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코로나로 경마 6개월 멈춘 사이 ‘불법 경마 사이트’는 7조 매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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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0-11-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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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로 경주마 멈췄지만 불법 경마는 성행

    • 불법 경마 시장규모 마사회 매출 2배 추정

    • 온라인 마권 판매하면 불법도박 자연 감소

    • 불법 경마로 인한 1조 원 조세포탈 방지

    • 파산 위기 몰린 말 산업 보호

    • 한국 제외한 주요 국가 모두 비대면 마권 판매 허용

    6월 21일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에서 무관중 경마가 열렸다. [뉴스1]

    6월 21일 경기 과천시 렛츠런파크에서 무관중 경마가 열렸다. [뉴스1]

    “경마장보다 여기(도박 사이트)가 훨씬 나아요. 베팅도 무제한으로 하실 수 있고 게임(돈을 거는 방식)도 다양하니까 돈 버실 생각이라면 여기서 하시는 편이 낫죠.” 

    9월 28일 인터넷 경마 게임이 가능한 불법 도박 사이트에 가입하자 기자에게 걸려온 전화 내용의 일부다. 불법 도박 사이트에 가입하면 도박 판돈을 입금할 계좌를 입력하게 돼 있는데, 이때 실명을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회원 가입 신청 후 10분이 지나자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기자에게 관심 있는 도박의 종목을 물었다. 가입자가 실제 도박을 할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는 경계심 가득한 낮은 목소리였으나 기자가 “경마 베팅도 있느냐”고 묻자 이내 목소리 톤을 올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른 경마 사이트는 프로그램으로 게임을 돌려서 경마를 합니다. 우리(도박 사이트)는 달라요. 해외 경마 중계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베팅할 수 있습니다.” 

    불법 경마업자들이 국내 경마를 놔두고 굳이 해외 경마 중계를 통해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올해 4월~10월 6개월간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장 3곳(과천, 부산, 제주)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6~8월까지 관중 없는 경마가 진행될 당시에도 베팅을 하기 위한 마권은 어디서도 살 수 없었다. 한국마사회법 제6조가 경마장에서의 대면 구매만 허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마권 판매 없는 무관중 경마가 계속되면서 마사회는 큰 손실을 입었다. 견디다 못한 마사회는 결국 9월부터 무관중 경마조차 중단했다. 이후 계속 경마장은 비워져 있었다. 마사회는 10월 30일부터 경마를 재개했다. 기획재정부의 ‘2020~2024년 재정 관련 자료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자료에 따르면 마사회는 올 한 해 3448억3700만 원의 순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각 경마장이 마권 판매를 쉬는 동안 불법 경마 도박 사이트는 쉼 없이 돌아갔다. 경마 게임 프로그램을 이용해 베팅을 하는 곳부터 해외 경마 중계를 통해 도박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가입한 불법 도박 사이트는 총 5곳으로, 이 중 4곳이 불법 해외 경마 중계나 경마 게임 프로그램을 돌려서 하는 경마 관련 도박 사이트였고, 나머지 한 곳은 불법 스포츠토토 도박 사이트였다.

    현실 반영 못하는 사감위 불법 경마 추산치

    마사회는 현재 국내 불법 경마 시장규모가 마사회 연매출의 2배가량 될 것으로 추정한다. 마사회는 불법 경마를 줄일 최선책이 비대면 마권 발행(인터넷 발행)을 허락해 무관중 경마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식적으로 경마장 경마가 시작되면 불법 경마 수요는 자연스럽게 줄고, 세입도 늘어나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논리다. 

    마사회의 추산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불법 경마 시장규모는 13조5249억 원으로, 같은 해 마사회 매출 7조7459억 원의 두 배에 가까웠다. 마사회의 불법 경마 시장 추산 기록은 2016년이 마지막이다. 이후로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가 불법 경마를 포함한 불법도박 시장 전체 규모를 추산하고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휴대전화로도 불법도박 사이트에 접속해 도박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불법 경마 신고와 단속이 늘고 있는 만큼 불법 경마 규모도 4년 전에 비해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경마가 멈춘 6개월 간 불법 온라인 경마가 적어도 7조 원 넘는 매출을 거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마사회의 추정과 달리 사감위는 불법 경마가 줄어드는 추세라는 분석을 내놨다. 사감위가 2020년 6월 발표한 ‘2019년 사행산업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불법도박 시장 전체 추산액은 81조5474억 원. 이 중 경마 규모 추산액은 6조8898억 원이다. 마사회의 2016년 불법 경마 규모 추산액의 절반 정도다. 같은 기간 마사회의 매출은 7조3572억 원이다. 

