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호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의 新천재론

박태환, 김연아, 윤준상, 박세은…‘다중지능 하모니+ 광적 몰입+김칫독 발효’

  • 문용린 서울대 교수·교육학, 전 교육부 장관 moonyl@snu.ac.kr / 권재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confetti@donga.com / 일러스트·윤진경

    입력2007-11-08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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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교육은 개성과 창의성을 억누른다고 비판받는다. 그럼에도 최근 여러 분야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불꽃같은 천재성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어떻게 ‘천재도 바보로 만든다’는 열악한 조건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을까. 소질과 재능을 충분히 발효시켜 ‘21세기 新천재’로 부상한 이들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의 新천재론
    21세기 新천재론

    그동안 사람들은 보통 사람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 ‘신동(prodigy)’ 또는 ‘천재(genius)’란 말을 명확한 구분 없이 사용해왔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학자들은 이 두 단어를 구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신동이란 ‘타고난 능력’이 비범한 사람을 가리키고, 천재란 ‘업적’이 비범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 김시습과 이율곡 같은 이는 여섯 살 안팎의 나이에 경탄할 만한 한시(漢詩)를 지었고 예지가 번득이는 재치를 발휘했다고 한다. 이런 재주는 학습과 경험의 덕분이라기보다 타고난 능력의 특출함 덕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시기의 김시습과 이율곡은 천재라기보다 신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이에 비해 뉴턴이나 갈릴레이,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보통 사람이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어린 시절 그들의 타고난 능력이 어떠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그들의 경탄할 만한 업적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을 신동이라 부르기보다는 천재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신동은 꽤 있었지만 천재는…



    우리나라에도 신동은 많았다. 그러나 천재는 희귀했다. 어릴 적에 특출한 재주를 보인 사람은 꽤 있었으나 그 능력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는 TV나 신문 등 매스컴에 소개된 여러 신동을 기억한다. 기억, 암산, 한자, 영어 단어 등에서 놀랄 만한 능력을 과시한 어린이가 많았지만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낸 사람은 매우 드물다. 즉, 신동은 꽤 있었으나 천재는 없었다.

    교육학의 긴 역사 속에서 천재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카를 비테다. 1800년 독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한 살도 되기 전에 글자를 읽고 썼으며, 일곱 살 때까지 모국어(독일어)는 물론 라틴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아홉 살에 당시 독일 최고 명문인 라이프치히대에 입학했고, 열여섯에 법학박사가 되어 베를린대 교수로 취임했다.

    분명 카를 비테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고 그를 신동이라 일컫는 데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능력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해 1000여 쪽의 ‘양육 노트’에 남겨 놓았다.

    그럼 카를 비테는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지금 그에게로 영광을 돌릴 어떤 업적도 알지 못한다. 자랄 때는 대단한 신동이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그를, ‘빛을 보지 못한 천재’라고 부를지언정 ‘천재’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 점은 아인슈타인과 대비된다. 열여섯 살 이전의 아인슈타인에게서 특출한 능력을 발견하거나 감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 과학의 전체 패러다임을 바꾸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신동은 아니었지만, 그가 성취해낸 위대한 업적은 결과적으로 그를 천재라 부르게 만들었다. 카를 비테는 신동이지만 천재는 아니었고, 아인슈타인은 신동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론 천재였다.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의 新천재론

    김주리 양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토혈을 경험할 만큼 소리 연습에 매진했다.

    신동의 재주와 재능은 그것만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없다. 그 재주와 재능을 어떤 목적을 향해 갈고닦고 몰입하고 노력했을 때 업적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에디슨은 “위대한 발명은 1%의 천재성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 것 같다. 천재는 재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필수적인 요소다.

    기네스북(1986~1989)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지능지수(IQ)를 가진 사람은 미국인 마릴린 사반트다. 이 여성의 IQ는 228로 알려져 있다. 그럼 그는 천재인가? 그는 신동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위대한 업적을 내지도 않았다. 단지 IQ가 높다는 것 외에 내세울 만한 재능이나 업적이 없다. 대학도 다니다 중퇴했고, 작가가 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지만 그것도 이루지 못했다. 60세가 넘은 현재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 일요판 신문에 상담 칼럼을 게재하고 있을 뿐이다.

