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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적 음악 감상’과 ‘지적 감상’ 사이

음악이 다가오지 않을 때 오디오 놀음에 빠져보라

‘미신적 음악 감상’과 ‘지적 감상’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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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에 사로잡힌 영혼

권장도서 목록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작업실 컴퓨터 옆에 쌓여 있는 근래 읽은 책 목록이다. 정리해보자면 첫째, 방향도 취향도 짐작할 길 없는 ‘구구리 잡탕’이라는 것. 둘째, 문학책 예술책이 없다는 것(다자이 오사무 책은 신변잡기를 쓴 생활에세이다). 셋째, 근간의 지적 동향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 내가 듣는 음악이 그렇듯이 정처 없는 독서의 실상을 쌓여 있는 책이 증명한다. 활자에 눈을 박다가 잠시 커피 놀이를 하다가 더 많은 시간은 음반을 돌리며 보낸다. 부러워하시든 세월 좋네 타박하시든 맘대로 하시라.

물론 밥벌이하러 세 군데 방송사를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간간이 집에 들러 가족도 만나고 드물게 친구도 만난다. ‘여인’ 쪽은 주둥이만 동동 뜬 채 실체가 없어진 지 오래다. 나이 들어 신체의 기계작동이 빌빌해지면 여인이란 공포의 대상이 된다. 기회 근처까지 가도 스스로 포기해버린다. 그렇다고 ‘정신스럽고 겉멋스러운’ 플라스틱 아니, 플라토닉 퍼피 러브를 꿈꾸기에는 늙었고 낡았다.

요컨대 무엇에 붙들려서 혹은 무엇을 채우면서 살아 있는 날들을 보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장하준이나 도킨스인가. 친구거나 먼 그대들인가. 아니면 밥벌이 방송 마이크인가. 혹시 모차르트인가. 빙고! 모차르트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차르트들, 그것으로 채우고 싶다는 말이다.

잠시 주문을 외워본다. 오블리 비아테! 좋은 기억만 남겨두고 나쁜 기억은 사라지게 만드는 주문. 어떤 커피숍 이름이었는데 알고 보니 해리포터에 나오는 거란다. 이하 출전을 모르는 주문들이다. 루프리텔캄! 모든 것을 이루어지게 한다. 세렌디피티! 생각지 못한 귀한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하는 행운의 주문이다. 하쿠나마타타폴레폴레! 걱정 마 다 잘될 거야, 라는 위로의 주문. 마하켄다프펠도문!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해주노라.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연주자들

웬 주문들인지 짐작이 가시는가. 일생토록 내게는 모차르트들이, 그러니까 온갖 작곡가 연주가의 이름이며 존재가 하쿠나마타타폴레폴레, 다 잘될 거야, 같은 구실을 했던 것이다. 마하켄다프펠도문, 슬픔도 괴로움도 견뎌낼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 전념하기 전에는 때로 밥 딜런이, 또 때로 마일스 데이비스나 존 콜트레인이 그러했다. 루프리텔캄, 오블리 비아테! 그러니까 이것은 음악의 미신적 단계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환상을 품는 것과 흡사하다. 음악에 앞서 음악가들의 생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그들이 겪은 삶의 고통과 노고, 그들만이 느끼고 이해한 어떤 비경이 내 것으로 다가온다. 많은 것이 과장된 오해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고흐나 뭉크의 생애 사실이 다른 모든 회화작품을 압도해버리는 것과 유사한 단계다.

대학 시절, 영어에 까막눈인 록 음악광(狂)을 판 가게에서 만나 알고지낸 적이 있다. 그는 내게 홀(Hall)이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힐? 하고 물었다. 네, 힐이요, 라고 나는 답변해주었다. 그는 모든 음반을 재킷의 그림으로 판별하고 있었다. 날마다 10여 종 이상의 신보가 해적음반(빽판)으로 나오던 시절이라 없는 판이 없던 그때 그는 모든 음반을 다 듣고 모든 뮤지션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불가사의한 정보량에 믿을 수 없는 소스였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음악을 들으면 평면이 입체로 다가왔다. 가령 그는 캐나다 3인조 록그룹 러시(RUSH)의 음악을 추종하는 4대 학파가 캐나다 최고 명문대학마다 포진해 있어 엄청나게 논쟁 중이라고 했다. 각 학파 간의 논쟁이 캐나다 대학계의 최대 관심사라고 했다. 실제로 ‘국립 캐나다 대학교’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의 음악을 토론하는 석학들의 학술회의 장면에 대한 그의 실감나는 묘사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나는 실제로 당시 숭배하던 록그룹 슈퍼트램프의 풀스 오버추어(Fool´s Overture) 음반의 예술성과 사회성에 대해 그런 학계에 나가 발표할 내용을 정리해본 적도 있다. 네오레프트를 이끄는 마르쿠제도 등장하고 나치 히틀러의 집단 광기도 거론하는 아주 현학적인 내용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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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연재

김갑수의 ‘지구 위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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