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호

MBC는 방송민주화 기본 원칙 유린했다

[강준만의 회색지대]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MBC의 비극④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3-03-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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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 채널 ‘하청’ 맡은 지상파

    • 선거 영향 미치려던 오보, 면책이 맞나?

    • MBC 행위는 “헌정 질서에 대한 도전”

    • 수십억 원 배상도 모자란 ‘현실적 악의’

    • 스스로 내켜서 저지른 불공정 보도

    • 당파적 인간으로 변질된 MBC 사람들

    • 尹 정권 출범 뒤에도 親문재명 방송

    • 야당처럼 정권과 맞장 뜨겠다는 공영방송

    * 신동아 2월호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MBC의 비극③’에서 이어집니다.

    2022년 1월 14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통화 녹취록’ 보도를 예고한 MBC를 항의 방문한 가운데, MBC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2년 1월 14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통화 녹취록’ 보도를 예고한 MBC를 항의 방문한 가운데, MBC 노조원들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성제 MBC 사장은 2022년 1월 3일 신년사에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고 소중하게 여겨왔던 MBC의 위상, 바로 ‘공영’이라는 정체성에 물음표를 찍으려는 움직임이 최근 다시 일고 있다”며 ‘공영방송 MBC의 비전’을 강조하고 나섰다. 박성제는 “민영방송이나 종편보다 훨씬 불리한 제도를 우리가 감내해 온 것은 ‘MBC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명제를 모두 숙명처럼 가슴에 새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성제는 뉴스, 시사 프로그램에 대해선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는 공영성의 목표가 아니라 기본”이라며 “이제 시청자들은 다양한 소수의견을 원하고, 시비를 가리는 팩트체크를 중요시하며, 권력을 비판하는 잣대가 올바른지 따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 저널리즘까지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민을 위한 공영방송 MBC’는 바로 이러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비전”이라고 밝혔다.

    ‘MBC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정말?

    ‘MBC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진심으로 한 말일까? 아니면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해본 소리일까? 아무래도 후자였던 것 같다. 자신이 7개월 전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인 검찰개혁 집회와 광화문에서 약간 맛이 간 사람들이 주장하는 종교적 집회를 1대 1로 보도하며 민심이 찢겨졌다”고 한 발언은 여전히 유효한가. 정치적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약간 맛이 간 사람들’로 폄하한다면, 그리고 MBC에 그런 판단과 평가를 내릴 권능이 있다고 믿는다면, 이건 권력의 언론 장악 이상으로 심각하고 두렵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보수 성향의 ‘대선 불공정보도 국민감시단’은 2022년 1월 첫째 주의 ‘문제적 프로그램 및 진행자’로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그 진행자 김종배를 선정했다. ‘감시단’은 “진행자 김종배 씨의 주장 내용은 공영방송 진행자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것이었으며, 심지어 프로그램 제작진은 사실관계를 조작·왜곡하는 방식까지 동원해 야당 대선 후보(윤석열) 이미지 흠집 내기에 집중했다”며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1월 3일 방송 제작진은 유튜브에 프로그램 녹화 동영상을 게재하면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얼굴을 보여주며 그 위에 ‘제가 김종인의 아바타입니까?’라는 자막을 달았는데, 윤석열은 실제로 해당 발언을 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진행자 김종배가 “저는 윤석열 후보의 발언에 대해 ‘제가 김종인의 아바타입니까?’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음에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윤석열이 마치 그런 발언을 한 것처럼 인식하도록 오해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감시단’은 1월 6일 김종배가 윤석열의 선거대책위원위 해체 결정을 ‘독재정권 시절의 비상계엄령’에 빗대면서 “어제 윤석열 후보의 결정은 ‘김종인-이준석-윤석열 삼두체제가 아니고, 이제는 황제 체제로 가기 위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 저는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비상식적 비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진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타락했나”

    2022년 1월 20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의 ‘7시간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법원에 신청한 가처분 사건의 심문이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양태정 변호사, 이명수 기자(왼쪽부터)가 심문 기일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2022년 1월 20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와의 ‘7시간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지 못하게 해달라며 법원에 신청한 가처분 사건의 심문이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양태정 변호사, 이명수 기자(왼쪽부터)가 심문 기일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1월 12일 오마이뉴스를 통해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의 녹취록이 한 방송사를 통해 공개될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후 유튜브 기반 온라인 매체 서울의소리 기자가 통화를 녹취했고 해당 녹취는 MBC에 전달된 것이 드러났다. 국민의힘은 “김 씨 동의를 얻지 않은 불법 녹취”라며 방송이 예정된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의 김건희 통화 녹음 파일 방송을 금지해 달라고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에 나섰다.