    IQ의 위기

    IQ가 높은 사람들만 가입하는 모임이 여러 개 있다. 멘사클럽에는 전체 인구의 IQ 분포에서 상위 2% 안에 드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데 기준 IQ가 135 이상이어야 한다. 국제고도IQ소사이어티에는 기준 IQ가 124 정도이며 상위 5% 안에 드는 사람만 회원이 될 수 있다. 그 밖에도 프로메테우스소사이어티와 기가소사이어티가 있는데 가입 기준이 각각 상위 0.003%, 0.000000001%로 대단히 까다롭고, 기가소사이어티의 경우에는 기준 IQ가 190으로 확률상 세계적으로 10명이 채 안 된다.

    그렇다면 IQ가 높은 사람들은 모두 천재인가. 그들은 모두 경탄할 만한 업적을 내고 있는가. 1996년에 발족한 한국의 멘사클럽에는 약 700명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학창시절 학교 성적이 어떠했는지 물어보았다. 그 결과 최상위권에 속했다는 사람이 19%(254명 중 49명), 상위권에 속했다는 사람이 47%(254명 중 121명), 중하위권에 속했다는 사람이 23%(254명 중 61명)로 나타났다. 이들의 IQ는 최상위권이지만 학교 공부에서는 모두가 최상위권은 아니었다. 최상위권인 사람(19%)보다 오히려 중하위권인 사람(23%)이 더 많았다.

    이런 결과는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다. ‘IQ가 높은 사람이 학교 공부를 잘한다’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다. IQ와 학교 성적의 연관성 정도는 기껏해야 20~25%다. IQ 순서대로 학교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님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서 밝혀졌다.

    IQ만 갖고 천재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낸 위인들을 살펴보면 IQ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아인슈타인의 업적이 높은 IQ 덕분이었다면 그는 왜 초등학교, 중학교 성적이 낙제를 간신히 면하는 수준이었겠나. 에디슨의 위대한 발명 능력이 IQ 덕분이었다면 그는 왜 초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 탈락할 수밖에 없었는가. 예술적인 천재들을 IQ로 설명하긴 더욱 어렵다. 모차르트, 베토벤, 피카소, 고갱, 고흐의 위대성을 IQ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날 IQ는 위기에 처해 있다. IQ가 인간의 비범성을 재는 정확한 척도가 아닌 것 같다는 의구심이 계속 부풀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IQ가 인간의 잠재된 능력을 재는 지표로 활용된 지 100년을 넘어서고 있는데 그간 IQ에 대한 비판은 계속 제기되어왔다.

    그 비판의 핵심은 IQ검사 때 ‘인간의 수많은 능력 중 극히 일부를 재고는, 전체를 잰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머릿속에 잠재된 능력은 무한하다. 어떤 이는 이 능력의 개수를 2조1400억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능력 중에서 IQ검사 항목에서 측정하는 것은 기억력, 계산력, 지각력, 추리력, 어휘력, 언어유창성, 공간지각력 등 겨우 1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러니 IQ가 사람의 다양한 성취를 설명하고 예언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IQ검사에서 측정하지 못하는 중요한 능력 중 대표적인 것이 창의력(creativity), 정서능력(emotional ability), 적성(aptitude)이다. IQ검사로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 아주 기초적이고 일반적인 인지능력인 기억력, 추리력, 지각력, 언어능력 등만 잴 수 있을 뿐 창의성, 정서능력, 적성을 재지 못하므로 학교 성적이나 출세와 성공 등 종합적인 삶의 성취와 업적을 예언하는 데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모차르트, 음악영역에서만 천재

    요즘 교육학이나 심리학에서는 IQ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새로운 잠재능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IQ를 대신할 새로운 잠재능력으로 세 가지 개념이 대두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서지능(EI 또는 EQ·Emotional Intelligence), 성공지능(SQ 또는 SI·Successful Intelligence), 다중지능(MI·Multiple Intelligence)이다.

