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금융 인사이드] 자동차보험료는 왜 ‘고무줄’ 됐나

들쭉날쭉 가격으로 소비자 뒤통수 쳐서야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19-07-05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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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년 새 ‘올렸다 내렸다’ 패턴 반복

    • 하반기 보험료 추가 인상 가능성 솔솔

    • 정권 바뀌자 급반전 보험산업 정책, 정부 책임론도

    지난 2015년 말, 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료를 줄줄이 올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4월 삼성화재와 동부화재를 마지막으로 주요 보험사들의 인상 행렬이 주춤해졌다. 보험료를 올린 이유는 ‘손해율’이 높아져서다. 손해율이란 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출 비율을 의미한다. 즉, 보험사가 고객에게 보험료로 받는 돈에 비해 보험금 지급 등 쓰는 돈이 많았다는 의미다. 

    이후 2017년 하반기 동부화재를 시작으로 주요 보험사들이 차 보험료를 다시 줄줄이 인하했다. 이번에는 손해율이 낮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들어 보험사들은 재차 보험료를 올리고 있다. 상반기에만 두 번 올렸고, 하반기에 또 올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가입자에게 제공하던 할인 혜택도 줄이는 추세다. 보험사들은 ‘손해율이 다시 높아졌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시장 논리 통하지 않아”

    얼핏 시장 논리를 따른 흐름 같다. 기업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으니 이익이 준다 싶으면 가격을 올리고, 이익이 늘면 가격경쟁력을 위해 보험료를 인하하는 패턴이 이어지니 말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각 업체가 환경 변화와 경영 전략 등에 따라 특정 가격대를 정해 승부를 보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가 다 같이 가격을 만지작거리면서 ‘손해율’ 관리만 하는 듯한 모양새다. 

    이렇게 되면 시장 논리가 통하지 않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에 미미한 차이만 있을 뿐, 큰 틀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시장이라면 기업이 가격을 내리거나 올리는 전략을 택할 때 그에 따른 책임을 본인이 져야 한다. 가격을 조정해 손해를 보면 그에 따른 책임도 떠안아야 한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는 가격을 내려 손해를 보면 가격을 다시 올리면 된다. 장기적으로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업체가 없는 셈이다. 자동차보험은 차량 소유자라면 무조건 가입해야 하는 의무보험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소비자만 ‘봉’이 된다. 



    보험사들도 할 말이 있단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손해율이라는 게 오직 보험사가 ‘예측’을 못 해서 들쭉날쭉하는 게 아니다”라며 “정부와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에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해명한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보험업계는 이번에 보험료를 올리는 근거를 대면서 ‘관련 정책의 변화’를 적잖게 언급했다. 가령 자동차보험의 표준 약관 개정을 통해 육체노동자의 정년이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바뀌면서 보험사들이 줘야 하는 보험금이 늘었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피해자의 휴업손해와 상실 수익을 보존해줘야 하는데, 정년이 늘어나는 만큼 그 대상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보험금 지급액 확대 요인도 있다. 전업주부나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 휴업손해비를 계산할 때 일용임금을 기준으로 적용한다. 최저임금이 올라 일용임금 기준도 올랐다. 한방 추나요법을 건강보험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보험금을 줘야 할 곳이 줄줄이 늘어나니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게 보험사들의 주장이다.

    “사실 7~8% 올리려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인 탓에 ‘정치적 요소’의 영향도 받는다. 2015년 삼성화재와 동부화재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보험료를 올렸다. 이후 보험사들이 다시 보험료를 줄줄이 내리기 시작한 시점은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17년 7월쯤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가계소득 증대 차원에서 필수 생활비 절감 방안을 추진해왔는데 보험료도 여기에 포함하면서 민간 실손의료보험 인하 방안을 발표했다. 자동차보험 역시 국민 생활과 밀접한 만큼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금융감독원은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적정하게 책정되는지 감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이때 보험사들은 그간 내내 손해만 보다가 이제 막 이익이 나기 시작했는데 보험료를 당장 내리기는 어렵다는 분위기였지만, 결국 꼬리를 내렸다. 당시 업계에서는 손해율이 다시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고 이는 현실이 됐다. 

    올해 가격 책정 역시 금융 당국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전언이다. 사실 보험사들은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올 초 7~8%의 인상률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금융 당국의 직·간접적인 압박으로 3~4%만 인상해야 했다. 그래서 또 올리게 됐다는 게 복수의 보험업계 관계자가 내놓은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하반기 추가로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론 부담이 클 텐데 굳이 또 인상하려는 이유는 총선 때문이다. 내년이 되면 정치권 눈치를 보느라 보험료를 올리기 어려우니 차라리 ‘욕’ 먹더라도 올해 끝내는 게 낫다는 논리다. 

    보험사는 자신들도 나름의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고객 특성에 따른 예상 손해율 등을 고려해 보험료를 제각각 책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심사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손해율이 낮은, 즉 사고 낼 확률이 낮은 ‘우량 고객’을 확보하는 등의 역량에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이를 통해 점유율 경쟁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자동차보험료가 들쭉날쭉한 것에 대한 책임을 어느 한 곳에 지우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보험료 인상을 최대한 막으려 보험사들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보험사는 정치권과 여론 눈치를 보며 보험료를 ‘조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

    과연 보험료를 올려야 할만한 이유가 있는 걸까. 5월 12일 울산 동구 마성터널 출구 부근에서 차량 6대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모습. [뉴스1]

    과연 보험료를 올려야 할만한 이유가 있는 걸까. 5월 12일 울산 동구 마성터널 출구 부근에서 차량 6대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모습. [뉴스1]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보험사와 금융 당국 공히 ‘우물 안 개구리’ 신세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올해 초 보험사 수장들의 신년사를 한번 보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해외 진출 등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 개발로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비전은 오래전부터 공언해온 것들이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국내 보험사들은 지난해 해외 점포에서 8년 만에 처음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전체 보험사가 낸 순이익 규모가 265억 원가량으로 미미한 데다가 성장 속도는 더디다. 또 보험사들은 국내에서 팔고 있는 상품들이 ‘붕어빵’처럼 닮아 있다는 지적을 계속 받고 있다. 

    금융위는 앞서 이번 보험료 인상에 대해 “자동차보험료 인상 요인을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사업비 절감 등 ‘자구 노력’을 선행해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경고를 외면하고 대부분 보험사가 보험료를 올리긴 했지만, 업계도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 당국은 지난 정권 시절이던 2015년 보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규제를 완화했다. 핵심 골자는 보험사들이 보험료를 자유롭게 책정하게 하고 새 상품을 만들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권과 수장이 바뀌면서 기류는 금세 달라졌다. 

    보험사들이 상품과 서비스 혁신 등 자구 노력을 하지 않고, 금융 당국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보험료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소비자가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꼴이 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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