    법원이 일부 내용 방송을 허용한 것과 관련, 진중권은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MBC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그의 배우자 김혜경 씨의 녹음 테이프가 있다. 공정한 언론사라면 그것도 같이 틀어라”라고 했다. 그는 “그것도 전 국민이 공인이니까, 대통령이 될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인성을 갖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도 했다.

    이어 진중권은 “취재 경위가 굉장히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를 했던 사람이 김건희 씨를 옹호하는 기사를 썼는데, 그 사람의 성격상, 해당 매체 성격상 도저히 쓸 수 없는 거다. 그다음에 ‘열린공감TV’ 측에 전화로 ‘이게 김 씨를 낚기 위해서 미끼를 던진 거니까 이해해 달라’고 말을 했다는 거다”라며 “그러니까 속이고 도와줄 것처럼 접근해서 사적인 신뢰 관계를 맺고, 오십 몇 차례에 걸친 통화를 한 것”이라고 했다. 또 “김 씨는 자기를 도와줄 거라고 믿고 얘기한 거고 사적인 통화를 한 건데, 지금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분명하다”며 “취재 윤리에 위배되고, 인간적 도리도 아니다. 비열하고 저열한 짓”이라고 했다.

    진중권은 “공영방송인 MBC에서는 이걸 받으면 안 되는데 받아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이 자꾸 이런 짓을 하다가 사실은 국민들한테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짓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화가 난다. 꼭 이렇게 해야 되나”라며 “이른바 진보 진영이라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타락했나. 굳이 이렇게 해야만 이길 수 있는 후보라면 정말 그게 제대로 된 후보인가”라고 했다.

    1월 16일 방영된 MBC ‘스트레이트’는 시청률 17.2%를 올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시기 최고 시청률은 3.2%였다고 하니, 5배가 넘는 시청률 상승을 기록한 셈이었다.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에는 다음 날 오전까지 200여 건의 의견이 올라왔다. “알맹이가 없다. 수박 겉핥기냐” “이럴 거면 왜 방송했나” 등 방송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내용이 없었다는 불만을 표현하는 글이 주를 이뤘다.

    그럼에도 문제의 녹취록이 이후 MBC의 ‘윤석열 때리기’를 위한 풍성한 소재가 된 건 분명했다.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김건희 녹취록’ 파문… 윤석열 ‘어찌됐든 심려 끼쳐 죄송’”(1월 17일), “고발사주는 홍준표·유승민 공작… 안희정은 ‘문빠’가 죽여”(1월 17일), “김건희 ‘돈 안 줘서 미투’… ‘2차 가해 사과하라’”(1월 17일), “김건희 ‘도사들과 대화 좋아해’… 선대본부에도 무속인 참여?”(1월 17일), “‘여기서 지시하면 캠프 조직’… 코바나는 ‘서초 캠프?’”(1월 21일), “‘너는 검사 팔자다’… 고비마다 점술가 조언?”(1월 22일) 등의 리포트를 내보냈으니 말이다.

    MBC가 저지른 이 녹취록 방송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일반적으로 보도 금지 가처분과 같은 ‘사전억제(prior restraint)’는 언론 자유를 해칠 수 있으므로 언론이 결사반대하고 법원이 가급적 언론의 손을 들어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건 언론사 자체 취재 기사일 경우다. MBC는 사실상 편집과 배포의 역할만 맡았을 뿐 알맹이인 녹취록은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로부터 건네받은 것이었다.