    정서지능은 인간의 잠재능력을 기억, 지각, 계산, 추리능력 같은 사고능력만으로 한정하는 데 반대한다. 정서능력, 예컨대 인내심, 주의집중력, 충동조절, 몰입 등도 중요한 잠재능력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의 新천재론

    김연아 양은 신체운동지능이 상위 10% 안에도 들지 않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성공지능은 IQ로 측정하지 못한 창의력과 응용력을 보완해 새로운 형태의 IQ검사안을 만들어 분석지능, 창의지능, 실천지능을 함께 측정하자는 것이다.

    다중지능은 이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연구가 진척돼 이론적 깊이가 있는 종합지능이론이다. 여기서는 종래의 IQ 개념에 정서능력, 창의력, 적성 개념까지 포함시킨다. 다중지능이론에서는 인간의 삶의 영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상징체계를 형태에 따라 8가지로 나눈다. 신체운동영역, 인간친화영역, 자기성찰영역, 논리수학영역, 언어영역, 음악영역, 공간지각영역, 자연친화영역이 그것이다.

    각 영역은 나름의 독특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다. 음악영역에서는 악보 기호, 논리수학영역에서는 숫자와 기호들, 언어영역에서는 말과 글, 신체운동영역에서는 신체 동작이 그것이다. 상징체계별로 유난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어릴 때는 ‘신동’으로, 그 능력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업적을 남겼을 때는 ‘천재’라고 부를 수 있다.

    다중지능의 관점에서 보면 모차르트는 어릴 적엔 음악지능이 뛰어난 신동이었고, 자라면서 그 음악지능을 발휘해 음악 분야에 엄청난 업적을 남긴 음악의 천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는데, 모차르트는 모든 분야에서 천재가 아니라 음악영역에서만 천재라는 점이다. 모차르트의 비범함은 한 개의 독특한 지능영역, 즉 그의 강점지능에서 발휘된 것으로, 다른 영역의 지능 수준은 보통 사람과 별 차이가 없었다.

    소질, 적재적소, 무대

    사람은 누구나 8가지 지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 높낮이가 다를 뿐이다. 이 중 가장 높은 지능을 ‘강점지능’이라 하고 가장 낮은 지능을 ‘약점지능’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동이란 강점지능이 유별나게 높은 어린이를 뜻하고, 천재란 강점지능을 발휘해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사람(어른)을 가리킨다. 다중지능이론은 강점지능의 발견, 개발 그리고 발휘 과정을 중심으로 신동과 천재를 설명하는 데 적합한 이론이라 하겠다.

    천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따른다. 이른바 IDF 조건이다. 한 사람이 훌륭한 업적을 이루려면 소질(I·Individuality)이 있어야 하고, 그 소질이 해당 영역(D·Domain)에서 교육·훈련·개발돼야 하며, 훈련 받은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F·Field)에서 생업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볼 때 피카소는 천재 탄생의 세 가지 조건이 가장 이상적으로 충족된 사례인 반면, 장승업과 이중섭은 세 가지 조건 충족에 실패해 빛을 보지 못한 천재의 대표적 사례다. 피카소는 태어날 때부터 그림에 소질(I)이 뛰어났고, 아버지 덕분에 스페인의 왕립미술학교에서 제대로 된 미술 교육(D)을 받았으며, 평생토록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생업(F)을 보장 받았다.

    그러나 이중섭은 그림에 소질(I)도 풍부했고, 도쿄미술학교(D)도 다녔지만, 불행하게도 그림만 그리면서 살 수 있는 화가로서의 생업(F)을 보장받지 못한 채 부산 역전에서 짐꾼 노릇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천재다운 업적을 남기기가 어려웠다. 한편 장승업은 그림에 소질(I)은 출중했지만, 천한 신분 때문에 교육다운 교육을(D) 전혀 받지 못했고, 그림에만 전념할 생업(F)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역시 천재적인 업적을 남기기가 어려웠다.

    오늘날 한국의 신천재들을 IDF 틀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학생의 소질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발견되었는지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어떤 소질과 적성을 보였는가. 그 소질을 부모는 어떻게 발견했고 그때 무슨 일을 했는가. 이런 질문들은 천재 탄생의 조건 중 하나인 소질(I)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다.