    마사회 측은 “사감위의 불법 경마가 줄어들었다는 추산 결과는 집계 방식 때문에 생긴 오차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감위는 불법도박 시장에서 돈을 걸어본 사람들을 조사해 불법도박 시장규모를 가늠한다. 전체 시장규모를 측정한 뒤 이 중 불법 경마를 해본 사람의 비율을 구해 불법 경마 시장규모를 추산하는 방식이다. 

    마사회는 불법 경마에 대한 신고 및 단속 내역을 통해 불법 경마 시장규모를 측정한다. 수사기관의 단속을 받은 불법 경마업체 매출 규모를 기준으로 검거되지 않은 다른 업체의 수를 감안해 전체 시장규모를 추산한다. 마사회 관계자는 “사감위의 조사는 불법 경마 이용자들에게 불법 경마 시장규모를 묻는 방식이라 과소 측정 가능성이 있다. 실제 불법도박을 했더라도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감위 관계자는 “과다 계상을 막기 위해 불법 도박 이용자 설문만을 참조해 불법 도박 규모를 추산하고 있다. 게다가 경마는 사양산업이라 불법도박 시장에서 중요도가 높지 않다”고 밝혔다. 

    경마가 도박업계의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합법 도박 중에는 경마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사감위의 집계에 따르면 2019년 국내 합법사행산업(도박) 매출 22조6507억 원 중 경마의 비율은 32%(7조3572억 원)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스포츠토토로 22%(5조1099억 원), 복권이 21%(4조7933억 원)의 비율로 3위다.

    불법 경마 신고 건수는 3년간 늘어

    불법 경마업체의 광고. 해외 경마를 중계하는 방식으로 마권을 판매한다. [뉴시스]

    불법 경마업체의 광고. 해외 경마를 중계하는 방식으로 마권을 판매한다. [뉴시스]

    마사회가 다시 2019년 불법 경마 시장 추산에 나선다면 2016년에 비해 높은 수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불법 경마에 대한 신고 및 단속 건수가 늘었기 때문. 마사회 집계에 따르면 2016년 불법 경마 신고 건수는 총 266건. 2019년에는 309건까지 늘었다. 단속 건수도 같은 기간 107건에서 134건으로 늘었다. 2020년에는 불법 경마에 대한 신고 및 단속 건수가 더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올해 8월 한 달 신고 건수가 71건, 단속 건수는 28건이다. 이 같은 수치를 바탕으로 마사회는 지난해 국내 불법 경마 시장규모를 14조 원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불법 경마 단속 건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면 2016년에 비해 지금 불법 경마 규모가 더 클 것”이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도 “사행성게임, 온라인 즉석게임에도 경마의 규칙을 차용하거나 이와 유사한 게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체 불법도박 시장에서 불법 경마를 주로 하는 업체의 비율은 낮겠지만 경마나 이와 비슷한 게임까지 생각하면 불법도박 시장에서 경마의 비율은 (사감위가 측정한 비율보다) 높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불법 경마는 조세포탈의 문제도 있다. 일반 경마는 마권을 팔 때 16%(레저세 10%, 지방교육세 4%, 농어촌특별세 2%)의 세금이 부과된다. 마권을 한 장 팔 때 마사회는 마권 가격의 4%를 이익금으로 가져간다. 이 이익금 중 70%는 한국마사회법 42조에 의거해 축산발전기금으로 쓰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이 세율과 사감위의 불법 경마 추산액을 자료로 집계한 결과, 지난해 불법 경마로 인한 조세포탈액은 약 1조1018억 원에 달한다. 