    유튜브에 압도당하는 지상파방송의 몰락을 시사한 상징적 사건인가. MBC가 지상파의 자존심을 버리고 작은 유튜브 채널의 ‘하청’ 역할을 맡은 건 겸손으로 이해하기로 하자. ‘김건희 녹취록’ 논란은 김건희와 윤석열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기에 이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도 무시하자. 중요한 건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다.

    MBC가 아니어도 어차피 다른 매체들이 녹취록을 방송할 텐데 왜 굳이 공영방송이 ‘두 개로 쪼개진’ 공론장의 한복판에 사실상 어느 한쪽을 편드는 역할로 뛰어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게 6년 전 MBC 기자들이 그토록 울부짖었던 방송민주화인가. 방송민주화는 진보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보수는 반드시 이겨야 하거나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MBC 방송 강령은 ‘사회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불편부당한 공정방송에 힘쓴다’고 돼 있지 않은가. 처음에 천명한 원칙과 정신에 충실한 것이 방송민주화다. MBC는 이 기본 원칙을 유린했다.

    ‘최경환 오보’는 단지 경솔했기 때문?

    2022년 3월 17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경기 안양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하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2020년 4월 1일 “‘최경환 측 신라젠에 65억 투자 전해 들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최 전 부총리 측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뉴스1]

    2022년 3월 17일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경기 안양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하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2020년 4월 1일 “‘최경환 측 신라젠에 65억 투자 전해 들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최 전 부총리 측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뉴스1]

    MBC에는 성찰의 뜻이 전혀 없었다. 방송민주화 투사들이 핵심 역할을 맡은 MBC는 운동권 투사들이 핵심 역할을 맡은 문재인 정권의 독선과 오만을 놀라울 정도로 빼박았다. 선악 이분법에 중독된 나머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조차 전혀 깨닫지 못했고, 그래서 성찰이나 사과와는 거리가 먼 방종을 일삼았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신라젠에 65억 원을 차명 투자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의 오보는 어찌 됐던가. 최경환 측은 2021년 5월 MBC 기자 2명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서를 낸 데 이어 8월 3일에도 해당 재판부(서울고법 형사30부)에 “허위 보도를 한 MBC 기자들을 기소해 달라”며 재차 의견서를 제출했다.

    당시 MBC는 이 65억 원 차명 투자 의혹을 보도하며 ‘후속 보도’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 MBC 기자들은 2020년 5월 한국기자협회에 이른바 ‘검언 유착’ 보도 관련 ‘이달의 기자상’을 신청하면서 공적서에 “최경환 전 부총리와 그의 지인들이 60억 원을 신라젠 전환사채에 투자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후속 보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의미한 취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간 ‘후속 보도’는 없었다.

    최경환은 장모·신모 MBC 기자를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 판결이 2022년 1월 25일에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9단독 김선희 판사는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으로 보도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점”을 인정해 MBC 기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MBC 보도가 ‘상당히 경솔’했다고 비판했다.

    김선희는 “피고들(MBC 기자들)은 보도 신빙성에 관한 객관적 자료가 전혀 없는데도 이철의 전문 진술에만 전적으로 의존해 보도했다”며 “원고 이름의 투자가 없었음은 명백하게 확인되고, 그런 내용은 이철이나 신라젠으로부터 전환사채 인수약정서를 확보해 확인해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기에 이 사건 보도 내용이 곧바로 보도해야 할 만큼 사안의 긴급성도 인정되지 않는 점을 더해 보면 피고들이 적절하고 충분한 진위 조사 없이 보도한 것은 상당히 경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MBC의 이런 경솔함에 대해 김도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도대체 MBC는 뭐가 그리 급해서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일단 의혹 제기부터 하고 본 것일까”라고 물었지만, 그 이유를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을 게다. MBC의 ‘최경환 오보’는 단지 경솔했기 때문인가. 단언할 순 없지만, 그간 MBC가 보인 정치적 행태로 보자면 보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경환이 항소하지 않아 재판은 2월 18일 확정됐다지만, 이런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둔 시점에서 유력 언론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매우 무책임하고 경솔한 오보를 한다면, 그 영향에 대한 평가 없이 단지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책해 줘도 괜찮은가. 그런 의미가 전혀 없는 보도는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상식일 텐데 말이다.