    둘째, 소질과 적성을 길러주기 위해서 부모와 학생 자신이 어떤 교육과 훈련(D)을 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질과 적성이 발휘되려면 대체로 10년이 걸리는 것으로 다중지능학자들은 판단한다. 이 기나긴 세월에 일어난 일을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학생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어떤 노력과 희생을 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셋째, 개발된 소질이 발휘되는 장면과 상황(F)을 이해해야 한다. 경쟁자는 누구였고, 지지자는 누구였는가. 부모와 교사는 학생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가.

    이런 점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학생이 능력을 발휘하는 데 소질과 재능뿐만 아니라 사회심리적 환경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는 것이 많은 학생도 시험 불안증이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아는 답도 제대로 표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천재도 그가 처한 사회심리적 환경에 따라 재능이 발휘될 수도, 그냥 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의 신천재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중지능의 IDF 측면을 소상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新천재들 분석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의 新천재론

    박태환 군을 가르친 지도자들은 그의 성공 요인이 정신력과 성실성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어느 나라나 기성세대와 차별되는 젊은 재능이 집단적으로 발현되는 시대가 있다. 프랑스 작가 장 콕토는 이를 ‘무서운 아이들’이라며 ‘앙팡테리블’이라고 불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젊은 작가들이 현실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때는 이들을 ‘성난 젊은이’라는 뜻의 ‘앵그리 영맨’이라고 불렀다.

    21세기 한국에서도 그런 젊은 재능의 집단 발현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서운 아이들’도 아니고 ‘성난 아이들’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미쳤고 기성세대에 주눅 들지 않은 채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밝고 당당한 자신감으로 무장돼 있다. 그들은 불꽃처럼 환하고 정열적이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따뜻하게 하는 온기를 머금고 있다. 지난 여름 ‘동아일보’가 20회에 걸쳐 연재한 ‘21세기 신(新)천재론’의 주인공들이다.

    한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조기에 재능을 꽃피운 신천재들의 공통점과 특징은 무엇일까. 그들은 밝고 환하고 영민하다는 뜻에서 ‘브라이트 제너레이션(Bright Generation)’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한 우물 파는 연습벌레

    한국의 신천재들은 모두 좋아하는 것에 미쳤다고 할 만큼 엄청난 열정을 지니고 고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10대 국수(國手) 윤준상 9단은 1000국은 두어야 1급 수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바둑을 둬 결국 1000국을 채워 주변을 놀라게 했다. 고등학생 나이로 세계로봇대회에 출전한 강태호 군은 다섯 살 때 그 나이에는 벅찬 조립식 완구를 만드느라 밤을 새우다 결국 천식에 걸렸다. 열한 살 때 장장 9시간20분의 판소리 완창에 성공한 김주리 양은 이미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소리꾼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한다는 토혈(吐血)을 경험할 만큼 소리 연습에 매진했다.

    짧은 시간에 두각을 나타낸 신천재들도 경이로운 몰입의 힘을 보여주긴 마찬가지였다.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한 홍지현 양은 연극을 처음 보고 나서 1년간 한 달 평균 12편씩 150편에 이르는 연극을 보고 100여 편의 희곡을 독파한 뒤 처음 쓴 희곡으로 최연소 당선자의 영예를 안았다. 요리 입문 1년여 만에 5대 국가조리사 자격증 시험에 모두 합격한 노유정 양은 요리 관련 문제집과 책을 달달 외우고 서너 차례의 해외 요리 연수까지 혼자 찾아다니며 한 우물을 파고들었다.

    다중지능이론의 국내 도입에 앞장서 온 문용린 서울대 교수팀이 개발한 대교심리진단센터의 다중지능 적성진로진단검사 결과에 따르면 신천재들은 다중지능 중 해당 분야에 필요한 지능의 점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수학과 과학 영재들은 하나같이 논리수학지능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문학·연극·영화 분야 신천재들은 한결같이 언어지능과 공간지능이 높았다. 바둑 분야 신천재인 윤준상 9단은 논리수학지능과 공간지능이 높은 것으로 나와, 바둑이 역시 수읽기와 포석의 게임임을 입증했다.

