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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科敎興國’ 60년… ‘과기인력 4만배 증가’의 상전벽해

‘科敎興國’ 60년… ‘과기인력 4만배 증가’의 상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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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반(校辦) 기업의 신화

‘科敎興國’ 60년… ‘과기인력 4만배 증가’의  상전벽해

중국 안후이성 우후의 청소년 과학기술 교육장에서 어린 학생들이 교사의 지도에 따라 로봇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중국 과학교육의 대표주자는 칭화대학이다. 2006년에만 200여 차례의 과학기술분야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 칭화대학은 이를 통해 외국 기업이나 대학 등과 맺는 엄청난 규모의 과학기술협력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7년의 경우 약 7억위안(840억원) 상당의 계약을 체결해 상당부분을 이미 집행했다. 협력 기업으로는 삼성과 LG를 포함해 도시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도요타 등 세계적 다국적기업이 망라되어 있다. 2010년이면 10년 동안의 누적분이 최소 50억위안(6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칭화대가 정부의 지원하에 추진한 샤오반(校辦) 기업, 즉 학내 기업의 창업도 괄목할 만하다.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돼 창업한 칭화쯔광(紫光), 칭화퉁팡(同方) 같은 기업들이 이미 전국 100대 IT기업에 진입했고, 지금 추세대로라면 두 회사는 수년 내에 전국 기업순위 100위권에 당당히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칭화대 내에서는 현재 100개 가까운 샤오반 기업이 영업활동을 시작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전자조판기술로 세계를 이미 석권했다는 평가를 듣는 베이다팡정(北大方正)의 베이징대학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모양새. 칭화퉁팡 리젠항(李健航) 사장의 말이다.

“샤오반 기업의 성공은 중국 과학교육의 성공이라고 봐야 한다.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각종 제도적 장치 마련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지난 수십년 간의 노력이 맺은 결정체다. 샤오반 기업은 앞으로 더 무서운 속도로 출현해 중국 과학기술업계의 핵심세력이 될 것이다.”

과학교육 진흥을 위한 중국 당국의 투자는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각급 학교 과학기술 교육에만 전체 과학기술 예산의 30%인 750억위안(9조원)이 투입됐거나 투입될 예정으로 있으며, 늦어도 2009년경에 1000억위안(13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교육 예산에 포함되지 않는 인민해방군의 관련 예산까지 더할 경우 규모는 최소한 1500억위안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이구이(海龜)의 귀환

과학교육 진흥에 매진해온 중국의 노력은 먼저 인력양성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1949년 10월1일 중국이 오성홍기를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내걸고 공식적으로 건국을 선포했을 때 보유하고 있던 과학기술 인력의 수치는 불과 700명. 당시 인구 5억에 비춰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한 수치였다. 고급 인재들이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피해 홍콩이나 대만 등으로 빠져나간 결과였다. 바늘과 가위를 만들 기술자조차 귀하다는 한탄이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한 당 원로들 사이에 은밀하게 오갔다.

그러나 지금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과학기술계 인력이 당시의 4만배가 넘는 3000만여 명을 넘어섰다. 당장 세계 수준에서 통할 수 있는 석·박사급 인력만 110만명에 이른다는 게 중국 과학당국의 공식통계다. 특히 이들 인력 중에는 해외유학 경험을 가진 우수 과학기술계 인력인 이른바 하이구이(海歸)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전국적으로 최소한 20만명 전후일 것으로 추산되는 하이구이는 2010년까지는 30만명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모두 석사나 박사후과정을 미국 실리콘밸리나 유럽의 IT 본산지 기업에서 보낸 현장인력이다.

바다를 헤엄쳐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海龜(바다거북)’로 불리기도 하는 이들은 자녀교육, 취업, 개인 창업 등 다양한 이유로 귀국한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 분야 인력을 금싸라기처럼 여기는 중국 당국의 눈물겨운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의 상당수가 정부 당국이나 학교의 적극적 지원으로 유학을 마친 인력이라는 사실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모국이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는데다 ‘은혜’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귀국을 망설일 수 없는 것이다. 미 CIA(중앙정보국)가 중국으로 가서는 안 되는 핵심인력 리스트에 올려놓았다는 리카이푸(李開復·47) 구글차이나 사장이 200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박차고 나와 모국으로 귀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원래 중국은 지난 수천년 동안 직업의 사회적 신분을 규정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글을 읽는 선비에 비해 과학기술자는 신분이 미천해서 상업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설사 관리가 된다 해도 승진에 한계가 있어 사회의 주류세력으로 활동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사농공상, 근공검학, 흑묘백묘

이런 상황은 청나라 후기로 오면서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건륭(乾隆)을 비롯한 황제들이 주로 과학기술에 기초한 화려하고 신기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눈이 뜨인 것이다. 이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청대 말기에 절정을 이룬다. 양무(洋務)운동, 무술변법(戊戌變法) 등의 개혁조치는 서양의 과학기술 도입과 교육의 필요성을 최우선으로 부르짖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외국 과학기술을 직접 체득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해외로 유학을 떠났다. 20세기 전반기를 살던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이른바 ‘근공검학(勤工儉學·외국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는 것. 특히 프랑스가 각광을 받았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러한 현상은 유물사관을 핵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건국과 어우러지면서 더욱 탄력을 받는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우선하는 국가에서 과학은 국가이념과 매우 잘 어우러지는 테마였다. 이 분위기는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훌륭한 고양이”라는 말로 유명한 개혁·개방의 총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등장한 다음부터는 아예 신앙처럼 굳어지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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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중국전문작가, 전 문화일보 베이징 특파원 mhhong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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