    이건 그냥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매우 심각한 사건이다. 생각해 보라. 4·15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둔 3월 31일 MBC는 ‘단독’으로 이른바 ‘검(檢)·언(言) 유착’ 의혹을 제기했고, 다음 날인 4월 1일 MBC는 또 ‘단독’ 타이틀을 걸고 최경환 의혹을 톱뉴스로 방송했다. 선거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게 틀림없건만, 둘 다 엉터리이거나 매우 부실한 오보였다는 게 법원에 의해 입증됐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에 그게 무슨 소용인가.

    제21대 총선(2020년 4월 15일)의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49.9%, 미래통합당 41.5%로 두 정당의 격차는 8.4%포인트에 그쳤지만, 의석수 기준으론 민주당이 거의 더블스코어 압승을 거뒀다. 이후 전개된 민주당 입법 독재의 폐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MBC가 저지른 일련의 행위는 “헌정 질서에 중대한 도전”이 아니고 무엇인가.

    MBC 보도는 그 어떤 기준으로 보건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국내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1964)에서 비롯된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 개념을 잠시 살펴보자. 미국에선 명예훼손소송 시 피고의 과실을 입증함에 있어서 사인(私人)은 피고의 부주의를 입증하면 되지만, 공인(公人)은 피고의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 ‘현실적 악의’는 “허위(거짓말)의 인지 또는 진실에 대한 무모한 부주의”를 뜻한다.

    ‘무모한 부주의’에 대한 3대 판단 기준은 ①충분한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쳤는가 ②그 기사가 긴급한 것인가 ③기사 출처가 신뢰할 만한가 등이다. MBC 기사엔 ‘현실적 악의’가 있었으며, 그것이 입증됐다고 볼 수 있는 소지는 다분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사건을 민주당이 그토록 원했던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표 사례로 삼아 MBC에 수십억 원을 배상하게끔 해도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보자면 모자랄 일이었다.

    MBC의 ‘尹 흠집 내기, 李 감싸기’

    1월 25일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1월 17일부터 23일까지 MBC 뉴스데스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김건희 씨 녹취 파일 보도에 열을 올렸다”며 “김건희 씨 관련으로 10개나 되는 리포트를 쏟아냈던 MBC 뉴스데스크는 이재명 후보의 새로운 가족 욕설 관련으로는 18일 당일 단 40초만 방송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윤석열 후보 측은 흠집 내기로 31분, 이재명 후보는 감싸기로 40초 방송하는 것이 균형 잡힌 공정 방송인지 묻고 싶다”며 “이 정도면 편파 방송을 넘어 불법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1월 28일 SBS ‘8뉴스’는 ‘사모님 약 대리 수령 등 사적 심부름해’라는 제하의 보도에서 이재명의 배우자인 김혜경에 관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혜경이 경기도청 공무원을 개인 비서처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이었다. 다음 날인 1월 29일 TV조선 ‘뉴스7’은 ‘이재명 가족 심부름했다’… ‘허위사실’이라는 제하의 리포트에서 김혜경의 공무원 사적 유용 의혹을 제기했다. 1월 30일에는 SBS 후속 보도가 이어졌고, 1월 31일에는 채널A가 단독 보도했다. 채널A는 다음 날인 2월 1일에도 보도를 이어갔다.

    반면 김건희의 의혹 보도에 적극적이던 MBC는 내내 침묵했다. MBC 제3노조는 2월 1일 성명을 통해 MBC가 김건희 녹취록을 집중 보도한 사실을 강조하며 “MBC는 왜 김혜경 씨 의혹은 보도하지 않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다음 날인 2월 2일 MBC 뉴스데스크가 김혜경 의혹을 ‘의전 논란’으로 표현하고 보도하자 MBC 제3노조는 “기사를 쓴 김모 기자는 도지사 부인이 공무원을 시종처럼 부린 게 ‘의전’이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며 “의전 논란이 무슨 뜻이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 제3노조는 “법인카드 유용은 갑질을 넘어 범죄행위”라고 전제하고 “법인카드 유용은 ‘회계 논란’으로 부를 건지 묻고 싶다”고 힐난했다. 아울러 “KBS 뉴스9에서 법인카드 유용 문제를 보도한 날에도 MBC 뉴스데스크는 계속 침묵할 뿐이었다”고 비판했다.

