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호

“나는 여성” 주장한 남성의 여탕 출입에 발칵 뒤집힌 미국

[잇츠미쿡] 코리아타운 찜질방 사건, 내년 선거 앞두고 이념 논쟁 확산

  •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전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21-11-1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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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란 노출죄로 기소…트랜스젠더 권리 둘러싼 시위 열려

    • 찜질방 직원 “주법에 따라 입장 거부할 수 없었다”

    • 2005년 성적 지향 조항 들어간 운루 민권법

    • 알고 보니 해당 남성은 과거에도 노출죄 위반 전력

    • 연방대법원은 트랜스젠더 화장실 출입 판단 보류

    • 1년 뒤 미국 의회 선거 앞두고 논쟁 불씨 남아

    6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위 스파(Wi Spa)’에서 한 생물학적 남성이 여탕에 출입해 고객들이 항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위). 음란 노출죄로 기소된 대런 머라저(52)를 찾는 현상수배 전단지. [AP=뉴시스, LA 보안관 사무실 제공]

    6월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위 스파(Wi Spa)’에서 한 생물학적 남성이 여탕에 출입해 고객들이 항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위). 음란 노출죄로 기소된 대런 머라저(52)를 찾는 현상수배 전단지. [AP=뉴시스, LA 보안관 사무실 제공]

    지난 6월 미국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County) 코리아타운에서 트랜스젠더의 여탕 출입을 놓고 논란이 발생했다. 한국식 찜질방에서 생물학적 남성인 한 고객이 “나는 여성”이라고 밝히자 종업원이 여탕을 이용하도록 했는데 여성 고객들이 이에 항의한 사건이다. 그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며 전국적인 이슈로 번졌다.

    사건 직후 여러 명의 여성 고객이 경찰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증언했는데, 수사 과정에서 여탕에 출입한 인물이 캘리포니아주에 성범죄자로 등록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결국 검찰은 공공장소 음란 노출죄로 피의자를 기소했고, 사건이 법정으로 넘어가면서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남성의 몸을 갖고 있더라도 자신을 여성이라고 밝힐 경우 여탕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현행 캘리포니아주법을 둘러싼 논쟁의 불씨는 그대로 남았다. 내년 11월 미국 의회 선거를 앞두고 다시 한번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LA 찜질방 사건을 들여다봤다.

    LA 지역 한인들을 포함해 현지 주민에게도 잘 알려진 코리아타운 찜질방 ‘위스파(Wi Spa)’에서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 건 6월 23일. 현지 언론보도와 온라인에 공개된 동영상에 따르면, 찜질방을 이용하다 밖으로 나온 일부 여성 고객이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왜 여탕에서 남성이 벌거벗고 다니도록 허용하느냐”라며 거세게 항의하고 환불을 요구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한 남성이 여탕 탈의실에서 벌거벗고 발기 상태로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LA 코리아타운 찜질방에서 벌어진 일

    그러자 찜질방 직원은 “여탕에 들어간 그 고객이 스스로 여성이라고 밝혔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주법에 따라 여탕을 이용하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주법에 성정체성(sexual orientation)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해당 고객의 여탕 출입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대답이다. 화가 난 여성 고객은 찜질방 직원에게 항의하는 모습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촬영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렸고, 이 동영상이 급속히 퍼지면서 트랜스젠더 권리를 둘러싼 논란으로 확산됐다.

    성정체성으로 차별 금지한 ‘운루 민권법’

    찜질방 직원이 언급한 주법은 ‘운루 민권법(Unruh Civil Right Act)’이다.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장을 지낸 제시 운루(Jesse M. Unruh) 전 의원이 발의해 통과시킨 법이다. 이 법의 핵심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든 사업장에서 성이나 인종, 피부색, 종교, 혈통, 국적, 장애, 언어, 체류 신분 등의 이유로 차별하는 걸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차별 금지 사유 중 하나로 성정체성이 포함돼 있다. 생물학적인 성과 다르게 스스로를 인식하는 경우, 예컨대 이번 사건처럼 생물학적 남성인 고객이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밝힌다면 그 사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법 위반에 따르는 처벌도 엄격하다. 피해자는 자신이 입은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받을 수 있는데, 최소 배상 금액은 4000달러(480만 원)다. 사업장 측이 해당 조항을 위반하면 건당 최소 4000달러를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고객이 스스로 밝히는 성정체성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이번 사례처럼 생물학적 남성이 “나는 여성이니까 여탕을 이용하겠다”라고 말하면 직원이 거절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1959년 제정된 운루 민권법 차별 금지 기준에 성정체성이 추가된 건 2005년이다. LA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레즈비언 커플이 성정체성을 이유로 서비스 차별을 당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고등법원)이 레즈비언 커플의 손을 들어주면서 운루 민권법 조항에 성정체성이 포함됐다. 
    사건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둘러싼 논란으로 확산됐다. 찜질방 주변 도로에서 두 그룹의 시위대가 몸싸움을 벌이면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여성 고객이 찜질방을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쪽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쳤다. 트랜스젠더 권리를 옹호하는 시위대 일부가 상대편 시위대 여성을 밀쳐서 넘어뜨리는 일도 발생했다.

