 호황기를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주주들에 의해 결정되는 그의 정식 임기는 2027년까지다.

    송호성 기아 사장과 이규석 현대모비스 회장의 향후 거취에도 관심이 쏠린다. 두 사장이 이끈 기아, 현대모비스도 올해 좋은 실적을 내며 순항했다. 다만 송 사장은 정식 임기가 내년 3월에 만료될 예정이란 점이 변수다. 다만 현대자동차 부품 계열사 사장들은 대거 조정이 있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

    여수동 현대트랜시스 사장과 정재욱 현대위아 사장의 교체 가능성이 업계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여 사장이 이끄는 현대트랜시스는 최근 임금단체협상에서 촉발된 노사 간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 사장의 현대위아는 실적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LG전자 정상궤도에 올린 조주완, 부회장 승진 유력

    11월 말 단행이 점쳐지는 LG그룹 인사에선 조주완 LG전자 사장의 거취가 화두다. 그는 올해 중순부터 부회장 승진이 유력하다는 후문이 끊이지 않았다. 조 사장은 지난해에도 부회장 승진설이 재계에서 돌았지만 현실화하진 않았다. LG전자의 수장이 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은 가운데서 나온 이야기로 낭설에 가까웠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만큼 LG 내부에선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방증한 것이어서 그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3년 차가 된 올해는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사장 부임 기간은 2년이 되면서 더는 그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통상 재계에선 사장으로 2년 일하면 회사 안팎의 사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업무 프로세스에도 능숙해진다고 본다. 사장으로서 회사의 성장과 도전을 도모할 수 있는 준비가 완벽하게 된 시점이다.

    ‌LG전자의 실적은 조 사장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다. LG그룹 내에선 조 사장이 취임 후 여러모로 어려웠던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려놨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LG그룹 계열사들과 비교해 LG전자는 올해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실적을 냈다. 지난 2분기에는 매출 21조6944억 원, 영업이익 1조1962억 원으로 역대 2분기 최대치를 기록했다. 3분기에는 매출 22조1769억 원으로 4개 분기 연속 매출 성장세를 이어갔다.

    특히 가전 구독 사업은 조 사장이 이뤄낸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올해 가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LG전자를 따라 가전 구독 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이 사업은 회사의 간판이 됐다. 시장을 선점한 조 사장의 리더십도 이에 따라 더욱 두드러졌다. 가전구독은 말 그대로 소비자들이 LG전자 제품을 신문, 인터넷, OTT처럼 일정 기간에 맞춘 비용을 지불하고 구독 사용토록 하는 사업이다.

    냉장고, 세탁기, TV 등 대형 가전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 쓰고 교체해야 하는, 이른바 사용주기가 있는 제품들이다. LG전자는 이런 특성을 주목해 사업을 구상해 냈다. 구독 비용은 당연히 구매할 때보다 훨씬 싸다. 이를 통해 해당 고객은 타사 제품을 멀리하고 LG전자만을 찾는 장기 고객이 된다. 본래 LG전자는 2009년 정수기로 구독 시장에 처음 진출했고, 조 사장이 취임 후 이 서비스를 대형 가전으로 확대했다. LG전자의 도전 이후 가전 구독사업은 우리나라 가전 시장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었다. LG전자의 가전 구독사업은 지난해 연간 매출이 1조1341억 원으로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었고, 올해도 계속 고공 행진하고 있다.

    안정권에 접어든 LG전자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조 사장이 연임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서 부회장 승진으로 그룹이 그간의 조 사장의 공로를 인정하고 무게감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있다. 현재 LG그룹의 부회장단은 신학철 LG화학, 권봉석 LG 부회장 등 2명이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현 상근고문)이 지난해 11월 용퇴하면서 인원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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