    2월 9일 MBC 뉴스데스크는 이날 김혜경이 자신 관련 논란에 대해 사과한 기자회견을 첫 리포트로 보도하면서 제목을 “김혜경 ‘과잉 의전’ 사과 ‘공사 구분 못 했다… 선거 후라도 책임’”이라고 표현했다. 기사 본문에서는 “과잉 의전 논란이 법인카드 유용과 갑질 의혹으로 확산되자 공개적 사과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MBC 제3노조는 “제목에는 ‘과잉 의전’, 기사에는 ‘법인카드 유용’”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기자가 바라보는 본질은 ‘법인카드 유용과 갑질 의혹’이었지만 제목은 엉뚱하게도 김혜경 ‘과잉 의전’ 사과였다”며 “기사 내용과 제목이 다르다”고 비판했다. 제3노조는 “기사는 기자가 쓰지만 제목은 보도국 수뇌부의 판단에 따라 정한다”며 “기자 스스로 ‘의혹이 법인카드 유용으로 확산됐다’고 써도 수뇌부의 시선은 여전히 ‘과잉 의전’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인카드를 유용해 소고기를 사 먹고, 공무원에게 속옷 정리를 시키는 게 무슨 의전이냐”며 “MBC 보도국의 수뇌부는 언론인이 아니라 이재명 부부의 ‘대변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험하기 어려운 ‘편파’ 방송”

    2022년 10월 13일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가운데, 이 장면이 MBC 카메라에 담기고 있다. [뉴스1]

    2022년 10월 13일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인사말을 하는 가운데, 이 장면이 MBC 카메라에 담기고 있다. [뉴스1]

    제20대 대통령선거일(3월 9일)이 다가오면서 여당 대선후보 유세 현장만 청중이 많아 보이게 보도하는 고전적 수법이 MBC에 등장했다. 3월 2일 MBC 제3노조는 ‘야당 후보 유세 화면에 청중이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이재명, 윤석열 후보가 최대 승부처인 서울 유세에 들어갔다. 3월 1일 이 후보는 명동에서 윤 후보는 신촌 등지에서 유세했다”며 “MBC 뉴스데스크는 이를 각각 나누어 보도했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 쪽 리포트 화면이 이상했다. 이날 윤 후보의 신촌 유세장에는 청중이 구름처럼 모였다. 그런데 MBC 화면에 그 청중이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독재국가에서나 벌어지는 줄 알았던 일이 대한민국 공영방송사에서 일어난 것이다. 정치집회 보도는 참여 인원을 최대한 화면에 담는 게 원칙이다. 그 원칙을 어기도록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며 “청중이 적었던 윤석열 후보의 중앙대 유세장 보도 때는 부감 샷과 청중 풀 샷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훨씬 청중이 많았던 윤 후보 신촌 유세장은 카메라 앵글이 거의 무대로만 향해 있었다. 교묘한 편파 보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이런 짓을 방송 경력이 얼마 안 되는 취재기자가 저질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며 “누구의 지시인가”라고 물었다.

    3월 3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하고 ‘국민통합정부’를 함께 꾸려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민주당은 “자리 나눠먹기형 야합”이라고 맹비난했다. MBC는 어느 쪽이었을까. MBC뉴스의 제목은 “윤-안, 단일화 선언… ‘자리 나눠먹기 야합’”이었다. 제3노조는 성명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한 정치부 배○○ 기자의 리포트는 낮 12시 뉴스와 낮 2시 뉴스외전, 5시 뉴스에 반복적으로 방송됐다. 설마 이렇게 큰 뉴스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편파적 제목을 달 수 있을까 의심했으나 사실이었다”라고 했다.

