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는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이라는 두 문명이 이끌어왔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문명이 하나로 융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역사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의 기본 골격을 모르면 어떤 비율로 그 문명들이 조합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세계문명을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으로 나누는 근거를 제시하고 문명 이전의 역사를 정리한다. 2부에서는 두 문명이 각기 걸어온 길을 묘사한다. 동양과 서양은13세기까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번성해왔던 것이다. 3부에서는 만남의 빈도가 높아지는 상황을 그렸고, 4부에서는 두 문명의 차이가 현재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정리했다.
저자는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의 영향력이 비슷하다고 인식하면서도 당분간 서양문명의 파워가 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동양문명이 세계문명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현상을 좌지우지하는 흐름은 서양문명인 까닭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서양문명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럼에도 역사 흐름을 보며 현재 좌표를 인식하고 계승하다 보면 비로소 ‘두 문명의 조화’가 순조로이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20년간 역사를 연구한 저자의 사관(史觀)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사건을 과감히 생략하기도 하고, 동유럽사, 예수회와 중국문명의 접촉, 두 차례에 걸친 유라시아의 민족대이동 등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주목한다. 들녘/ 688쪽/ 3만8000원
▼전쟁기획자들 _ 서영교 지음
전쟁사를 전공한 저자는 전쟁이 일어나는 건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장은 전쟁을 배태하는 자궁”이라는 것이다. 책은 5부로 이뤄져 있는데, 1부에선 경제 확장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을 보여주고, 2부에선 승전 이후 지속되는 달러의 부상을 다룬다. 3부에서는 식량문제가 중심인데, 식량폭동을 일으킨 아이티 사례를 짚어낸 뒤 식량시장의 판을 짜는 사람들의 면모를 설명한다. 4부에선 한국 경제를 이끈 시장의 승부사들을, 5부에서는 시장의 본질을 읽어낸다. 곡물마피아의 실체, 무기산업의 매력, 다이아몬드를 노리는 기획자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이 책에선 한국 경제를 이끈 이들의 특징이 재미있게 묘사돼 있다. 정주영과 광대토대왕, 이병철과 장보고, 최충헌과 수하르토, 김우중과 의자왕, 이건희와 장수왕을 비교한 것이 대표적이다. 글항아리/ 368쪽/ 1만5000원
▼7부 능선엔 적이 없다 _ 신경식
“항상 중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정상을 향해 무리하게 몸부림치지 않았고, 나의 위치에서 그때그때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했다.” 이런 자세 덕분에 신경식은 오랜 세월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13, 14, 15,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김영삼 대통령후보 비서실장,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 정일권 국회의장 비서실장, 이회창 대통령후보 비서실장, 이회창 명예총재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이 회고록이 주목받는 것은 나라를 좌지우지한 정치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의 이력 때문일 게다. 물론 회고록을 읽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의 일상과 고뇌를 엿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 신경식을 만날 수 있다. ‘긴급조치 법령 폐지를 묻는 국민투표 사실’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심문당한 정치인과 특종에 기뻐하던 기자 얼굴도 보인다. 동아일보사/ 476쪽/ 1만8000원
▼밤의 문화사 _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밤은 아름다우면서 위험하다. 그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이 감정적으로 변한다. 좀 더 솔직해진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나누는 것도 그래서다. 그럼에도 밤에 대한 성찰은 전무한 실정이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20년간 소설, 희곡과 같은 문학작품 외에도 다양한 계층의 일기, 메모, 수첩, 편지 등을 통해 인류의 밤을 들여다봤다. 주제별로 묶어놓은 이 책에는 밤에 대한 인류의 공포, 공포의 일반적 원인인 화재와 범죄, 국가와 종교의 통제가 담겨 있다. 밤의 회합, 밤의 노동, 신분에 따른 수면의 양태와 침실문화, 꿈의 해석도 적혀 있다. 글을 읽다 보면 밤에 대한 인류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덤으로 도둑들이 시체의 손가락을 따로 챙긴 이유와 밤새도록 침대에 앉아 연애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돌베개/ 560쪽/ 2만5000원
▼유럽 통합의 아버지 장 모네 회고록 _ 장모네 지음, 박제훈·옥우석 공역
“영국과 프랑스의 군수물자 보급망을 통합시키자.” 코냑 장사꾼이던 장 모네는 이 한마디로 유럽 통합의 주역이 된다. 당시 프랑스 총리 비비아니가 그의 제안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국제연맹 사무차장으로 일하며 지역통합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갔다. 루스벨트는 장 모네의 ‘미국 중시 정책’을 계기로 2차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장 모네가 2차 세계대전의 숨은 공신으로 인정받게 된 이유다. 그가 유럽합중국행동위원회를 20년간 주도했던 것은 그만큼 확고한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이 인류문명 발전에 기여하기에 초국가기구 설립에 의한 연방체제를 지향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공동이해 추구를 통한 신뢰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21장으로 구성돼 있는 이 회고록은 유럽통합 사상이 구축된 전 과정이 담겨 있다. 세림출판/ 603쪽/ 2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