    놀라운 점은 그들의 재능을 빚어내는 다양한 다중지능의 하모니에 있었다. 신천재들은 이과는 수학, 문과는 언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크로스오버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금상을 수상한 수학 영재 이석형 군은 논리수학 외에도 언어와 음악 분야 점수가 고르게 높았다. 또 영화 시나리오를 통해 예일대에 입학한 구혜민 양과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 홍지현 양은 언어 못지않게 논리수학지능도 높았다. 특히 IT 분야 신천재 남예슬 양은 자연친화·음악·신체운동·인간친화·논리수학·언어지능이 모두 상위 3%에 드는 진정한 다중 천재로 조사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문용린 교수는 “다중지능의 매력은 해당 분야의 타고난 지능만으로 재능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다중지능의 조합으로 빚어내는 무지갯빛 스펙트럼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자율적 교육 실천한 부모

    다중지능 적성진로진단검사 결과가 반드시 신천재들의 타고난 재능에 부합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엄청난 연습벌레라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피겨스케이팅 스타 김연아 양은 신체운동지능이 상위 10.5%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엄청난 연습과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랐다. 빙상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그녀의 유연한 근육은 원래 훈련을 조금만 소홀히 해도 위축되는 핸디캡이었다. 또 화려한 표정 연기는 수없이 거울을 보며 ‘천의 얼굴’을 빚어낸 연습의 산물이었다. 대신 그녀는 ‘실수 매니지먼트’라고도 불리는 피겨스케이팅의 필수 요소 가운데 하나인 대범함을 최대한 끌어냈다.

    발레리노 이동훈 군은 두 다리를 180도로 벌리는 발레의 기본 동작 턴아웃을 하기에 불리한 체형인데다 평발이었다. 게다가 비보이를 하며 상체 근육이 발달하고 무릎이 튀어나온 바람에 발레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체형을 지녔지만 남보다 두 배에 가까운 훈련량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의 新천재론

    로잔콩쿠르 1위의 영예를 안은 박세은 양은 어린 시절 무용 동작 순서를 잘 못 외우고 무용 기술도 떨어졌다.

    반면에 발레리나로서 좋은 체형을 지닌 박세은 양은 어린 시절 무용 동작 순서를 잘 못 외우고 무용 기술도 떨어졌지만 발레에 대한 애정과 느리지만 착실한 훈련을 통해 로잔콩쿠르 1위의 영예를 안았다.

    교육학자들은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기 위해선 아이를 박물관에 데려가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갖는지 관찰하라고 조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앞장서서 아이의 관심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관심을 보이는 주제를 찾을 때까지 가만히 뒤에서 지켜본 뒤 아이가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천재의 부모들은 대부분 이 원칙에 부합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절대 ‘이걸 해라, 저걸 해라’ 강요하지 않고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관찰하며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빅뱅의 비밀’이란 장편 SF소설을 쓴 김활 군의 부모는 김군이 상상력을 최대한 펼칠 수 있도록 방 안이 장난감으로 난장판이 되어도 치우지 않았고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만큼 자유방임의 교육 원칙을 실천했다. 강태호 군과 구혜민 양, 홍지현 양도 학교 교과과정에는 충실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학원 다니는 시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었다.

    부모들의 인성 교육도 한몫을 했다. 뉴욕 필하모닉 영아티스트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지용 군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 가 세탁소에서 힘겹게 일하면서도 아들에게 “네 재능은 네 것만이 아니니까 이웃을 위해 쓰라”는 말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석형 군의 부모는 어려운 어휘를 많이 쓰는 이군이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지 않도록 학교에서 쓰는 말과 집에서 쓰는 말을 구분해줄 만큼 ‘평범한 아이’로 크게 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문용린 교수는 “한국의 신천재들이 대거 출현한 것에는 역시 부모의 역할이 가장 컸음을 확인했다”며 “부모 개인의 노력으로 이런 신천재들을 키워내는 동안 공교육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와 사회의 역할 늘려야