    노조는 “보통 공영방송의 경우 선거 국면에서 이렇게 큰 뉴스가 발표되면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단어를 쓴 뒤 여야의 반응을 하나씩 넣어주며 제목을 단다”며 “방송된 것처럼 여당 쪽 반응 중에서 ‘야합’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제목을 다는 것은 경험하기 어려운 ‘편파’ 방송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정도 되면 언론이라 할 수 없다. 이렇게 방송되는 것을 방치한 MBC 뉴스는 후일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오만한 MBC의 주제넘은 방종

    대선 이틀 전인 3월 7일 MBC 뉴스데스크는 대선 관련 보도 9건 중 4꼭지를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가 공개한 이른바 ‘김만배 녹취’ 보도에 할애했다. 투표를 이틀 남겨둔 시점에, 대장동 주범의 일방적 진술이 담긴 육성(肉聲)을 “야당 후보 검증”이라며 튼 것인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재명은 난 놈이야. 욕 많이 했지’‥ 공익환수 비난한 김만배”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서 ‘꼭 이재명에게 표를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시청자가 많았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게 박성제가 그해 연초에 비전이라며 역설한 ‘민주주의와 시민을 위한 공영방송 MBC’의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였나. 군사독재하의 공영방송이 정권의 개가 된 것은 “쫓겨나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라도 있었기에 시민들은 방송인들을 그리 욕하진 않았다. “나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역지사지의 원리가 작동했을 게다.

    그러나 MBC의 2021~2022년 대선 불공정 보도는 그런 먹고사는 문제와는 무관했다. 자신들이 스스로 내켜서 저지른 일이었다. 내부적으로 압박은 좀 있었을망정 그 압박이라는 게 고문을 가하거나 밥그릇을 박탈하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음은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어떤 심각한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MBC는 스스로 정당과 같은 당파적 집단이 돼버린 것이다.

    3월 9일 대선은 간발의 차이로나마 윤석열의 승리로 끝났다. MBC가 져야 할 ‘엄중한 책임’ 추궁은 가능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5월 10일이면 대통령이 바뀌지만 방송사 경영진과 지배구조는 그대로여서 방송은 바뀔 수가 없게 돼 있었다. 2021년 말 새로 임명된 KBS 사장은 임기가 2024년 12월까지이고, MBC 사장도 2023년 2월까지 1년이 남아 있었다. 방송사 경영진을 바꿀 수 있는 KBS 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은 2024년 8월까지 KBS·MBC를 관리 감독하게끔 돼 있었다. 즉, 문재인과 민주당 추천 인사가 다수(多數)인 이사회가 여전히 문 정권 때처럼 공영방송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당파적 인간으로 변질된 MBC 사람들이 믿는 구석이었다. 그래서 MBC는 윤석열 정권 출범 후 거의 10개월간 이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친(親)문재명 방송’으로 기능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다. 사장 박성제는 연임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어떤 이들은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대한민국이 후진국으로 전락했고 특히 언론 자유에서 그렇다고 아우성치지만,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한두 달도 아닌 10개월간 정치적으로 정권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야당처럼 맞장을 뜨겠다고 달려드는 공영방송사를 가진 나라가 한국 이외에 이 지구상 어디에 있는가.

    공영방송사에 그런 주제넘은 방종을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못나고 무능한 정권을 가졌기 때문에 한국이 졸지에 후진국이 됐다고 주장한다면 동의할 수도 있다. 사실 윤석열 정권의 지지율은 너무 낮았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이번 정권, 특히 윤석열에게 있다. 스스로 정치적 자살골을 넣거나 자해를 저지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낮은 지지율을 보면서 ‘윤석열 퇴진’이나 ‘윤석열 탄핵’이 가능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세력이 생겨난 게 아닌가. MBC가 언론으로선 해선 안 될 당파적 작태를 저질러놓고도 고개를 빳빳이 쳐들면서 큰소리를 칠 정도로 오만해진 것도 윤석열 정권이 곧 무너질 정권처럼 보였기 때문일 게다.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MBC의 맹렬한 반(反)정권 투쟁 활약은 다음 호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 4월호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MBC의 비극⑤’로 이어집니다.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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