    사법 절차도 진행됐다. 찜질방 내 항의 동영상을 찍어 온라인에 게시한 여성 고객을 포함해 총 5명의 여성 고객이 경찰에 해당 인물을 처벌해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 여성 5명 중 한 명은 미성년자였다. 

    검찰은 문제가 된 인물, 52세 대런 머라저(Darren Merager)를 공공장소 음란 노출죄로 기소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과거에도 공공장소 음란 노출죄로 여러 차례 처벌받아 캘리포니아주에 성범죄자로 등록된 인물이라는 게 확인됐다. 머라저는 이번 사건 외에도 LA 지역 한 수영장에서 음란 노출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경찰은 그가 이전에도 트랜스젠더라고 주장하며 여성 탈의실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공개되면서 트랜스젠더 권리 논란은 가라앉았다. 

    트랜스젠더 고등학생의 화장실 사용 재판

    2015년 미국 버지니아주 고등학생 개빈 그림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 대신 제3의 화장실을 쓰도록 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트위터 캡처]

    2015년 미국 버지니아주 고등학생 개빈 그림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 대신 제3의 화장실을 쓰도록 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트위터 캡처]

    대중목욕탕 이용이 드문 미국에서 이번 사건은 코리아타운 내 찜질방이라는 상당히 이례적인 공간에서 벌어졌다. 미국은 연방 인권법에 따라 직장·학교 등 여러 장소에서 성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50개 주 중에서 캘리포니아주와 같이 상업시설 출입과 관련해 성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이 이뤄질 경우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별도로 존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유사한 논란은 미국 연방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 정체성을 가졌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버지니아주의 한 고등학생 개빈 그림(Gavin Grimm)이 제기한 소송이 대표적이다.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이 웹사이트에 공개한 재판 자료를 보면,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림은 학교 측과 상담을 통해 남학생으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학교 측은 그림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가 2학년 때부터는 남학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학부모들은 학교를 관할하는 카운티 교육위원회(우리나라의 교육청에 해당)에 학교의 처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다. 교육위원회는 해당 고등학교 측에 그림과 같은 트랜스젠더 학생이 이용할 별도의 화장실을 만들도록 했다.

    그림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5년 6월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교육위원회의 처분이 성(sex)과 젠더(gender)를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헌법과 연방교육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그림은 소송 과정에서 신체적으로 남성이 되기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고, 버지니아주에서 남성이라고 인정하는 신분증을 발급받았으며, 성전환 수술도 마쳤다.

    연방지방법원에 이어 지난해 8월, 버지니아주를 관할하는 제4 연방항소법원까지 그림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내 12개 연방항소법원 중 하나인 제4 연방항소법원은 메릴랜드,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웨스트버지니아, 그리고 버지니아주를 관할한다.

    판단 보류한 연방대법원, 불씨는 그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배경으로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그린 영화 ‘탠저린’의 한 장면. [IMDB 캡처]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배경으로 트랜스젠더들의 삶을 그린 영화 ‘탠저린’의 한 장면. [IMDB 캡처]

    연방항소법원 판결 직후 교육위원회는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이 이 사건을 심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용 권한은 애매한 상태로 남았다. 연방항소법원 판결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연방대법원 차원에선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보류하기로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제4 연방항소법원 판결의 영향을 받는 주들에서는 성정체성에 따라 학교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판결이 유효하지만, 이번 소송과 관련 없는 주에서는 계속해서 법적인 다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만약 추후 연방대법원이 비슷한 사건의 심리를 받아들여 대법원 차원의 판결을 하면, 이번 연방항소법원 재판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

    ‘LA 찜질방 사건’의 피의자 대런 머라저는 지난 9월 중순 ‘뉴욕 포스트’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기존에 진행 중이던 음란 노출죄 혐의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아 법원에서 두 번째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혐의와 재판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설령 최악의 인간일지라도 젠더(사회적 성)에 기반해 탈의실, 찜질방 같은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운루 민권법을 언급했다.

    “캘리포니아주 (운루)민권법은 성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트랜스젠더들이 탈의실이나 찜질방에서 옷을 벗고 있다는 이유로 음란 노출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법은 불충분하다.”

    상업시설에서 트랜스젠더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주법에는 고객의 성정체성을 확인하는 절차 등의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성 소수자 권리 보호가 우선이라는 취지에서 포함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게다가 레스토랑 이용 차별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조항이라는 점에서 한국식 찜질방 같은 시설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찜질방 여성 고객 5명은 생물학적 남성의 몸을 가진 고객이 여탕에서 나체로 다닌 것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고 피해를 봤다고 경찰에 증언했다. 음란 노출죄의 경우 누군가의 노출 행위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이 경찰에 출두해서 직접 증언해야만 처벌 절차를 밟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찜질방 여탕을 이용할 ‘여성 고객들의 권리’를 보호하라고 요구했다. 이념 논쟁이 펼쳐지는 미국 의회 선거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트랜스젠더의 찜질방 이용과 관련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LA찜질방사건 #트렌스젠더 #LGBTQ #미국의회선거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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