    천재의 재능이 빛을 보려면 어떤 조건이 만족돼야 할까. 문용린 교수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시카고대 교수와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의 ‘IDF 모델’에 입각해 3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첫째, 개인적 소질(Individuality)이 뛰어나야 한다. “천재는 99%의 땀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에디슨의 말은 노력을 강조할 때 곧잘 인용된다. 다중지능이론에 따르면 1%에 해당하는 재능이야말로 99%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결정적 변수다. 문용린 교수는 부모의 역할이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둘째, 자신의 재능이 빛날 수 있는 영역(Domain), 즉 적재적소로 투입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조기 입문과 10년가량의 발효 기간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이 수학 성적 하나만 가지고 취리히공과대에 간신히 입학했을 때 16세였다. 수학과 이론물리학에 몰두한 그가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것은 10여 년 뒤인 27세 때였다.

    셋째, 경쟁의식을 북돋워주면서 자신감도 불어넣는 심리적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분야, 즉 마당(Field)이 필요하다. 마당에는 관중도 있고, 코치와 감독도 있고, 라이벌도 있다. 운동선수가 경기장 분위기에 따라 발휘하는 기량이 달라지듯 천재들도 인적 환경의 역동성에 따라 발휘되는 기량이 크게 달라진다. 김연아 양에겐 아사다 마오와 같은 라이벌을 정해주고 박태환에겐 마이클 펠프스라는 넘어야 할 목표를 설정해준 것도 이런 마당이었다.

    문용린 교수는 IDF 모델에 비춰볼 때 한국의 신천재들의 등장은, 부모에 의해 이른 시기에 소질이 발견되는 I단계의 첫 단추는 잘 꿰고 있지만, 학교와 사회가 담당해야 할 D단계와 F단계도 대부분 부모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천재의 소질 발현은 김치의 발효 과정과 같아야 합니다. 제대로 숙성될 때까지는 김칫독의 뚜껑을 자주 열지 말고 오랜 시간 항아리에 푹 담가둬야 합니다. 그걸 속성으로 발효시키려 설치면 김치 맛이 떫거나 빨리 시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평준화에만 초점을 둔 현재의 공교육에선 이런 과정을 밟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교육의 유혹을 떨치고 묵묵히 이런 발효 기간을 견뎌낸 부모들의 안목이 놀라울 뿐입니다.”

    천재와 더불어 살기 위하여

    한국의 신천재들을 접하면서 깨달은 또 다른 현상은 천재의 대중화다. 엄밀히 말해 천재는 8가지 다중지능이 모두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한국교육개발원 산하 영재교육센터에 따르면 영재교육 시스템이 잘 갖춰진 이스라엘에서조차 진짜 천재는 1년에 10명만 선발한다. 그러나 다중지능 중 몇 가지가 뛰어난 1.5% 안에 드는 수재와 다중지능 중 한두 가지라도 탁월한 3% 안에 드는 영재까지 별도의 영재교육을 실시한다.

    한국의 영재교육은 0.9%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중 70~80%는 과학과 수학능력이 뛰어난 이공계 영재에 집중돼 있다. 영재교육센터의 김미숙 소장은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공계에만 집중된 영재 육성 교육을 인문계와 예체능계로 확대해 최소 3% 수준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식 전환이 가져온 현재의 ‘18세 혁명’을 21세기 한국의 새로운 르네상스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천재 개념의 확산이 필요하다. 그것이 ‘천재의 대중화’에 담긴 첫 번째 의미다. 그런데 신천재들이 마음껏 활개를 펴기 위해서는 두 번째 의미의 대중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천재와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대중적 이해의 확산이다.

    획일화한 한국 사회에서 다수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영웅이 되지 못하는 천재는 ‘저주받은 마이너리티’였던 게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천재의 요절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에 의한 정신적 타살이란 말이 있다. 공부의 사슬에서 겨우 풀려난 천재가 다시 ‘왕따 문화’로 질식되지 않도록 할 책임은 우리 사회에 있다. 소수의 ‘모차르트’와 더불어 살 줄 아는 다수의 ‘살리에리’가 되기 위해 고독한 ‘모차르트’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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