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호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난임 환자들 ‘공공난임센터’ 반대, 왜?

  • 입력2019-07-1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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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서울시가 39억 원을 들여 서울의료원(중랑구 소재)에 ‘공공난임센터’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2조8657억 원 규모의 상반기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하면서 공공난임센터 설립의 포부를 밝힌 것이다. 속도도 초고속이다. 공공난임센터 설립안이 나오자마자 보름 만에 임시이사회가 열렸고, 난임 전문인력 채용도 빠르게 마무리됐다. 

    서울시 공공난임센터 설립의 발단 과정은 이렇다. 지난 3월 서울시 온라인 청원 사이트 ‘민주주의 서울’에 ‘보건소에서도 난임 주사제를 맞을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이 올라왔고, 이것이 시민 5000명 이상의 공감을 얻어 공론의제로 선정됐다.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은 난임 환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보건소뿐만 아니라 동네 병원 등 어디서나 난임 주사를 맞을 수 있게 하겠다”며 “앞으로 난임시술 가격도 낮추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난임센터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2개월 만인 지난 5월 30일, 서울시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공공난임센터 설립을 발표했다. 

    그런데 난임 환자들 반응이 심상치 않다. ‘찬성’이 아니라 반발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서울’에는 ‘공공난임센터 설립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난임 환자들은 “39억 원이면 2000명의 난임 부부를 시술해줄 수 있는 비용”이라며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설립하면 모를까 난임 시술기관이 많고 많은 수도권에 그 돈을 들여 공공난임센터를 짓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최고의 명의와 최고의 기술을 가진 병원을 찾아가도 임신이 될까 말까인데 이제 막 시작 단계인 공공난임센터에 가서 마루타 시술을 받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극구 반대하고 있다.

    34년 전통 민간 병원과 경쟁될까?

    공공난임센터 설립은 그동안 누차 제기됐던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난임 치료를 독일과 프랑스처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국립대병원과 공공병원 내에 공공난임센터 설립을 약속했다. 2017년에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고, 그 결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난임 시술이 가능한 민간 의료기관을 공공난임센터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공공난임센터 설립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설 외에 전문인력 확보와 최신 난임 치료기술 R&D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난임 치료(시술)와 보조생식술 기술력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난임센터가 자칫 전문의 부족과 이용률 저조 등으로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난임 시술을 30년 이상 해온 난임 전문 의사로서 서울시가 추진하겠다는 공공난임센터 설립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던지고 싶다. 



    첫째, 과연 공공의료가 민간 병원과 경쟁할 수 있느냐다. 국내 난임 병원들의 보조생식술 R&D는 지난 34년간 수없이 많은 환자의 사례를 통해 그 나름의 ‘난임치료 교과서’를 만들었다. 난임 시술 경험은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레지던트로 4년간 일한 경험으로는 결코 터득할 수 없는 의술이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이후에 일선(난임병원)에서 IVF(시험관아기 시술)을 직접 해봐야만 비로소 난임 의사가 될 수 있다. 적어도 난임 시술 10년차는 돼야 전문의료진 대열에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말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증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초보 의사들과 경험이 부족한 배양연구원들이 하는 IVF 시술은 난임 환자들을 피해자로 만들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난임 치료는 의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제아무리 미다스 손을 가진 명의라고 해도 보조생식술(배양기술) 없이는 임신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둘째, 난임 환자들이 단지 시술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공공의료를 선택하겠느냐는 의문이다. 난임 치료야말로 자본주의 시장에 핀 꽃이다. 임신에 목을 매는 환자들은 매회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신(新)처방, 신(新)기술을 가진 병원과 의료진을 열심히 찾아 헤맨다. 심지어 각 병원에 대해 의사의 경험과 소신 등을 분석해놓은 환자도 많다. 난임 전문 병원들은 임신율을 올리기 위해 온갖 노력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의 성적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공공의료기관에서 난임 환자의 기대와 특성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셋째, 공공의료의 한계점 즉 공무원식 근무 태도와 업무 방식으로 난임 치료와 배양 R&D를 이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다. 가까운 예로 유럽 공립의료기관의 난임 시술을 살펴보자. 의사 1인당 진료 환자 수 제한제, 짧은 근무시간 등으로 인해 환자의 대기일수는 길어질 수밖에 없다. 난임 치료 특성상 생리(월경)를 기준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데 이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하니 임신 성공률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치료(시술) 순번이 되는 데에만 무려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오죽하면 유럽에서도 난임 부부들이 사설 병원을 더욱 신뢰하고 찾겠는가. 한국의 공공의료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넷째, 과연 공공난임센터 설립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다. 오는 7월부터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추가된다. 연령 제한도 일부 폐지되고 보험 적용도 인공수정 5회, 시험관시술 12회(신선배아 이식 7회, 동결배아 이식 5회)로 바뀌었다. 하지만 부분별 제한(횟수) 보험 적용이라서 각기 다른 난임 이유를 감안하면 속 시원하게 보험 혜택을 본다고 할 수 없다. 인공수정으로는 임신할 수 없는 부부도 있고, 동결배아를 이식할 수 없는 여성도 상당수다. 난임시술별 횟수 제한을 암환자에게 적용한다면 방사선 치료와 암 수술 횟수를 각각 제한하는 것과 같다. 서울시가 난임 부부를 지원할 의향이 있다면 차라리 공공난임센터 설립보다는 난임 시술 추가 지원금을 지급하는 게 훨씬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민간 병원이 꺼리는 질환 치료, 질병 예방,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저렴한 진료, 국가유공자 치료 등을 위해 공공의료는 꼭 필요하다. 더욱이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공립의료기관은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난임 치료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난임 치료를 위한 공공의료 서비스를 어떤 방식으로 전개해야 국민과 난임 환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을까. 

    공공(公共)에 답이 있다. 공공난임센터는 난임 병원이 몰려 있는 대도시보다는 농촌과 소도시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의료원에 설립되는 게 맞다. 그리고 의사와 배양연구원 등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방 근무자에 대한 보상 체계를 확대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지난 34년간의 보조생식술 역사에서 난임 치료에 공을 세운 원로급 난임 전문 의사로부터 자문과 의술 도네이션(재능기부)을 받는 방법도 검토돼야 한다.

    공공정자은행이 더 절실하다

    그럼에도 난임 전문의로서 공공난임센터가 세워지면 꼭 이뤄졌으면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공공정자은행 설립이다. 민간 병원들이 사회적 선입견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만약 공공난임센터가 이 일을 해낸다면 개인 간의 음성적 거래를 막을 수 있고, 나아가 남성불임(비폐쇄성 무정자증) 부부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 전해 들은 얘기로는 서울시가 공공난임센터에서 PGT(착상 전 유전진단·PGD&PGS) 시험관시술까지 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PGT 시험관시술은 그야말로 난임 의료 시장에서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는 과잉 검사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유전병이 있거나 염색체 이상 부부를 위한 PGT 시술이라 해도 워낙 고도의 전문기술인 까닭에 경험이 풍부한 전문연구소에서조차 오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과연 공공의료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난임 시술을 공공의료에서 소화하기에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달나라에 가는 ‘우주선 버스’가 언젠가 만들어져 전 국민이 쉽게 달나라에 갈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날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안전하고 튼튼한 우주선을 개발하는 데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 출산율을 높이는 길도 다르지 않다. 임신율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각 난임 기관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함께 많은 부부가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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