    마사회의 경마 중단으로 경마 수요가 전부 불법 경마로 넘어가면 축산 농가도 손해를 본다. 가장 큰 손해를 본 곳은 경주마를 기르는 말 농가다. 제주마생산자협회에 따르면 9월 8일 실시된 국산 경주마 경매에서 73마리가 상장됐고 3마리가 거래됐다. 낙찰률은 4.1%로 2019년 7월 실시된 경매(24.6%)에 비해 20.5%포인트 낮아졌다. 평균 낙찰가도 같은 기간 1347만 원 하락한 2183만 원을 기록했다. 일반 축산 농가도 손해를 볼 공산이 크다. 마사회 이익의 70%가 축산발전기금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2019년 수익을 기준으로 마사회가 낼 축산발전기금은 총 1758억 원. 2020년에는 이익이 줄어 축산발전기금도 703억5000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마사회는 불법 경마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비대면 마권 발매를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법 경마 수요를 합법적인 경마로 끌어와야 한다는 의미다. 마사회 관계자는 “비대면 마권 발매를 허가하면 불법 경마로 향하는 수요를 일반 경마가 흡수할 수 있다. 일반 경마는 한 사람이 최고 10만 원까지만 마권을 구매할 수 있다. 구매 제한액이 있으니 마권을 무제한으로 구매할 수 있는 불법 경마보다 도박 중독에 이를 가능성이 낮다. 경마를 합법화한 다른 나라도 이 같은 측면을 고려해 비대면 마권 발매를 허가했다”고 말했다. 비대면 마권 발매 방식은 크게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마권 판매와 ARS를 사용한 유선 마권 판매로 나뉜다. 

    현재 국가가 나서서 경마를 허가하고 관리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8개국이다. 이 중 온라인 마권 판매가 불가능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최근 온라인 마권 판매를 허가한 곳은 프랑스와 싱가포르다. 양국은 2010년 비대면 마권 판매를 시작했다. 이 두 나라가 비대면 마권 판매를 허가한 이유도 불법 도박을 줄이려는 데 있다.

    비대면 마권 판매 허용하니 불법도박 줄었다

    2007년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 에리크 뵈르트(Eric Woerth)는 “온라인 비대면 마권 발매 허가가 필요하다”며 “불법도박 방치는 성장 동력을 가진 시장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 주장했다. 싱가포르 내무부도 2010년 “예외 없는 전면적 온라인 베팅 규제는 오히려 그 수요를 불법 시장으로 유입시킨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며 비대면 마권 판매를 허가했다. 

    실제로 온라인 마권 판매를 허용한 나라는 한국에 비해 불법도박의 비율이 낮다. 글로벌 도박산업 분석·컨설팅 업체인 GBGC(Global Betting & Gaming Cunsultant)의 ‘2018~2023년 도박시장 글로벌 전망 및 예측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합법 도박 시장규모는 2억3450만 달러. 불법도박 시장규모는 9억170만 달러로 전체 도박 시장에서 불법도박 비율이 385%에 달한다. 합법 경마를 운영하는 나라 중에는 최하위였다. 그 바로 앞이 홍콩으로 합법 도박 시장규모가 13억9370만 달러, 불법도박 시장규모가 10억2740만 달러로 불법도박 비율이 73.7%였다. 일본과 프랑스, 영국의 전체 도박 시장 대비 불법도박 비율은 각각 41.6%, 27.4%, 1.83%에 불과했다. 

    국회도 비대면 마권 판매 도입에 적극적이다. 8월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온라인 마권 발매를 허용하는 취지의 한국마사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9월과 10월에는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법 개정안을 내놨다. 

    축산업계도 비대면 마권 발매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축산산업과 경마산업 종사 단체로 구성된 ‘축산경마산업비상대책위원회’는 10월 6일 ‘온라인 마권 발매의 조속한 입법 시행’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발표하고 이를 정부 및 관련 부처에 전달했다. 이들은 탄원서를 통해 “중단된 경마로 축산경마산업 관련 종사자 대부분은 실직, 폐업 및 파산으로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온라인 마권발매 시행 법률을 하루빨리 입법해 축산경마산업의 기반이 붕괴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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